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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Jul 29. 2016

죽는 것 보단 뛰는게 나아!

소리지르고 달리기만 해도 힘이 나던 그때!

초등학교 때, 동생과 나는 항상 함께였다. 시내 골목길을 걸어 다닐 때면 난 2살 어린 남동생 손을 꼭 잡고 다녔다. 동네에서는 동생을 아끼는 착한 누나로 소문나 있었다. 엄마 아빠는 일하시느라 항상 바쁘셨다. 그래서 난 동생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 갈 때도 학교에서 돌아올 때도 우린 함께 손을 잡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양복 공장에 놀러갔다가 오는데 작은 골목에서 깡패를 만났다. 깡패라고 해 봤자 중학교 정도밖에 안되었을 남자아이였다. 동생과 나는 그 깡패가 우리에게 돈을 요구 한 뒤 몇 초가 지나지 않아 손을 잡고 달렸다. 그 학생이 따라 오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말이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골목을 걸을 때면 더 긴장했다. 특별히 집에서 시장이나 문구점으로 갈 때면 백열등으로 되어 있는 골목을 지나야 했다. 주점들이 많아서 술에 취한 아저씨들을 자주 만났다.  우리의 두려움이 점점 커지려고 할 때 동생과 나는 구호를 만들었다. “어두운 곳이 나오거나 골목들이 나오면 우리는 달려야해. 아니면 저번처럼 깡패가 나타나거나 나쁜 사람들이 나타날 수 있잖아. 그럴 땐 이렇게 외치는 거야 ‘죽는 것 보단 뛰는 게 나아’. 어때? 괜찮지?” 동생도 나도 비장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 구호는 우리에게 분명 힘을 줄 것이었다.     

저녁 때 준비물을 사러 갈 때면, 아빠 양복 공장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그 좁은 골목을 지나갈 때면, 우리는 꼭 잡고 있던 두 손을 놓고 소리치며 달렸다. “죽는 것 보단 뛰는 게 나아”

누가 듣던지 말든지 우리는 상관하지 않았다. 동생과 나에게 그 구호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고자 하는 몸부림이었고 용기를 주는 외침이었다.

내가 중학교를 멀리 가면서부터 그리고 사춘기가 오면서 우리 남매는 차츰 멀어졌다.      




몇 년 전 두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이 구호가 생각나서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야. 너 이거 생각나? ‘죽는 것 보단 뛰는 게 나아’ 우리 비밀 구호였잖아.”

“와! 누나 진짜 오랜만이다. 진짜 옛날엔 우리 이거 많이 외쳤었는데. 참 시간이 빠르네.”

그랬다. 우리가 자라면서, 시간이 흘러가며 우리 둘만의 구호도 잊혀 져 갔고 동생과 나도 가까우면서도 어색한 사이로 변해 버렸다. 가끔 동생과 손을 잡고 동네 골목길을 달리는 꿈을 꾼다. 이제는 동생과 함께 손잡고 어딜 달릴 만큼 신나거나 흥분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때처럼 서로 한 마음이 되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기엔 우리가 너무 커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는 꼬마 남동생이 남아 있다. 무서운 길을 함께 달리며 두려움을 헤쳐 나가던 작은 내 꼬마 동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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