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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Jul 20. 2017

호두깎이 엄마

엄마는 밤새 호두를 깨고 계셨었다.

“와. 이 아이스크림 맛있겠다. 한번 먹어봐.”

“어? 이거 호두 맛이잖아. 나 호두 맛 못 먹어. 어렸을 때 하도 호두를 많이 먹어서 질렸거든.”

학교 때부터 난 호두가 들어간 음식은 모두 먹지 못했다. 호두라는 글자만 봐도 고개를 저었다.

 

어렸을 적 나는 코피가 많이 나는 아이였다. 엄마는 내 코에 따뜻한 수건을 올려놓으시기도 하고 때론 쑥 말린 것을 코에 집어넣기도 했다. 때론 휴지로 코를 막기도 하고 찬물로 코를 씻기도 했다.

공부를 하다가도, 놀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내가 코피를 흘리는 것은 너무나 평범한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보다도 나를 더 많이 걱정하셨다.

흐르는 코피를 보실 때면 “아이고, 그 코피가 왜 멈추질 않노?” 하시면서 속상해 하시곤 했다.


중학생이 되어 3시간 남짓 걸리던 기숙사에 보내시면서 엄마의 걱정은 더 커지셨다.

혹시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어린 딸이 더 아파지지는 않을까 엄마는 전화를 드릴 때마다 “니 코피는 좀 덜하나?”라고 물어보시곤 했다.     


그날은 한 달에 한번 주어지는 외박 날이었다. 오랜만에 집에서 먹는 엄마의 된장찌개, 김치, 그리고 집 냄새.

외박은 그래서 좋았다.

주말을 보내고 일요일,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하던 때. 엄마는 평소처럼 몇 가지의 과일과 생필품들을 챙기시면서 내게 두 개의 큰 아기 분유통을 주셨다.

“엄마? 이건 뭐예요?”

“어. 해옥아. 엄마가 들어보니까 호두가 코피에 그렇게 좋단다. 그래서 내가 여기 분유통에 후두를 넣어놨어. 학교에서 매일 마다 먹어라. 혹시 아나? 진짜 코피가 멈출지?”

난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호두가 든 분유통을 짐 속에 넣었다.

기숙사에 도착해서도 가끔 기억날 때면 호두를 먹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부터 아빠와 앉아 망치를 들고 호두를 깨먹던 기억이 있어서 호두를 먹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분유 한통이 끝나고 나머지 분유통에 반 정도의 호두가 남았을 때가 되자 난 호두 맛에 질려 버렸다.

아무리 코피를 위한 약이라지만 이제는 호두만 봐도 구역질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남은 호두를 다 먹었는지, 친구들에게 나눠줬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남아 있던 반통의 호두의 기억이 사라질 무렵 나는 깨달았다.

가지고 있던 남은 호두의 기억 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히던 코피 역시 사라진 것을......

엄마는 호두 덕분이라며 너무 행복해 하셨다.

나 역시 호두의 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호두를 더 이상 먹지 못 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렇게 고소하고 맛있던 호두가 이제는 이름만 들어도 미식거릴 정도로 질려버렸으니.

가끔 호두가 생각 날 때면 난 억울하다는 듯 혼잣말을 하곤 했다.

“엄만 왜 호두를 그렇게 많이 주셔가지고는 내가 호두에 질리게 만드신 거야?”

코피가 나은 것도, 엄마가 행복해 하던 것도 잊은 채 말이다.     


그날도 난 무심결에 엄마 앞에서 호두이야기를 했다. 엄마가 그때 호두를 너무 많이 먹게 해서 아직도 호두를 못 먹는다며......

그때 엄마가 내게 이야기 했다.

“옥아. 그래도 내가 그날 너 기숙사 가기 전에 호두 넣어 보낸다고 밤새 호두를 깨서 몇날 며칠을 손이 아파서 고생했는지 몰라. 그래도 지금 코피 안 나오니까 얼마나 좋노. 코피가 안 나온다면 엄마는 내 몇 통도 더 까줄 수 있다.”     

엄마는 자신의 노력에 고마워 할 줄은 모르고 불평만 한다며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억이 기분 좋은 기억처럼

엄마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모두가 잠자는 밤.

딸을 생각하며 목장갑을 끼고 밤새 딱딱한 호두 껍데기를 깨고 계셨던 엄마.

호두 껍데기 하나 깨질 때 마다 딸의 코피가 멈추기를 기도하시던 엄마.

어쩌면 엄마의 그 간절한 기도가 호두에 더 큰 효력을 넣어 주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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