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상승을 경계하는 스쿠버다이빙
주저앉는 일이 생겨버렸다. 내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탓을 하며 스스로 갉아먹으면서 가라앉았다. 수면 위로 올라오기까지 많은 시간과 힘든 노력이 들었다. 그때는 아래로 가라앉는다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고 죄스러웠다.
스쿠버다이빙은 잘 가라앉는 법을 배운다. 발이 닫지 않는 바다 한가운데서, 장비에 공기를 빼고 귀가 먹먹해지지 않게, 코와 입을 막고서 숨을 내쉬는 이퀄라이징에 신경 쓰면서 바닷속으로 잘 가라앉는 방법 말이다. 오히려 스쿠버다이빙에서는 급 상승을 가장 경계한다. 갑자기 상승하면 몸에 쌓인 질소가 몸속에서 팽창하기 때문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바닷속에서는 수면으로 갑자기 상승하지 마세요. 차라리 가라앉으세요. 계속 보고 있을게요."
언제부터 가라앉는 일이 무서워졌을까. 어영부영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입시를 치르고 대학에 입학했다. 1학년은 대외활동, 2학년은 학점관리, 토익 공부는 3학년 말부터 선배들이 흔히 했던 취업의 길을 나도 모르게 걸었다. 낭만은 스펙에 가려졌고, 추억은 대외활동에 묻혔다. 기껏해야 술이 떡이 되도록 마신 기억과 그나마 손을 잡고 캠퍼스 안을 거닐었던 낭만들이 남았을 뿐이다. 누가 정한지도 모르는 실체 없는 길을 퀘스트 마냥 걷다 보니, 갓길이 보이지 않았고 이 길에서 떨어지면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내려갈 곳 없어 올라갈 일만 남은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내려갈 일도 가라앉을 일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일도 있음을 몸소 부딪히며 깨닫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다이빙을 통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 '잘 가라앉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깊게 호흡하며, 천천히 나의 컨디션에 맞게. 급하게 상승하기보다는 차라리 가라앉아 나의 안전을 살피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을. 가라앉아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가라앉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오히려 그 세상이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올라가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는 것을. 그렇게 하나씩 천천히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