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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16. 2018

제멋대로 날씨여도 괜찮았다

요즘 이곳의 날씨는 ‘제멋대로’다.

천둥 번개가 치며 억수 비가 오다가도 날씨가 화창해 지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주룩주룩 비가 내린다. 감정 기복에 힘들어 하는 친구라면 내가 나서서 충고라도 해보건만 날씨는 그럴 수도 없으니 그저 내가 날씨에 맞게 적응해야 한다. 


어제도 아침 내내 비가 내리더니 오후가 되니까 화창해졌다.

‘와. 언제 비가 왔는지도 모르겠네. 이참에 꿉꿉해진 옷들 좀 말려야겠다.’

뜨거운 피부에 살이 탄다는 것도 잊은 채 기분 좋게 아이들과 빨래를 널었다. 

‘아~ 뽀송뽀송한 이 느낌. 얼마만이야.’ 난 푸르른 하늘을 한참 쳐다보다가 피아노 수업을 하러 교실로 갔다. 

2시간의 수업시간이 마치고 돌아오는 길.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어느새 푸르렀던 그 하늘은 어디로 가고 우중충한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들보다 더 쏜살같게 집으로 달려갔다.

“성민아. 현민아. 빨리 나와 봐. 비야 비. 옷 다 젖는다. 엄마 좀 도와줘!”

“와~~~ 비 온다. 빨래 걷자. 빨래!!!”

성민이 현민이는 신발도 신지 않고 뒤뜰로 나와서 같이 옷을 걷었다. 

“아니. 왜 갑자기 비가 오는 거야. 차라리 밖에 널지 말걸 그랬어.” 나는 혼자서 구시렁거렸다.

아이들은 비를 맞으면서 빨래를 걷는 게 재미있는 건지 허겁지겁 뛰어와 구시렁거리는 엄마의 모습이 재미있는 건지 한참을 웃어댄다. 

비에 젖은 옷은 다시 탈수기에 돌려 방 곳곳에 널었다. 

뽀송뽀송하고 향긋한 옷은 저 멀리 가고 다시 꿉꿉하고 냄새나는 옷을 입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비가 와서 옷이 젖고 다시 빨래를 돌려야 하는 수고는 있지만 그 뿐이었다. 냄새가 너무 나는 옷이 있다면 다시 빨고 우리 집 천장에 달려있는 커다란 선풍기 두 개를 쉬지 않고 돌리면 될 것이었다.


오늘 아침도 비가 내렸다. 아이들이 등교하는 길은 잘못 발을 디뎠다가는 신발이 진흙 속에 쏙 들어갈 만큼 아주 질퍽한 오솔길이었다. 

조심조심 우산을 쓰고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

길 곳곳마다 달팽이들이 있었다. 

질퍽한 진흙 길에서도, 땅에 떨어진 늙은 나뭇잎 위로도, 그리고 물이 얕게 고여 있는 진흙탕 옆으로도 달팽이는 여전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었다. 힘든 길을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최선을 다해서.


비에 젖은 빨래를 다시 방안에 널면 되는 것처럼. 

제대로 말려지지 않아 냄새가 나는 옷들은 다시 빨면 되는 것처럼.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어려움들도 당연히 지나가는 삶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고 싶었다. 

어떤 길을 만나도 무덤덤하게 자기의 길을 가는 달팽이처럼 힘든 일을 만나도 무덤덤하게 그 어려움과 부딪히고 싶었다.


어느새 내리던 비가 그치고 촉촉한 바람만 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우산을 접으며 하늘을 봤다. 비가 내릴지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칠지 알 수 없었지만 시원한 바람만으로도 상쾌한 날씨였다.

 

괜찮다. 

제멋대로 날씨여도 제멋대로 삶이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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