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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ug 18. 2016

희대의 냄비 화재 사건

우린 완벽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했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

복잡한 안동 구 시장을 지나서 법상교를 지나 내려가다 보면 아빠 엄마가 일하는 양복점이 있었다. 매일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열심히 일하시는 엄마 아빠를 스쳐 지나가듯 본 다음에서야 동생과 나는 집으로 향했다. 바쁘게 일하는 엄마 아빠와는 달리 우리는 항상 바쁘게 놀았다.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고 집 마당에서 숨바꼭질, 골목에서 잡기 놀이. 우린 놀기 대장들이었다.

한참을 놀던 동생과 내가 배가 고파지면 꼭 우린 라면을 끓여 먹곤 했다.

그날도 배가 고팠던 동생이 말했다.  

“누나, 우리 라면 끓여 먹을까?”

“좋지. 그래 물 올리자.”

우린 작은 냄비에 물을 가득 넣고 가스를 켰다. 그리고 집에 있던 라면 두 개를 준비해 두었다. 벌써부터 맛있는 라면 냄새가 나는 듯했다. 동생과 나는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불은 제대로 켰는데 물이 끓지를 않는다. 앉아서 물이 끓기를 기다리기엔 우린 너무나 에너지가 넘쳤다.

“우리 잠깐만 놀다 올까?”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린 동시에 부엌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동네 친구들은 여전히 재미있게 놀고 있었고 우리도 다시 그 무리에 합류했다. 어쩜 그리도 재미있었던지. 매번 같은 골목에서 하는 숨바꼭질도 할 때마다 새로웠다. 보물찾기 놀이, 잡기 놀이는 또 얼마나 신이 나던지. 우리는 정신없이 놀았다.

배고픈 것도 잊은 채. 그리고 라면 물이 끓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놀다가 목이 말라 집으로 들어갔을 때야 우리는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기로 가득 찬 부엌.

아뿔싸! 아까 올려놓은 라면 이 다 끓어 이젠 불이 냄비를 태우고 있었다.

동생과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급한 대로 부엌으로 들어가 가스레인지 불을 껐다. 다행히 냄비에만 불이 붙어 있었고 부엌으로 불이 옮기지는 않았었다.

동생은 뜨거워진 냄비를 간신히 바깥 수돗가로 가지고 나갔다. 동생과 내게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른다. 부모님께 혼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 이었을까? 집에 불이 나면 안 된다는 두려움 때문 이었을까?

우리는 응급상황에 나타나는 소방관 아저씨들처럼 순식간에 불을 끄고 냄비를 바깥으로 옮겼다.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을 나와 수돗가에서 물을 붓고 동생과 나는 서로를 쳐다봤다.

“아! 어떡하지? 엄마가 오시면 혼날 텐데.”

“일단 이 냄비를 빨리 씻어 보자.”


부엌의 연기 냄새를 내보내기 위해서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우리 둘은 수돗가에 앉아 냄비를 씻기 시작했다. 제대로 불이 붙어서 오그라든 양은 냄비를 도대체 무슨 수로 씻겠단 말인가?

가능하지 않는 희망 없는 냄비에 수세미를 대고 문지르고 또 문질렀다. 문지를 때마다 나오는 검은 물들, 노랗던 양은 냄비가 시커멓게 변해있는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우리는 엄마가 자주 사용하던 그 냄비를 조용히 동네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기로 했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선풍기로, 공책을 흔들어가며 부엌에 남아있던 탄 공기 냄새를 몰아내고 서투른 솜씨로 가스레인지를 닦고. 우린 뒤처리를 하느라 바빴다. 완벽한 범죄를 위해서.

그렇게 저녁때까지 바쁘게 움직이던 우리들. 평소보다도 어색할 정도로 더 깨끗하게 청소해 놓은 방과 부엌.

우린 마루에 앉아 엄마 아빠를 기다렸다. 재판관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우리 가슴은 더 쿵쾅쿵쾅 울려댔다.


저녁이 돼서야 엄마 아빠는 일을 마치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보다도 더 긴장해 있는 동생과 나를 보고도, 여전히 부엌과 온 방에 남아있연기 냄새를 맡고도 그리고 가스레인지에 다 지우지 못한 탄 자국들을 보고도 엄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평소처럼 저녁을 하시는 엄마를 보고서야 동생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 역시 우리는 완벽하게 해냈어.’ 동생과 나는 눈짓으로 이야기했다.


그 희대의 냄비 화재 사건이 조용히 마무리된 후에도 난 가끔 궁금했다. 물건 하나 사면 10년은 넘게 사용하는 엄마가, 당신이 자주 사용하던 냄비가 사라졌는데도 한 번도 다시 찾지 않았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두 아이가 있는 엄마가 되고 살림살이를 하는 주부가 되어서야 나는 알았다. 아이들이 부엌을 사용하고 아무리 깨끗이 치워 놔도 엄마는 부엌의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기가 좋아하던 냄비가 없어졌다는 것을 모르는 주부는 없다는 것을.

그때 엄마는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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