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로움을 배워가는 중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아이를 키우는 지금까지도 육아휴직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10년 넘게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 육아라는 일을 하게 되다니.. 매일이 낯설기만 하다. 아침부터 남편이 퇴근하는 순간까지 아이와 시간을 보내다 문득, 결혼 전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치열하게 일을 하다가 주말엔 나를 찾겠다며 다양한 취미에 도전하고, 일요일 저녁엔 한가롭게 침대에 누워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넷플릭스를 시청하다 잠에 들었던 날들. 외롭지만 자유로웠던 날들이었다.
혼자였던 날들이 가끔 생각날 땐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뒤적인다. 이땐 임신선과 뱃살도 없었고 원하면 언제든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할 수 있었고, 온전한 나의 하루를 보내왔던 과거의 내가 있다. 남편과 연애할 때의 사진도 보며 흥분과 설렘이 머릿속을 채울 때쯤 고개를 내려다보면, 아이는 내 품에서 자느라 두 손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집안은 아이의 장난감으로 어질러져 있어 누군가 내 바탕화면을 헤집어 놓은 것 같다. 정돈되지 않은 일상이 반복되면서 나의 하루하루는 계속해서 흔들렸다. 이러한 불안함은 곧 아이에게로 향했다. 어느 날 아이가 밥 먹는 양이 줄어들면 불안은 더욱 커졌고, 정답은 없는데 자꾸만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맞추게 하니 육아는 힘들어졌다.
늘 계획을 세우고 하루를 실천해 왔던 나에게 계획은커녕 내 밥 챙겨 먹기도 힘들게 하는 것이 육아였다. 왜 수유량이 적어졌을까? 어젠 160ml를 먹던 앤 데.. 이 말만 계속하는 나에게 남편은 괜찮다고, 내일은 잘 먹겠지 토닥여주었다. 며칠 후, 다시 아이가 밥을 잘 먹는 것을 보며 왜 그렇게 걱정했을까? 아이도 사람이고 먹기 싫을 때가 있고 배 터지게 먹고 싶은 날도 있을 텐데.. 스스로 그어놓은 가이드 안에 나를 가둬놓은 것임을 깨달았다.
"아이랑 논다고 생각해 봐. 그럼 마음이 좀 편해질 거야."
아주 신생아일 때 아이가 계속 울기만 해 힘들었던 나에게 남편이 해준 말이었다. 우는 아기를 울지 않게 하려고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했던 나에게 뒤통수를 쿵 때리는 말이었다. 나는 어릴 때 뭐 하고 놀았지? 하고 생각해 보니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모래집도 만들고, 엄마가 바비인형을 사주지 않아 종이에 인형을 그려 인형놀이도 하고, 레고도 마음대로 쌓고 부수고 놀았었다.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는 다 처음일 테니, 37년 먼저 살아본 선배로서 어떻게 재밌게 노는지 알려줄게! 하고 마음속으로 나를 리셋하니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물론 아이 재우는 건 별개의 두려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1년이란 시간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아이의 발달과정에 따라 필요한 감각 발달 등의 큰 줄기를 토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놀이 방법으로 최대한 같이 놀고 있다. 노래만 불러주다가 아이가 모빌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는 율동을 곁들여 몸을 어떻게 움직이는 것도 시각적으로 보여주며 놀고 있다. 춤도 못 추는 몸치에다가 출산 후 저질 체력이지만...
1년이라는 육아휴직으로 다시 일을 못 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도 있었지만, 아이와 가족이 되어 매일매일 놀고 있다. 남편이 대신 일을 해주어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한 주 한 주 달라지는 아이의 성장을 아쉬워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수면 교육을 한답시고 침대에 눕히고 울어도 안아주지 않았지만, 이 시절이 또 언제 올까 싶어 자다 깨어 울면 안아주고 재운다.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며 또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계획하고 그대로 실행하는.. 어찌 보면 조금 빡빡했던 나의 인생이 조금은 내려놓고 살아가는 게으름과 여유를 배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