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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Nov 14. 2017

어머님도 여전히 사랑받고 싶은 여자인걸...

나이가 들어도 듣고 싶은 말이 바로 예쁘다라는 말이 아닐까?

그 날은 좀 더 내 얼굴을 꾸미고 싶었다. 인도 사람들은 화장을 잘 안하기 때문에 나 역시 특별한 날만 화장을 하곤 했는데, 그 날이 그런 날이었다.

세수를 한 얼굴에 기초화장을 하고 볼터치와 립스틱까지 발랐다.

나는 밖으로 나가는 남편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여보. 나 오늘 화장 좀 했어. 어때?”

“어. 당신은 항상 예쁘지. 그런데 이제는 당신 얼굴도 나이를 못 속이네.”

그의 한 마디는 내 주변의 모든 장면을 멈추게 했다.

그의 말은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그는 순수하게 자신의 마음속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

“아.. 여보 내가 10년을 살면서 그렇게 가르쳤건만.... 이제는 하산해도 되겠다 싶었는데 안 되겠네. 다시 수련을 시작해야겠어.”

나는 남편에게 억울한 웃음을 보이며 이야기 했다.


결혼 후 나는 남편에게 아내를 대하는 법을 전수해 주곤 했다.

“여보. 내가 ‘당신 나랑 왜 결혼 했어?’ 라고 물으면 당신은 나에게 ‘난 당신의 마음을 보고 결혼했지.’가 아니라 ‘나는 당신이 너무 예뻐서 결혼 했어’라고 대답해야해. 여자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거든.”

진담만 할 줄 알던 남편은 나와 10년을 지내면서 아내에게 ‘아름답다’ ‘예쁘다’ ‘사랑스럽다’라는 낯간지러운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베테랑 남편이 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해 버린 것이다.

“이제는 당신 얼굴도 나이를 못 속이네.”


내 나이 이제 37세. 결혼 5년 차에 인도로 와서 벌써 6년을 살았다. 뜨거운 태양 빛 아래에서 기미가 생기고 얼굴이 거칠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예쁘고 싶었고 사랑스럽고 싶었다.

그 날 나는 남편의 그 한마디를 들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남편에 말에 조금 속상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어머님 생각을 했다.

왜 갑자기 어머님이 생각났는지 나는 모른다.


평생 힘들게 살아온 어머님의 얼굴은 주름이 많고 거칠었다.

시댁에서 남편의 사진을 구경하다가 어머니의 젊었을 적 시절을 봤다. 어린 남자 아이 둘을 앞에 세워 놓고 사진을 찍으신 어머님은 앳된 새댁이었다. 그저 보기에도 사랑스러운 젊은 엄마였다.

그런데 언제 부턴가 그녀에게 칭찬을 해 주는 사람들이 줄었다. ‘예쁘다’ ‘곱다’라는 표현을 듣기에는 너무 척박하고 힘든 삶이었다. 자신을 둘러볼 시간이 없이 아들들을 키웠고 남편을 돌봤다.

이제는 홀로 지내는 어머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난 어쩌면 어머님이 혼자 지내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지 모른다. 외로워 보이고 마음 약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 여겼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그렇게만 살아가는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남편의 그 한 마디가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다.

나이가 든다고 모든 감정까지 잃어버리는 건 아니니까

나이가 들어도 어머님은 아직 여자였다. 30대 후반으로 들어선 내가 여전히 앳된 피부를 가지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처럼 70이 넘은 어머님의 마음속에도 여전히 20대의 어머니가, 30대의 어머니가 살고 있을 것이었다. 멀리 떨어져 제대로 만나지도 못하는 어머님 생각에 마음이 서글펐다.


며칠 후 어머님이 꽃 옆에서 찍으신 사진을 내게 보내오셨다. 아파트 앞에서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나는 어머님에게 말했다.

“어머. 우리 어머님은 도대체 나이를 거꾸로 잡수시나봐. 어쩜 꽃 옆에 계시는데 어머님을 찾기가 힘들 정도예요. 어머님 점점 더 예뻐지시는 것 같아요.”

“허허허. 그래? 안 그래도 우리 교회 집사님들도 이 사진 보고 너무 잘 나왔다고 그러더라.”

어머님은 나의 입에 발린 칭찬이 싫지 않으신 모양이었다. 내가 남편의 입에 발린 칭찬을 듣고 싶어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날 어머님은 평소보다도 더 길게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시고 전화를 끊으셨다.

남편은 옆에서 능청스럽게 어머님과 통화하는 나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내 모습이 너무 가식적인 며느리의 모습이어도 괜찮았다. 어머님은 여전히 예쁘고 사랑받고 싶은 여자이니까. 이제는 더 자주 어머님께 입에 발린 칭찬을 해 드리려고 한다.

“어머님. 이번 머리가 너무 잘 어울려요. 십년은 젊어 보이는데요. 지금 그 모습 이 너무 아름다우세요.”

남편과 걸어가는 먼지 나는 비포장 길 옆으로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리고 낮을 보내는 것이 아쉬웠던 강은 해가 비추던 그 붉은 빛을 자신의 가슴에 한참을 담고 있었다. 오늘은 그 붉게 물든 강의 모습이 더 애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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