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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여행을 꿈꾸며

[에필로그] 여행을 다녀온 후

by 채숙경

8월 13일 부산에 도착한 후 다음날은 하루종일 잠만 잤다. 부다페스트에서 한국으로 오는 내내 비행기에서도 자고 부산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도 자고. 여행 내내 푹 자고 무리한 일정을 소화한 것도 아닌데, 시차가 바뀌어서 그런지 잠이 쏟아졌다.


8월 15일에는 거제에 사는 언니와 오빠가 엄마 모시고 같이 점심 먹자 하여 남편과 함께 엄마를 모시고 거제로 갔다. 남편은 거제 간 김에 블랙야크 명산 인증 하나 하자며 계룡산을 오르자고 했다.

한여름 등산은 힘들다. 땀을 뻘뻘 흘리며 묵묵히 정상을 향해 올랐다. 계룡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일품이었다. 도시 풍경, 바다 풍경 모두 볼 수 있는 곳이다. 멋진 경치를 감탄하고 내려와 식당으로 갔다.

맛있는 음식이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져 있었다. 오랫만에 가족들 만나 즐거운 점심식사를 하였다.



하지만 긴 여행 끝에 등산은 무리였나보다. 다녀온 후 며칠을 몸살로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돌아와서 하루 쉬어서 괜찮을 줄 알았다. 자신의 체력을 과신하면 안 된다. 나이 들어감을 알아차려야 한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많은 것을 보고 싶어 욕심을 부리기 쉽다. 많은 곳을 보려다 몸이 안 좋아지면 아예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으니 체력에 맞게 적당한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다.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유연성도 필요하다. 우리의 여행이 그러했다고 생각한다. 멀리 유럽까지 갔는데 또 언제 오겠나 싶어 최대한 많은 곳을 보고 싶어 많은 계획을 세우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체력이나 날씨 등 상황에 맞게 일정을 변경하기도 하였다. 비록 예기치 못한 일로 당황하고 마음 쓰는 일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다. 오히려 두고두고 얘기할 추억이다. (지금도 우리는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여행을 다녀온 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항상 듣는 질문이 있다.

"다녀온 곳 중 어디가 가장 좋았어요?"


어디가 가장 좋았을까?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딛고 과거의 역사로부터 배운 교훈으로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가는 도시, 깨끗하고 정돈된 느낌의 베를린도 좋았고 폐허와 부활 등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담하고 고즈넉한 드레스덴의 느낌도 좋았다. 유럽의 낭만을 가득 담은 프라하의 아름다운 전경, 친절한 사람들도 잊을 수 없다. 중세 유럽으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동화같은 작은 마을 체스키크룸로프, 완벽한 유럽 예술의 도시 빈도 여행하기 아주 좋은 곳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곳을 가보진 못했지만 부다페스트 다뉴브강과 국회의사당의 아름답고 황홀한 야경의 헝가리도 정말 멋있었다.

모든 곳이 다 좋아서 어디가 가장 좋았다고 하나만 선택하는 건 너무 어렵다. 모든 곳을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가 보고 싶다. 그 중 남편과 함께 간다면 (그의 여행 스타일에 맞을 것 같은) 드레스덴으로 가고 싶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아 걸어서 어디든 갈 수 있고 많이 붐비지도 않고 여유 있는 곳이다. 브륄의 테라스나 근처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차를 마시는 것도 좋고 심심하면 박물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거나, (우리는 가지 않았지만) 유람선을 타고 작센 스위스로 가서 하이킹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우 아직 가보지 않은 뮌헨, 하이델베르크 같은 서독일의 도시나 짤츠부르크, 할슈타트 같은 오스트리아의 예쁜 도시도 가보고 싶다.


여행을 다녀온 후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다 퇴근한다. 집에 오면 가족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한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히라야마씨를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하루하루가 그야말로 완벽한 날들이다. 완벽하지만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보면 유럽을 다녀왔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 가끔은 그런 완벽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롭고 특별한 꿈을 꾸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TV에서 세계테마기행 같은 여행 프로그램을 보다 우리가 다녀온 곳이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채널을 멈추고 끝날 때까지 꼭 본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을 소개할 때도 본다. 다음번엔 저길 가볼까 하면서.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직전 대만에 갔다 온 후로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간 적이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남편과 단둘이 해외여행을 간 적도 없다. 아이들이 커서 독립하고 나면 남편과 둘이 여행을 가게 될 텐데 그때가 기대된다. 남편은 아무 계획없이 여행가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싶단다. 유명 관광지를 꼭 돌아보지 않아도 낯선 곳에서 편안하게 쉬면서 그곳 사람들처럼 살다 오고 싶단다. 아주 계획형인 나하고는 맞지 않는 타입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여행도 해 보고 싶다.


가족과의 여행도 좋고 남편하고 둘이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은 또다른 즐거움이 있다. 이번 여행을 다녀온 후에도 우리 사인방은 계속해서 돈을 모으고 있다. 올해는 우리 딸이, 내년에는 지현언니딸이 연이어 고3이라 지금 당장 마음 편히 해외여행을 다녀올 수는 없지만, 우리는 또 다른 여행을 꿈꾼다. 언제 어디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꿈을 꾼다. 그때 또 브런치스토리에 나의 여행 기록을 남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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