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Sep 11. 2018

바람아 푸른색 트럭 앞에 잠시 멈춰주겠니  

열심히 일하는 모두에게 인생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외국에 사는 한국인이 한국에 들어올 때 기대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맛있는 신토불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리운 가족들과 친지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여기에 나는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칠 수 있다는 것. 특히 우리처럼 서비스가 잘 되지 않는 곳에 산다면 더욱 그러하다.

이번 한국 방문 때도 다른 때처럼 수리할 것들이 많았다. 망가진 핸드폰과 컴퓨터, 무거운 인버터에 이름 모를 무선 마이크 관련 부품까지. (사실 남편이 가지고 있는 물건은 이름도 잘 모를 때가 많다.) 공항 검색을 지날 때 마다 주어진 바구니에 가득히 올려놓다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때가 많다. 고장 난 것들이 이렇게 많았던 가.    


그날은 이름 모를 그 무선 마이크 관련 부품을 수리하러 강남에 있는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을 때였다. 깔끔한 도로 옆으로 높이 솟아 있는 빌딩들 사이에 우리가 들어가야 할 빌딩을 찾았다. 좁은 땅에서 많은 건물을 있다 보니 자동 주차장으로 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주차해 놓고 관리 아저씨가 문을 닫으면 ‘징~’ 하는 소리와 함께 자동차는 지하 어딘가로 내려가 주차되는 현대식 주차장이라고나 할까.    

기분 좋게 서비스를 받고 내려와서 관리아저씨가 차를 빼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이 아주 부유하게 보이는 중년 부부가 비싸 보이는 차를 주차하기 위해 서 있었다.

‘아마 저 부부는 실내 골프를 치러 온 손님이거나 이 빌딩에 오피스를 둔 사람들일 거야.’ 난 습관처럼 주위의 사람들을 관찰했다. 비싸 보이는 차 옆에서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바로 그 뒤에는 빌딩 어느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는 듯한 남자 직원이 전화 를 걸면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트럭으로 싣고 오는 짐을 넣어야 하는데 입구에 누군가 차를 세워놓았기 때문이다. 차 주인에 연신 전화를 거는 직원 반대 쪽 도로에는 같은 마음으로 기다리는 용달차가 보였다.

허름한 푸른색의 1톤 트럭 안에 빛바랜 하얀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보였다. 광나는 건물들 사이로 잘 차려 입은 회사원들과 손님들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 용달 아저씨와 그의 애마였다. 그의 피곤한 눈빛은 얼마나 오늘 하루를 열심히 일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더운 날씨에도 차안에 에어컨을 켜지 않고 한쪽 팔을 운전자 창 밖에다 턱 하니 걸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오랜 세월 용달을 하시면서 이사든 짐이든 가리지 않고 싣고 다니시던 아버님. 아버님이 생각났다. 밤늦게 일을 마치시고 돌아와 서도 침대 옆에다 무전기를 놓고 주무시던 아버님.

한 두 시간 잠이 들었다가도 가까운 곳 용달 무전이 들리면 곧바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고 허름한 푸른색 1톤 트럭을 몰고 나가시던 아버님이 그곳에 앉아 계시는 것만 같았다.

아버님도 이렇게 더운 여름에 에어컨을 켜지 않으셨을까? 나는 잠시 일을 하시는 아버님을 상상했다. 멋진 집에 이사 짐을 넣어 주실 때면 자신도 그런 집에 살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일하셨을 것이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물건을 나를 때면 초라해 보이는 자신보다도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아침에 어머님이 싸주신 식은 점심밥을 먹다가도 용달 무전이 울리면 재빨리 무전에 응답하고 시동을 걸었는지 모른다.

머리가 많이 빠진 용달 아저씨가 아버님과 모습조차도 닮았다고 생각할 때 쯤 우리 차가 지하 주차장에서 올라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용달 아저씨의 푸른색 트럭 앞으로 지나고 있었다.

큰 빌딩들 사이에 서 있는 용달 아저씨 차에 잠깐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기를 바랐다. 아저씨의 삶에도 시원한 바람이 산들 산들 찾아오기를 바랐다.

이전 16화 아빠의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