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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r 01. 2017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이유 없이 짜증 내고 싶었던 그 때

“여보. 빨리 준비해. 옥이 가방이랑 짐이랑 다 챙겼지?”

“네. 해옥아. 빨리 출발하자. 너 데려다 주고 엄마 아빠도 다시 올라와야 하니까.”

나보다도 엄마 아빠가 더 바쁜 느낌이다.

그날은 한 달만의 외박을 끝내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엄마는 겨울을 대비해 따뜻한 이불과 양말들, 그리고 딸이 먹을 수 있는 호도, 사과 등 여러 가지를 챙겨 가방에 넣으셨다.

아빠는 벌써 파란색 포터 운전대에 앉아 계셨다. 좌석 뒤에 있는 작은 공간에 짐들을 가득 채웠다.


파란색 포터 트럭. 아빠의 애마다. 아빠 엄마가 생선 장사를 할 때도, 여름에 수박 장사를 할 때도, 그리고 야채 장사를 할 때도 이 파란색 포터 트럭이 함께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 포터 안에서는 삶의 냄새가 난다. 시큼한 생선 비린내 같기도 하고 향긋한 과일 냄새 같기도 하다.

트럭 안의 좌석은 많이 낡았다. 아마 이 낡은 천 사이사이에 이 냄새들이 베였는지도 모른다.


차가 출발하자 엄마는 평소처럼 노래를 부른다.

‘엄마는 뭐가 그렇게 좋다고 노래를 부르시는 거야?’ 난 괜히 화가났다.

아빠는 매일 듣는 엄마 노랫소리인데도 좋으신가 보다.

“야. 해옥아. 엄마 진짜 노래 잘하지 않니?” 난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는 어른들에게 말할 때면 사투리를 쓰고 우리에게 말할 때는 표준어를 쓰신다.

그날은 어색한 아빠의 표준어도 듣기 싫었다. 뾰로통한 내 모습을 보시더니 그제야 엄마가 내게 말을 거셨다.

“해옥아. 창 밖을 봐봐. 저기 초록 나무들이 얼마나 이쁘노. 엄마랑 같이 노래 부르자. 기분 좋게 가야지.”

난 여전히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이번엔 아빠가 말씀하신다.

“해옥아. 사람은 행복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거야. 힘들 때일수록 더 열심히 생활해야 하는거야. 우리 해옥이는 잘 할 수 있지?”

“아이~ 됐니더. 또 잔소리는. 얘가 다 알아서 하지. 니네 아빠는 저래 했던 소리를 또 한다 그지? 해옥아.”


엄마 아빠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안동에서 경산까지 차로 두 시간. 두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한 달 후에나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난 마음이 여린 중학생이었다.

엄마 아빠와 타고 가는 그 2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엄마 아빠에게 화난 것처럼 대답도 하지 않고 짜증만 내면서 기숙사로 향했다. 기숙사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입을 여는 순간 꾹꾹 참아 온 눈물이 터져 버릴까봐.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 아빠 얼굴도 제대로 안본 채 확 돌아서서는 기숙사로 들어가 버렸다.

내 눈에 고여 있는 눈물을 들키기 싫어서.


엄마 아빠는 가져 온 짐 보따리를 다 내 방으로 가져다주고는 나를 꼭 안아주고 나가셨다.

엄마 아빠가 나가고 나는 방에서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괜히 차 안에서 심술궂게 굴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괜히 엄마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사실이 슬퍼서 울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나는 가지고 있던 전화카드를 공중전화기에 넣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나 옥이.”

“그래. 해옥아 오늘 학교 잘 갔나? 엄마가 준 거 방원들이랑 나눠 먹었지?”

“네. 엄마. 엄마......... 어제 미안해요. 괜히 화내고.”

“해옥이가 언제 화를 냈었나?”

엄마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엄마는 해옥이를 보지 않아도 보여. 지금도 너 얼굴이 보이는데. 학교생활 잘하고 와. 언제든지 힘들면 전화 하고.”

“네. 엄마. 열심히 할게요. 아빠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내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어느새 사라졌다.

공중전화 박스를 나와 기숙사로 향하는 길.

길옆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 그리고 나무들 사이로 반짝이는 햇볕이 꼭 엄마의 따뜻한 엄마 미소 같았다. ‘엄마. 나도 이제 안 봐도 엄마가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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