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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Feb 24. 2017

동생이 전해 준 시험지

사람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어렸을 때 남동생은 항상 내 손 잡는 것을 좋아했다.

학교를 갈 때도 아빠 공장에 갈 때도 가게에 갈 때도 우리는 항상 손을 잡고 다녔다.

내가 중학교 기숙사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는 조금 소원해 졌다. 아마 동생은 이제 누나의 손을 잡지 않아도 될 만큼 자신이 커버렸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던 남동생이 내가 중 3때 같은 학교에 중 1로 입학했다.

나는 사랑스러운 동생이 같은 학교 후배로 입학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동생을 볼 때면 나의 그 특유의 오버 하는 모습으로 동생에게 인사했다.

그런데 왜 그런지 동생은 그런 나를 볼 때 마다 아주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도망가 버린다.

“해권아. 안녕? 공부 열심히 해.” 기숙사 식당에서 나올 때나 멀리서 볼 때도 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남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내 동생이라고 자랑하곤 했다.

그러면 동생은 어디 모르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어... 어... 알았어.” 하고는 도망가 버린다. 눈치 없이 큰 소리로 인사하는 누나가 창피한 것처럼 말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내 친구들은 나를 놀려댔다. “야. 너 동생 맞아? 모르는 척 하는데?”

“아니야. 제가 창피해서 그러지 나 무척 좋아해.” 라며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댔다.

나의 사랑 표현은 아는 척 하고 반갑게 인사하는 거였지만 사춘기를 시작한 동생은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인사하는 것이 마음의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루기 며칠 전이었다. 기숙사 방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데 방송이 나온다.

“중학교 3학년 정해옥, 기숙사 로비로 내려오세요.”

누군가 나를 찾아온 거다. 난 누굴까 궁금해 하며 신나게 기숙사 로비로 뛰어 내려갔다.

기숙사 문 앞에 서 있는 건 남동생이었다.

“해권아. 잘 지내고 있어? 무슨 일이야?”

“어~ 누나. 이거. 이거 보고 시험 잘 봐.”

남동생의 손에 작은 선물이 있었다. 모의고사 시험지였다. 어느 형들의 문제집 뒤에서 얻은 것인지 직접 산 것인지 동생은 작은 초콜릿과 함께 모의고사 시험지를 전해주고는 남기숙사 쪽으로 뛰어가 버렸다.

평소에도 나만 보면 내가 큰소리로 인사할까봐 모른 척 하며 도망가던 야속한 남동생 이었는데.

‘요 녀석. 그래도 누나 걱정은 하고 있었나 보내.’

고등학교 입학시험은 성공적이었다. 비록 일등을 한 것은 아니지만 동생의 그 작은 선물 때문에 누구보다 행복한 시험을 치룰 수 있었다.


얼마 전 동생에게 물어봤다.

“야. 너 학교 다닐 때 왜 그렇게 내가 인사 하면 모른 척 했어?”

“아. 누나. 그때 누나가 너무 큰 소리로 인사해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알아? 그리고 편지 쓰면 꼭 ‘사랑한다. 해권아.’ 이렇게 써서 내가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들었었는데. 근데 인제는 좀 커서 그런지 누나가 그런 문자 보내도 싫지 않네.”

동생과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참 다르다는 걸.

그래도 나는 이 적극적인 사랑 표현 방식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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