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두미 Oct 16. 2019

동생의 눈물

나는 따뜻한 아이의 눈물이 좋았다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꽤 마른 편이었다. 누가 봐도 약해 보이던 남편은 학창 시절부터 줄곧 살이 찌지 않았다고 했다. 물론 지금은 결혼 전 보다 체중이 10킬로나 늘어서 누가 봐도 약해 보이지 않는다.

남편은 고등학교 시절 젊고 마른 남성들이 더 많이 걸린다는 기흉(폐에 공기가 차는)에 걸려서 두 번의 수술을 한 적이 있다. 옆구리 부분에 수술자국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주 아빠의 기흉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기흉은 마른 사람에게 쉽게 올 수 있는 병이기 때문에 밥을 잘 먹고 튼튼해 져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간단하게 차린 저녁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항상 그렇듯이 밥을 먹으면서 우리 가족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빠. 나 요즘 밥 정말 많이 먹는데 왜 살이 안 쪄요?” 성민이였다. 성민이는 어렸을 적부터 많이 말랐다. 워낙 마른 체질이라 먹는다고 쉽게 살이 찌지는 않았다. 그런데 성민이가 이제는 컸다고 자기가 마른 것에 대해 조금씩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글쎄. 꾸준히 많이 먹으면 살이 찌지 않을까?”

“아빠. 나 많이 먹는데도 살이 안찌면 나중에 커서 그거 기흉 걸릴지도 모르잖아요. 내가 기흉에 걸렸어요. 근데 병원에서 수술을 제대로 못 받았다면요? 그럼 나는 죽을지도 몰라요.”

성민이는 또 필요치 않는 걱정을 늘어놓는다.

“걱정 마라. 열심히 밥을 먹으면 돼. 그리고 말랐다고 누구나 다 기흉에 걸리는 건 아니야.”

남편은 웃으면서 성민이에게 이야기 했다. 결론은 역시 아이들이 밥을 잘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식사가 먼저 끝나서 설거지할 것들을 싱크대에 가져다 놓았다. 설거지를 막 시작하려고 할 때 현민이가 나를 불렀다. 설거지하느라 바쁘다고 이야기해도 자꾸만 와 달라고 한다.

여전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남편과 성민이를 지나서 안방으로 들어갔다. 현민이는 방 한쪽 창문 아래 누워 있었다.

“엄마. 다리가 아파요. 다리 만져줘요.”

“그래? 또 다리가 아파? 엄마가 마사지 해줄게.”

둘째 현민이는 자주 다리가 아팠다. 정확히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무릎 뒤쪽이 자주 아프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달랐다. 아이의 얼굴이 무엇인가를 이야기 하고 싶은 듯 했다.

내가 현민이를 빤히 쳐다보자 울음을 참고 있던 현민이는 울기 시작했다.

“현민아. 무슨 일이야?” 나는 현민이를 보며 이야기 했다.

아이는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목베게로 눈을 가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아까 밥을 먹을 때 현민이가 자꾸 손을 사용해서 먹어서 아빠한테 혼났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현민이는 그 이유가 아니라고 했다.

현민이는 슬프게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구슬픈 눈물의 의미를 도대체 추측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울던 현민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형아가 살이 안찌면 나중에 아프잖아요. 그리고 수술을 받다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 어떡해요.”

아빠와 형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민이는 진짜 형이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먹던 밥도 다 먹지 않은 채 방안에 들어가서 혼자 울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현민아. 너를 어떡하니. 어쩜 이렇게 사랑스럽니. 형이 그냥 이야기 한 거야. 아빠가 아팠다고 형이 무조건 같은 병에 걸리는 건 아니야. 말랐다고 무조건 기흉이 오는 것도 아니고. 걱정할 필요 없어.”


현민이에게 형과 아빠의 대화 속에 들어 있던 ‘만약’이라는 단어는 들리지 않았다. 만약보다도 형이 아플 수 있다는 것과 형이 아프게 되면 자신을 떠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더 크게 들렸던 것이다.

나는 현민이를 아주 꼭 안아주었다. 아이의 흐느낌이 내게 전해졌다. 그리고 아이의 구슬픈 눈물이 따뜻한 위로가 되어 내게 떨어졌다. 나는 따뜻한 아이의 눈물이 좋았다. 아이의 따뜻한 마음이 좋았다.


현민아. 사랑해.



이전 01화 엄마 얼굴에 검은색은 뭐예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