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여름 어느 날
서울역에서 너를 만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미 끊어놓은 열차표와
언제나 얄궂게 마주친 너 사이에서.
마치 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처럼 굴었던 내가,
약속과 신뢰와 스스로의 신념을 깨고
마치 아무런 일도 없는 한량처럼
너에게 커피 한 잔을 권할 수 있을 것인가.
쓸데없이 드라마틱한 내 인생은
너에게도 어김이 없어서
너를 마주하는 기적은 원하지 않는 때 일어나더라.
인연인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만난다는데
너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으로만,
있는 데로 초라하고 곤란할 때만 마주치더라.
그래서 너와 난 인연이 아닌 것일까.
알고 있다.
너를 마주치는 것만도 충분한 기적임을.
신은 그렇게 가혹하지만은 않아서
언제나 내게도 충분한 기적을 베풀지만
단지 커피 한 잔을 권할 용기가 없을 뿐이란 것도.
단지 항상 너를 외면해야 할 변명과 핑계를 찾아 합리화할 뿐이란 것도.
잊지 못한 사람은
왜 얄궂은 순간에만 마주칠까요?
완벽한 기적이란 없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