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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Oct 09. 2018

엄마와 닭발 공장

엄마에게 닭발 공장은 어떤 의미가 있던 걸까?

“엄마 요즘은 몸이 좀 괜찮아요?”

“어. 좀 덜해진 것 같아. 나이 들면 다 아픈 거지 뭐. 그래도 예전에는 몰랐는데 요즘은 한 번씩 심하게 아프면서 늙어가는 것 같더라.”

엄마의 목소리에 마음이 뭉클했다.  

몇 년 전부터 갱년기를 겪으시던 엄마는 갱년기를 겪는 다른 중년 여성들처럼 가슴 답답함을 느끼기도 했고 얼굴에 홍조가 자주 나타나기도 했다. 그리고 그 증상은 혈압이라는 진단으로 돌아왔다. 누군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글픈 것이라 했던가.

내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냈던 12년이라는 시간은 엄마에게도 어김없이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조금 더 무겁게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 아빠가 양복 공장에서 일하실 때는 엄마도 양복 만드는 일을 함께 도왔고 아빠가 트럭을 몰고 다니며 야채를 팔 때면 엄마는 트럭 뒤에 앉아 야채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아빠가 생선 장사를 할 때면 상한 생선들을 정리하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엄마는 항상 아빠의 최고의 일군이었고 최고의 파트너였다.

그러던 엄마가 자신만의 일을 찾았을 때는 내가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아파트 옆집 아주머니의 소개로 시작한 작은 식품 공장일. 그곳에서 엄마는 닭발을 다듬는 일을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조금 지나면 아이보리 색의 조립식 건물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국으로 시집 온 젊은 베트남 새댁부터 아주머니들, 그리고 할머니들 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닭발을 다듬고 있었다. 새벽부터 시작하는 식품 공장의 일은 닭발과 함께 시작하여 닭발과 함께 끝을 맺었다.

각자에게 주어지는 닭발 박스를 얼마만큼 빠르게 잘 마무리 짓느냐에 따라 그날마다 일당이 정해지는 일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굵직하고 좋은 닭발들을 받은 날이면 오늘은 운 좋은 날이었다며 기뻐했다. 길게 펼쳐진 테이블 위에 올려 진 닭발들을 아주 작은 칼로 먹음직스럽게 손질하는 닭발 공장의 여인들.

그 안에 엄마가 있었다. 큰 금액의 돈이 아니어도 괜찮았다.

자식들에게 손자들에게 가끔 용돈 줄 수 있고 일일이 남편에게 손 내밀 필요 없다는 것만으로도 엄마에게는 만족스러운 직장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전 갱년기가 오면서 엄마는 일하던 닭발 공장에서 두 번이나 쓰러지셨다.

평생 운동 한번 제대로 할 여유가 없이 살아온 엄마의 몸이 파업을 신청한 것이었다. 자연스레 엄마는 닭발 공장에 출근하지 못했다. 나는 차라리 잘 된 것이라 생각했다. 손가락을 계속 사용하는 일이어서 엄마의 손가락은 이미 많이 아픈 상태였고 엄마의 몸도 일을 지속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해옥아. 인제는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무섭대이. 우끼제. 벌써 몸이 편한데 적응했는가.”

“엄마. 푹 쉬어. 너무 고생했잖아요. 나중에 돈 없으면 우리 집에 와.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먹고 자는 거는 챙겨 드릴게.”

나는 그렇게 엄마와 닭발 공장의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엄마. 잘 지내시니껴?”

“아이고 딸. 잘있니더.”

“별 일 없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셔?”

“옥아. 엄마 다시 닭발 공장 일 시작했다.”

“엄마. 진짜? 왜? 그냥 좀 쉬지. 건강이 먼저인데......”

“매번 아빠한테 돈 달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집에서 쉬는 것도 좀 지루하고. 작은 돈이라도 내가 직접 벌어야지 속 시원하지.”

엄마가 한 말 속에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었다. 작은 돈이라도 내가 눈치 안보고 쓸 수 있다는 것. 내 힘으로 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데.

‘그래도.... 그래도 좀 더 쉬시지....’ 나는 말을 삼켰다.

“야. 엄마가 지금 몇 년 닭발 공장에서 일한지 아나?”

“엄마 몇 년?”

“벌써 17년이라. 참 17년이면 퇴직금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일한 건데.... 엄마 공장은 퇴직금 같은 것도 없다.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까지 일 해야지.”

“와~ 엄마 멋지다. 17년 이라니.”


17년...... 엄마와 닭발 공장의 인연이 벌써 17년 이라니......

퇴직금도 없는 닭발 일을 다시하기 위해 공장으로 돌아간 엄마를 보며 생각했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직장은 아니어도 그곳에서만은 17년 경력의 닭발 전문가로 인정받는 그 일이 엄마에게 또 다른 힘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도 새벽밥을 먹고 닭발 공장으로 향하는 엄마를 그린다. 하얀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엄마 앞에 오늘은 좀 더 좋은 닭발들이 올려 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의 하얀 작업복과 어울리는 환한 미소가 엄마의 얼굴에 가득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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