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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Sep 21. 2016

불불 새의 장례식

아이가 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방법

아이들의 시험 기간. 이제 초등학교 2학년 4학년인 아이들 역시 하루에 한 과목씩 시험을 치른다.

수능 시험도 하루에 다 끝내는 한국에 살다 온 나로서는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뭐 수능 시험도 아니고 초등학생들 시험인데 왜 이리 길게 잡는담. 하루에 다 마치면 얼마나 좋아?’

아이들의 성적이 잘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 보다는 빨리 그 시험 기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나다..      


우리 집에는 여러 애완동물들이 있다.

고양이 두 마리, 개 한 마리, 토끼 3마리, 새 2마리 그리고 닭 6마리.

많지는 않아도 작은 동물농장 같은 느낌은 난다.

특별히 요즘은 새끼 토끼 3마리의 귀여움에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창문으로 연결 된 새장 안에 앵무새 한 마리와 불불이라 불리는 작은 새 한 마리, 그리고 새끼 토끼 3마리가 함께 산다.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고 토끼들에게 인사를 하고 먹을거리를 준다. 가끔 앵무새와 토끼가 음식을 가지고 싸울 때도 있지만 그럭저럭 평화로운 모습들이었다.  

눈송이 같은 토끼 세마리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하얀색의 새끼 토끼들이 작은 새 불불을 잡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머리 위로 예쁜 깃털이 올라가 있는 멋쟁이 불불의 털들이 다 빠지고 몸도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하얗고 순하게만 보이는 토끼 한 마리가 불불을 물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할 말을 잃었다.

뒤늦게 일어난 큰 아이가 불불을 보고서는 급하게 구급상자를 가지고 온다.

“성민아. 아무래도 불불이 거의 다 죽어 가는 것 같아. 그냥 버려. 엄마는 보기도 싫다야.”

“엄마, 안 돼요. 내가 얘를 어떻게 잡았는데요. 치료하면 될 거에요.”

맞다. 이 불불은 새총으로 성민이가 잡은 새였다. 새총으로 잡은 불불이 앵무새에게 미움을 받을 때도 성민이는 항상 불불을 챙겨 줬다. 말도 못 알아듣는 앵무새를 혼내가면서 말이다.

하지만 항상 불불은 한쪽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있다가 가끔 앵무새의 눈을 피해 내려와서는 과일을 먹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불불이 새로운 용기가 생겼는지 자신 있게 앵무새 옆을 지나다니기도 하고 같이 음식을 먹기도 해서 우린 이제 불불이 적응했나 보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토끼의 공격이라니.

채식 동물이라고 알고 있던 하얀 눈송이 같은 순백의 토끼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성민이는 숨이 가쁘게 넘어가는 불불을 손으로 잡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몸을 감쌌다.

난 그 모습 자체가 보고 싶지 않았다. 너덜너덜 온 몸이 헤어진 그 새를 내 아들이 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결했다.

“성민아. 제발 그 불불 저기 멀리 버려. 지저분하지도 않니? 거의 죽어 가잖아. 숨 가쁘게 쉬는 것 봐.”

“싫어요. 엄마. 난 얘 꼭 살려 낼 거예요.”

하얀 붕대로 감싼 불불에게 물을 먹이더니 바나나를 조금 뜯어서 넣어 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불불은 그제야 만족 했는지 사르르 눈을 감았다. 입에 바나나 조각을 물고서는 숨을 거둔 불불을 보며 아이는 믿기지 않는 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성민이가 좋아하던 불불새

“엄마. 불불이 진짜 죽었어요.”

“그래. 엄마가 뭐라 그러던. 죽는다고 했잖아. 얼른 저기 숲속으로 던져.” 냉정한 엄마.

“엄마. 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불불을 그냥 던질 수 없어요. 저기다 묻을 거예요.”

집 뒤뜰을 향하는 아이의 손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래. 알았어. 그렇게 해.”


오늘도 아이의 중간고사가 있는 날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아이의 소중한 친구와의 이별을 막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장례식에 함께 해 줬다. 이미 감고 있던 붕대를 가지고 불불을 꽁꽁 싸고 빨간 실로 단단히 묶어 놓은 성민이. 어쩌면 올해 초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입관하는 모습을 함께 지켜봐서 아이가 더 자랐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불 장례식을 준비하는 큰아이

뒤뜰에 호미로 땅을 파고 붕대로 감겨진 불불을 땅에 묻었다. 성민이는 닭이나 개들이 파면 안 된다며 아주 단단히도 덮는다. 흙을 야무지게 다 밟고서야 아이의 얼굴은 평온해 보였다.

“엄마. 고마워요. 불불 장례식에 같이 있어줘서.” 난 아무 말 하지 않고 아이를 꼭 안아줬다.  

너무 매몰차게 불불을 버리라고 말했던 걸 후회 하면서.     

어쩌면 내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이 아이에게는 소중한 무엇인가였을 수도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내게는 아무런 의미 없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의미를 가지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그 누군가의 소중한 것을 인정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것, 내 소중한 이들, 내 소중한 추억만이 아닌......

그의 것, 그녀의 소중한 이들, 그 분의 소중한 추억들까지 인정해 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배려를 가진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나의 슬픔만이 아닌 다른 이의 슬픔도 돌아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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