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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Aug 17. 2016

계란, 신선한 계란이 왔어요

아빠와 함께한 특별한 날


아빠는 어렸을 적 양복을 만드는 양복 공장에서 일했었다. 하지만 기성복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아빠의 손재주를 필요로 하는 양복보다 공장에서 만들어 지는 기성복을 더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는 일자리를 일었다.

초등학교도 채 끝내지 못한 아빠가 가지고 있는 전문 기술이라고는 양복을 만드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아빠는 다른 것을 도전해야 했다. 그렇게 여러 날을 고민하던 아빠는 야채 장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저렴한 중고 트럭을 사고 트럭 뒤에 지붕을 씌웠다. 그리고 그 안에 콩나물, 두부, 시금치, 계란, 등 여러 가지 야채와  과일들 까지 차곡차곡 싫었다. 아빠 트럭 뒤의 천막을 올리면 작은 이동 야채가게가 등장했다.


첫 날 아빠가 야채를 팔러 가던 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엄마 대신 내가 아빠를 따라가게 됐다. 작은 마이크와 차 위에 매 달린 스피커 그리고 트럭 짐칸 천막 안에 준비된 야채 까지 이제 준비 완료.

어느 마을부터 갈지 결정하지도 않은 채 시동을 걸고 야채 장사 여행을 시작했다.

아빠도, 나도 무척이나 긴장하고 있었다. 생전 처음 방문하는 마을에서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방송해야 할지 아빠는 무척 고민했었을 거다. 최대한 깊은 산속마을, 야채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곳을 찾아 장사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시동을 걸었을 거다.     

 

처음 도착한 마을. 아빠가 말했다.

“해옥아. 이제 뭐라고 방송할까?” 아빠는 많이 긴장하고 있었다. 처음 마이크를 대고 방송하는 것이 무척이나 어색했는지 모른다. 아빠는 적어온 야채 리스트를 만지작거리시면서 방송을 시작했다.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왔어요. 맛있는 계란이 왔어요.”

떨리는 아빠 목소리. 어색한 아빠 얼굴.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 모든 게 어색했다.

사람들이 정말 야채를 사러 나올까? 아무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계란, 콩나물, 두부, 시금치 있어요. 맛있는 사과.....” 아빠는 준비해 온 리스트에 있는 야채 이름들을 마이크에 대고 방송하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트럭, 그리고 울려 퍼지는 아빠의 목소리.

드디어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신다. 아빠는 얼른 차에서 내려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시껴! 뭐가 필요하시니껴?”

“아. 그냥 야채 좀 보러 왔니더.”

아빠는 얼른 트럭 천막을 펼치고 높이뛰기 선수처럼 잽싸게 트럭 뒤에 올라탔다. 그렇게 어색해 보이던 아빠의 얼굴도, 목소리도 첫 손님이 오자 아주 전문가 야채 장수처럼 바뀌었다.

“콩나물은 새벽에 제가 시장에서 띠 가지고 와서 완전히 싱싱합니더.”

“아저씨. 시금치는 얼마니껴?”

“시금치요? 아 기다려보이소. 내가 젤 좋은 걸로 싸게 드릴께.”

신이 난 아빠는 아주머니가 필요한 몇 가지 야채를 검정색 봉지에 넣어서 주었다. 아빠가 허리에 차고 있던 새로 구입한 돈 주머니가 드디어 빛을 발하는 시간이었다. 바꿔 왔던 잔돈들을 계산해서 아주머니께 주고 나서야 첫 번째 장사가 마쳐졌다.

난 놀이동산에 온 아이처럼 아빠를 보며 기뻐했다. “와! 아빠. 최고 최고!”

아빠도 나의 올라간 엄지손가락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자! 해옥아 또 다른데도 가보자.”

아빠는 더 자신감이 생긴 듯 했다. 다른 마을로 이동하면서 준비해 온 노래를 틀었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 헤이! ~~♬”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2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노래가 얼마나 흥이 나던지. 아빠와 나는 노래를 같이 따라 부르며 신나게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다음 마을에 도착했을 때 나는 아빠가 써온 야채 리스트 종이를 들며 말했다.

“아빠. 제가 불러 드릴게요. 아빠는 천천히 운전하면서 방송하세요.” 아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란이 왔어요. 계란이 왔어요. 맛있는 계란이 왔어요.”

“아빠. 콩나물, 두부, 버섯, 시금치......”

내가 불러주는 대로 아빠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때론 한 장 빼 곡이 적혀 있던 야채들과 과일들 이름이 다 말하기 전에 아줌마들이 나오기도 했고 때론 적어온 리스트를 다 말해도 아무도 안 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마을들을 이동 할 때 마다 아빠는 더 자신감을 얻었다.

동네에 도착해 노래를 끄고 아주 천천히 이동하며 딸이 불러주는 리스트를 마이크에 대고 이야기 하던 아빠. 한손은 운전대를 잡고 한손은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에게 야채 사러 오라고 방송하는 아빠는 나에겐 어느 텔레비전에서 나 나오는 로맨틱 가수처럼, 아나운서처럼 보였다.


 해가 넘어가는 저녁이 되어서야 우리는 장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잔돈으로 가득 차 두툼해진 아빠의 돈주머니처럼 아빠와 나는 첫 야채 장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주 큰 수익을 얻진 못했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함께 해냈다는 것. 새로운 시작을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아빠와 나는 행복했다.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해지는 하늘 아래에서 아빠의 이동 야채가게 빠르게 집로 이동하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노래를 흥얼거리던 아빠. 그리고 마음과는 다르게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 져서 아빠 옆자리에서 꾸벅 꾸벅 졸던 나.  

어두워진 도로에 파랑색 포터트럭이 쏜살 같이 달린다. 그리고 지나간 자리에 음악 소리가 맴돈다.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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