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제 100여 가지의 쇼핑리스트를 곁들인
계약서를 검토하고 나서 최종 도장은 입주 날 찍기로 했다. 역시나 걱정병이 도져서 이게 혹시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많이 알아봤는데, 우선 계약금의 10%(100만 원)만 송금한 상태이고 이렇게 진행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하여 마음을 조금이나마 놓았다. 지금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는 이 집에 편하게 앉아 돌아보니, 집주인은 관리할 집도 많고 그 입장에서는 저렴한 월세집 하나 계약하는 거라 크게 체크할 것 없이 계약을 진행하려는 것 같았다.
부모님의 허락도 받았고, 집도 정해졌고, 이제는 가장 고대해온 집 꾸미기를 할 시간이다! 독립을 준비할 때부터, 아니 그냥 아주 오래전부터 로망이던 집 꾸미기. 독립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다 집 꾸미는 상상부터 하지 않을까?
"침대에 베개를 많이 둬야지"
"예쁜 앞치마를 사야지"
"식탁은 꼭 원형으로 해야지"
집 꾸미기는 일단 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건데도 내가 어떤 공간에 살게 될지도 모르면서 다년간 쌓아온 집 꾸미기의 로망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서 나는 우선 이케아에 갔다(?). 이케아는 부모님 집 인테리어 할 때부터 종종 가본 적이 있었다. 물론, 나는 그때도 내 미래의 집 인테리어를 상상하기 바빴지만. 이케아를 둘러보면서 '나중에 내 집은 이렇게 꾸며야지!' 하면서 레퍼런스로 삼은 인테리어도 많았고, 마음에 들었던 여러 가지 소품들도 많았다. 하지만, 막상 당장 입주를 앞두고 이케아에 가니 뭘 사야 할지 몰랐다. 다 사야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입주 날 꼭 필요한 것들만 우선적으로 사기로 했다. 입주 첫날은 분명 계속 청소를 할 테니 돌돌이, 행주와 같은 청소용품들을 샀다. 그리고 저녁에 덮고 잘 이불과 이불 커버, 베개를 골랐다. 이렇게만 해도 이케아의 큰 파란색 가방이 꽉 찼다. 비록 내가 원하던 예쁘고 감성적인 소품은 하나도 못 샀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쓸 이불을 직접 골랐다는 게 부끄럽게도 뿌듯했다.
대책 없이 이케아를 다녀온 뒤로 나는 좀 더 세세하게 쇼핑리스트를 짜기로 했다. 침대, 책상부터 수저, 칫솔, 쓰레기통까지 사야 할 것은 족히 100가지가 넘었다. 그래서 나는 이케아에서 했던 것처럼 입주 날부터의 내 행동을 시뮬레이션하면서 쇼핑리스트에 우선순위를 매겨나갔다.
첫날은 대청소를 할 거니까 → 청소기가 필요하겠다 → 청소 끝내고 밥을 먹겠지? → 배달음식과 일회용품을 쓰더라도 매 끼니마다 쓰레기가 나올 테니 음식물/일반 쓰레기통이 있으면 좋겠네 → 밥을 먹고는 피곤해서 금방 잘 텐데 → 침대 프레임은 나중에 사더라도 매트리스는 있어야겠다
이렇게 내 행동을 그려나가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필요한 것들도 발견하게 되었고 훨씬 효율적으로 쇼핑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이렇게 되면 예쁜 것들보다는 꼭 필요한 것들을 먼저 사게 되어 '예쁜 집으로 꾸미기' 로망은 잠시 몇 달 뒤로 미루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필요한 물건을 한 번에 사려면 돈도 많이 들고, 각 제품을 하나하나 알아보는데도 시간이 참 많이 걸리는데 이 방식으로 생각하니 필요한 걸 하나하나 채워나가면서 미션을 깨는 것이 또 나름의 재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