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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Jan 09. 2019

누룽지, 된장 미역국 같은 인생

구수한 사랑이 오래가는 법이지

누룽지, 미역 된장국 같은 인생


밤늦게 돌아온 남편이 그래도 내 생일이라고 아침부터 부엌에 섰다.

다른 건 못해도 일 년에 한 번 생일 미역국은 끓여 주는 남편이기에 그날도 모른 척하며 이불속에 누워 있었다.

“여보. 미역 어디 있지?”

“어 부엌 안쪽에 빨간색 아이스박스 옆에. 내가 찾아줘?”

“어... 아니 아니야. 내가 찾아야지. 당신을 이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마.”

“쌀은 몇 컵을 해야 해?”

“거기 있는 국그릇으로 두 번 정도?”

일 년에 한 번 하는 연중행사이다 보니 요리에 필요한 것들을 찾는 것 자체가 남편에게는 어려웠을 것이다. 더 물어볼 텐데 차라리 필요한 것들은 내가 찾아 주자 싶어서 부엌 쪽으로 갔다.

“여보. 미역국에는 뭘 넣어야 하지?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뭐야~~~. 마늘 넣고 버섯 넣고 뭐 그 정도 넣으면 되지.”

“아. 그렇구나. 버섯, 마늘 참 감자도 넣으면 좋겠네. 여보. 토마토는 어때?”

역시 남편이었다. 절대 똑같은 요리를 하지 않는 어설픈 퓨전 요리의 전문가(?).

“토마토는 좀 빼주면 안 될까? 그래도 미역국인데.”

“그럼 된장을 넣어야겠네. 구수한 된장.”

“미역국에 된장을 넣는다고? 그.... 그래요.”

나는 웃음을 참으며 이불을 정리하러 갔다. 아이들은 아직도 꿈나라였다. 방학 마지막 주말을 보내고 있었으니 좀 더 잠을 자고 싶었나 보다.

방을 정리하고 거실로 나오는데 온 집안에 연기가 자욱했다.

“여보. 무슨 연기가 이렇게......”

남편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내 질문에 답을 했다.

남아 있던 밥으로 누룽지를 만들려다 보니 프라이팬이 너무 달궈졌던 것이다. 

누룽지 케이크를 만든다며 울퉁불퉁한 누룽지를 몇 개나 만들고 있었다. 

‘된장 미역국에 누룽지라니......’ 나는 피식 웃으면서 거실로 갔다. 


아침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며 음식을 식탁으로 나르던 남편이 말했다.

“오늘의 주제는 누룽지 같은 인생이야. 우리 나이가 이제는 누룽지처럼 구수하게 살아야 할 때이잖아. 그렇게 살자고.”

크고 작은 누룽지 위에 볶은 땅콩을 올려 하트 표를 만들어 놨다. 분명히 내가 사진을 찍어 기념할 것을 알아서 준비한 거라는 남편. 아이들은 역시 아빠라면서 사진을 찍어댄다. 

그렇게 생일 파티를 했다. 

달콤한 케이크가 아닌 누룽지로 축하하는 남편.

남편이 그런 사람이었다.

입에 넣자마자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케이크가 아닌 씹고 씹어야 느낄 수 있는 구수한 누룽지 같은 사람. 

내가 무엇을 갖고 싶어 하는지 잘 알지는 못해도 내게 필요한 것은 꼭 준비해 두는 사람.

달콤한 사랑의 메시지는 보내지 않아도 내가 힘들 때 가장 가까이서 힘이 돼 주는 사람.

그러고 보니 우리는 이미 누룽지 같은 구수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8년을 지내면서 멋들어진 장소에서 데이트 한 기억보다는 복잡한 인도 시장에 서서 매콤한 길거리 음식을 함께 먹은 기억이 더 많은 걸 보면 말이다.

깨끗한 구두를 신어도 조금만 걷다 보면 먼지가 소복이 쌓이는 시골길을 걸어 다녀도 구수한 남편이 있어 가능했던 인도 생활이 아니었을까.


나는 잘 끓여진 구수한 미역 된장국을 한 숟갈 입에 넣었다. 누구의 말대로 ‘별미’였다.

물컹물컹 씹히는 미역과 함께 구수한 맛을 내는 된장이 나쁘지 않았다. 


‘누룽지 같은 미역 된장국 같은 구수한 인생이라.’


나는 촌스러운 남편의 테마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여보. 미역국 한 그릇 더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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