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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14. 2016

고이 모셔 둔 연보라빛 운동화

언제쯤이면 우리가 그분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까?

딱딱딱딱.

어머님이 벌써 일어나셨나보다. 나이가 들면 잠이 줄어든다고 하지만 어머님은 정말 잠이 없으시다.

새벽 3시만 넘으면 벌써 감자를 썰고 두부를 썰고 아침을 준비하신다. 착한 며느리 한번 되어 보려다가 하루종일 졸았던 적도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차려주시는 밥 먹고 그냥 설거지나 열심히 해야지.'

난 못들은 척 눈을 다시 감았다.


어머니는 젊었을 때 부터 다람쥐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실 정도로 부지런하셨다고 한다. 집에 계실 때도 뭐라도 하셔야지 직성이 풀리신다. 배추김치, 무김치, 양배추김치, 물김치. 어머님 냉장고 안을 열어 보면 정말 반찬만 가득 모아놓은 마트에 온 느낌이다. 어머님이 여주로 이사 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아무도 사용하지 않던 아파트의 공터를 혼자 갈아서 감자, 고구마, 땅콩 등 여러가지 야채 밭을 만드셨다. 아파트가 지어진 이 처음으로 공터를 갈아 엎으신 어머니를 보고 아파트 할머니들이 모두 공터에 밭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후문이 있다.

구리에서 사실 땐 새벽같이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상품성이 떨어져 버려진 복숭아나 사과 토마토 등을 가지고 오셔서는 정성껏 씻고 상한 부분을 잘라내고는 유리 병에 과일 캔닝을 만드시곤 했다.

결혼한 초 우리집에 오실 땐 꼭 하얗게 속살을 들어낸 양파들을 잔뜩 가지고 오셔서는 냉장고를 채워 주셨던 어머님. 분명 굽어진 허리를 작은 수레에 의지해서 새벽같이 가져온 파지 양파들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부지런한 어머니 아래 약간은 게으른 며느리의 조화가 그리 좋았을 리 없었다.

어머님 곁에 있으면 내가 너무 부족한 며느리 같아서 나에게 어머니는 항상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보, 한국 잘 도착했어."

"그래요. 어머님 잘 뵙고 와요."

인도에 온 후로 남편은 비자 갱신을 위해 일년에 한번씩은 한국에 나가곤 했다. 덕분에 어머님도 적어도 일년에 한번은 사랑하는 아들을 만날 수 있으셨다.

"여보, 이번엔 어머님 좋은 선물도 좀 사드려요. 돈 생각하지 말구요. 계실 때 잘해야죠."

"그래. 안그래도 이번에 단풍구경을 가신다고 하시더라고. 그때 신으시라고 신발 하나 사드릴까봐."

"그래요. 잘 생각했네. 좋은 걸로 사다드려요."

그날 남편은 어머님을 마트에 모시고 가서는 브랜드 운동화 하나를 사드렸다. 어머님은 그 신발을 신어 보시고는 그렇게 좋아하셨다고 했다.

아들에게는 좋은 브랜드 운동화며 신발이며 운동복 까지 꼬박 꼬박 챙겨서 사주시던 어머님.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가장 싼 것들로만 사용하시던 어머님.

서로의 사랑을 알게 해 준 어머님의 새 운동화

남편은 어머님도 그렇게 브랜드 운동화를 좋아하시는 줄 몰랐었다며 어머님은 저렴한 것들을 신으시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며 마음 아파했다.

그렇게 어머님은 가장 소중한 운동화의 주인공이 되셔서 단풍구경을 가셨고 남편은 행복한 효자가 되어 인도로 돌아왔다.


남편은 얼마 후 여러가지 업무를 보기 위해 다시 한국땅을 밟았다. 남편이 어머님 댁에 짐을 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텔레비젼 바로 앞에 진열 되어 있는 익숙한 운동화를 보았다고 했다. 지난번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머님께 사드린 단풍구경용 운동화였다. 연보라색의 운동화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진열되어 있었다.

"엄마. 이 운동화가 왜 여기 있어요? 안 신었어요?"

"어..... 그거. 너무 예쁘고 좋아서 못 신겠더라. 그래서 고이 모셔뒀지."

"아니. 엄마 운동화를 신으라고 사 준거지 여기다 모셔놓으라고 사준거 아니잖아요. 단풍구경때도 그럼 안 신은거예요?"

"그래. 난 지난번에 시장에서 사놓은 것도 있고. 그리고 이렇게 좋은 걸 내가 어떻게 신겠니. 난 선물 받은 걸로 됐으니까 이거 해옥이 갖다 줘라. 이렇게 예쁜건 해옥이한테 어울리지."

"엄마. 집사람은 좋은거 내가 많이 사줘요. 이건 엄마 신으라고 준거라니까. 아이참. 아들 마음도 모르고......"

남편은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목구멍으로 삼키며 말꼬리를 흐렸다.

평생 그렇게 아껴가며 사셨으면서 자신을 위해 브랜드 운동화 하나 허락하지 않으시는 어머님.

아들이 선물한 예쁜 운동화를 신으려니 인도에서 고생하는 며느리가 눈에 밟혔으리라.

나보다는 너희들이 더 좋은 것을 신어야지 하시며 여전히 행복한 미소를 지으시는 어머님을 보며 남편은 그날 밤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올해 초 한국에 들어갔을 때 어머님 댁에는 여전히 연보라빛의 예쁜 운동화가 수줍은 듯이 신발장 안에 놓여 있었다. 어머님이 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고이 모셔둔 운동화를 보고 있는데 가슴 한 구석이 쓰라렸다.

며칠 후 남편은 나를 위해 어머님과 비슷한 운동화 하나를 사주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어머님이 그 운동화를 신을 수 있기를 바라며.

남편과 어머님댁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졌다. 종이 가방안에 든 내 새 운동화도 어머님 댁 신발장 안의 연보라빛 예쁜 운동화도 우리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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