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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r 10. 2022

대단하지 않으나 행복한 순간

가족과의 저녁 산책

”대단한 날은 아니고, 나는 그냥 그런 날이 행복했어요.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중에서]


식탁 위에는 몇 가지 반찬과 따끈따끈한 밥과 미역국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둘째는 벌써 밥을 먹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간 후였고 첫째는 남편과 함께 남은 밥을 먹고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많은 주제들을 거쳐 외모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16살이 된 큰 아이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이가 조심스레 외모에 대해 고민을 이야기하자 남편은 말했다.

“있잖아. 아빠도 어렸을 때 나는 왜 이렇게 생겼지 하면서 진짜 자신감이 없었어. 그런데 엄마를 만난 거야. 엄마는 아빠의 이 오뚝한 코가 잘생겼다고 생각했대. 처음 만난 날. 그러고 어느 날 아빠 얼굴을 보는데 아빠 얼굴이 너무 잘생긴 거야. 야. 너도 아빠를 닮았으니까 그걸 깨닫는 날이 있을 거야.”

큰아이와 나는 동시에 서로의 눈을 쳐다봤다. 그리고 우리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

나는 그가 하는 농담의 의미를 알았다. 아이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반론할 것은 반론해야지.

“여보. 내가 당신 코에 반한 게 아니야. 당신 코가 오뚝한데 어떻게 시작 부분은 낮을 수 있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던 거지.”

우리는 또 한차래 웃었다. 

사실 나는 코가 낮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의 코를 먼저 본다. 

낮은 코, 오뚝한 코, 그리고 성형 수술한 코. 

대학 시절 코에 컴플랙스가 있었던 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졸업할 때까지 남자 친구 없으면 코 수술해줘야 돼요.”

나중에 안 것이지만 엄마 역시 딸이 그렇게 원한다면 대학 졸업하고 코 수술을 시켜 줄까 생각도 했었다고 했다. 하지만 졸업 전 나는 내 작은 코를 사랑하는 남편을 만난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대학 동아리에서 그를 처음 만났던 날 그의 코를 보고 반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코가 높긴 한데 왜 시작하는 부분은 저렇게 낮지 하면서 갸우뚱했을 뿐. 

“아들. 걱정하지 마. 넌 잘생긴 아빠를 닮았어.” 

남편은 자신이 잘생겼다는 전제를 재차 주장했고 우리는 그때마다 웃었다.

밥을 다 먹고 오랜만에 우리 셋은 저녁 산책을 했다. 큰아이가 제안한 것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곧바로 뜨거운 여름이 되었지만 아직 아침저녁으로 인도 겨울의 뒷자락이 남아있다. 그래서 산책하기 딱 좋은 저녁이었다. 

집을 나와 집 앞에 있는 인도 시골 마을길을 걸었다. 

우리는 아이의 학교 이야기를 들었고 아이는 우리의 인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줬다. 분명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르게 살고 있었고 그래서 아이의 고민도 그리고 우리 부부의 이야기도 조금 달랐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우리들만의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고나 할까. 전봇대도 없어서 어두운 길이었지만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아이의 나지막한 목소리와 남편의 썰렁한 농담들 그리고 나의 웃음소리가 섞여서 그저 포근한 저녁 길이었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하늘을 봤다. 캄캄한 길과 하늘 사이에 작은 초승달이 보였다. 초승달은 캄캄한 시골길과 밤하늘 반짝이는 별들을 이어 주듯이 아주 낮게 떠있었다. 

그리고 그 모양이 미소 짓는 아이의 입모양과 같았다. 

나는 남편과 아이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길을 걸어갔다. 선선한 바람에 바나나 나뭇잎들이 흔들렸다. 별들은 반짝이고 있었고 초승달은 걸어가는 우리를 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미소에 답하듯 환하게 웃으며 초승달에게 말했다.

‘참 포근한 저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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