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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6. 2019

아들 둘만 있는 미래의 외로운 나에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전화 데이트

나는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자라왔다. 안동이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님들의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 가족은 예의를 가장 중요시했다.

그리고 엄마는 아주 부드러운 분이셨다. 절대 소리 지르는 법이 없었고 항상 조용히 나를 타이르셨다. 지금도 엄마는 부드럽게 친구처럼 내게 용기를 전해 주신다.


그런데 어머님은 달랐다. 결혼하자마자 나를 새아기 아니면 며느리라고 하지 않고 해옥이라고 부르셨다. (호칭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집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나는 해옥이라는 호칭이 싫지는 않았다.)

어머님은 부드러운 분위기보다는 버럭에 가까운 스타일이셨다. 음 누군가를 예로 들자면 어디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욕쟁이 할머니 같다고나 할까? 물론 어머님은 욕을 하지 않으신다.

뭐 ‘이 눔의 새끼’ 정도 말하시니 욕쟁이 할머니는 아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말투는 아주 강하다. 계속 화를 내거나 혼을 내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래서 큰아이 성민이가 좀 컸을 때 나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엄마. 할머니는 왜 저렇게 우리한테 화를 내세요?” 그래서 나는 조곤조곤 대답했다.

“어. 할머니는 너희한테 화내는 게 아니고. 말투가 그러 신 거야.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거든.”

결혼 후 어머님의 말투에 적잖은 상처를 받았던 나를 보며 남편이 말했다.

“여보. 엄마가 저렇게 말하는 거에 상처를 받으면 안 돼. 사랑을 표현하시는 거지. 저렇게.”

나는 기가 막혔다. 항상 조용히 말하는 엄마 밑에서 평생을 살다가 툭툭 내뱉으시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말들을 들으려니 어머님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님의 행동에 말투에 맘 상하고 삐지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툭툭 거리면서 어머님의 말에 말대꾸를 하기도 했다.


‘비슷한 스타일이어도 친해지기 힘든 것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이건만 이렇게도 다르니 참 어렵다 어려워.’


그렇게 나는 결혼 생활을 지속했고 그 사이 든든한 두 아들이 생겼다. 나는 의무감에 가끔 어머님께 전화하는 그런 일반적인 며느리였다. 가끔 어머님 댁에 갈 때도 뭔가 내 맘에 들지 않은 것이 있으면 입을 주먹만 하게 내놓고 꿍하게 있는 좀 못마땅한 며느리 역할도 했다.

엄마와의 전화 통화는 한 시간이 넘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지만 어머님과의 통화는 몇 분 이상  하기 가 힘들었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님과 통화를 하는데 어머님의 푸념 같은 소리를 들었다.

“아들 둘이 있는데도 전화도 없어.”

그랬다. 상식적으로 대부분의 남자들은 전화하기를 싫어했으며 남편과 아주버님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형님과 나 역시 어머님과 자주 통화하는 사랑스러운 며느리는 아니었다.


어머님의 이야기를 듣는데 갑자기 내 머릿속으로 나의 20년 뒤가 보였다.

사랑스럽고 나만 따라다니는 성민이 현민이가 무뚝뚝한 어른이 되고 며느리들은 나를 불편하게만 생각하는 장면이었다.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

나의 20년 뒤는 매주 적어도 한 시간 씩 딸과 통화하는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전화 없는 자식들에게 서운해하는 어머님의 모습이었다.

아들들아. 사랑한다.


왜 갑자기 그 생각이 들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나는 어머님이 더 외로워 보였다. 20년 뒤의 내가 더 외로워 보였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는 어머님의 딸이 되어드리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마음 굳게 먹고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도 할 말이 많지 않았다. 엄마처럼 편하게 이야기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계속 전화를 드리기로 했다. 왜냐면 20년 후에 나라면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릴 테니까.


“어머님. 뭐하세요.”

“어. 해옥이야. 나 지금 밥 먹고 고구마 줄기 따러 왔지.”

“아이고. 허리 아프시다면서 뭘 그렇게 하세요. 좀 쉬셔야죠.”

“그래.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방광염이 와서 고생을 했다니까.......”


어머님은 윗집 할머니 이야기부터 조카가 찾아온 이야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끝도 없이 하신다. 그리고 가끔은 했던 이야기를 너무 실감 나게 다시 하신다.

그렇게 어머님과의 전화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1분 통화하기가 어려웠던 어머님과의 통화는 요즘 길게는 20분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거의 매일.

물론 지금도 친정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편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어머님과의 통화가 꽤나 재미있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줄 때면 꼭 나는 카톡을 연다.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자. 그럼 도영자 여사께 전화를 해 볼까?”

얼마 전부터는 어머님과의 전화를 마칠 때는 꼭 어머님께 이렇게 말했다.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처음에는 민망하고 닭살이 돋아서 침 꿀꺽 삼키면서 했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아니 당연한 멘트가 되었다.

어머님은 나의 '사랑해요'를 들으시면 꼭 이렇게 대답하신다.

“그래. 고마워 딸.” 그리고 요즘은 이 말도 덧붙이신다. “나도 사랑해.”


사랑해서 사랑해요가 아니라 사랑해요 하다 보니까 사랑하게 됐다.

나는 그렇게 어머님과 통화를 한다. 미래의 나와 통화를 한다.

“사랑해요. 어머님.”



--저도 항상 어머님과 잘 지내는 건 아니에요. 불편할 때도 있고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어머니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가능한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계속 전화하다 보면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참. 딸 있으신 분들 정말 부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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