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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Dec 20. 2024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망했다

실수해도 괜찮은 척 하기

내가 가진 취미의 반 정도는 악기를 연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중에 피아노와 플루트는 그래도 나름 자신이 있는 분야였다.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쳐왔고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그래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고 플루트도 피아노만큼은 안되지만 그래도 초보 수준은 넘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악기들을 연습하는 시간에 비해 플루트를 연주하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그리고 대부분 교회에서 연주를 하고나 틀리지 않을 만한 곡들만 연주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다. 

이번 교회 크리스마스 행사에서도 무난하게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정도 불러야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피아노를 전공한 인도 친구가 내게 범상치 않은 악보를 내밀었다. 자기가 피아노를 치겠으니 나보고 플루트를 연주하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나는 덥석 그 악보를 받고 말았다. 여러 가지 크리스마스 곡이 있는 책이었는데 노래가 쉬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 3주 남겨두고 연습을 시작했다. 전에는 사용하지 않았던 음까지 연습하면서 여러 곡들을 연주하는데 맘은 앞서가는데 내 손가락이 받쳐주지 않았다. 원래 재즈 스타일의 곡을 시작했다가 아무래도 안될 것 같아서 조금 잔잔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연주하기로 결정했다. 

그냥 멜로디만 치면 심심할까 봐 편곡자는 얼마나 열심히 기교를 부려놨는지 천천히 불러도 되니 쉬울 거라 생각했던 곡은 식은땀 나며 연습하는 곡이 되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40대가 되니 손가락을 조금만 많이 움직이면 아프다.) 연습을 하다 보니 연주하는 날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야외에서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는데 나는 가족들이 저녁 먹는 시간에 거실 옆에 서서 플루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했던 부분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내가 배운 것이 계속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틀리고 또 틀렸다. 그런 내 연습을 듣던 남편은 말했다. 

"여보. 설마 그렇게 연주하려는 건 아니지?"

"너무 많이 틀리지? 그냥 단순하게 연주할까?"

남편의 우려 섞인 질문에 곧바로 포기할까 했는데 첫째 아들의 응원으로 일단 연습한 곡을 연주하기로 했다. 

예배 시작 전에 반주자와 연습을 했는데 이제까지 연습한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어려운 부분 연주를 나름 부드럽게 넘어갔다. '음.. 이 정도면 연주하면 좋겠어.'

드디어 내 차례가 돌아왔다. 우리 교인들과 가까운 교회에서 모인 인도 사람들과 아이들이 옹기종기 장작불 옆에 모여 앉아 있었다. 반주자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는 플루트를 연주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잔잔한 플루트 연주에 많은 사람들이 감성에 젖힐 때쯤 내 첫 번째 실수가 나왔다. 도레미파솔라시도 하면서 쫙 연주해야 하는 부분을 망쳐버린 것이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른 몇 군데서도 실수를 연발하고 말았다. 물론 얼굴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진지하게 연주했지만 말이다. 

연주가 끝나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나를 응원해 줬다. 다들 틀린 지도 몰랐다며 소리가 너무 좋았다며 칭찬을 해줬다. 플루트를 연주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는 인도 사람들은 그저 내가 플루트를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엄지손가락을 올려줬다. 하지만 얼마나 내가 실수를 한지는 내가 아는 법. 

그렇지만 좌절하지는 않기로 했다. 사실 내가 플루트 연습을 다른 악기보다 많이 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니까. 이제 이 기회를 삼아서 더 열심히 하면 되니까. 옛날 같았으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를 지르며 부끄러워하고 후회했을 텐데 지금은 이렇게 말한다. 

"아니. 내가 그 부분을 진짜 열심히 연습잖아. 그래도 또 틀릴 줄 알았어. 괜찮아. 연습이 부족했던 거니까. 다음에는 일 년 동안 연습해서 제대로 연주해 보겠으~~~" 


부끄럽지만 괜찮은 척을 하다 보니 진짜 괜찮아졌다. 내가 얼마만큼 노력했는지를 알고 있으니까 실망하지 않는다. 좀 더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있는 게 분명하니까. 조금 틀려도 전보다 좀 더 어려운 곡을 연주했다는 것에, 그 대단한 시도에 박수를 보내줄 뿐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좀 더 연습하면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나는 아니까! 


"실패는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정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제가 문 앞에 가서 만약에 돌아섰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포기입니다. 포기는 스스로 정하는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포기할지 말지를 정했더니 제 삶이 이렇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포기의 반대말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도전입니다. 끌어낼 도에 싸움 전 자에요. 틀에 박힌 나의 삶 속에서 나의 가능성을 끌어내기 위해서 싸우는 것, 나를 감싸고 있는 그 틀과 싸우는 것, 그것이 바로 도전입니다." 

차인표 작가가 교보문고 강연에서 한 말이다. 스스로 정하는 포기와 나의 가능성을 끌어내기 위해 싸우는 도전. 나는 포기보다는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취미 부자의 삶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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