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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Jan 19.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25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7

  <탈출까지 D-92:하베스트 1층:똥방>



  <곱창을 빨리 뒤집지 못한 죄, 그 형벌은 좌천>

  구관이 명관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는 명언을 우리는 삶 곳곳에서 떠올릴 수 있다. 이직한 직장이 학을 떼며 나온 전 직장보다 별로일 때, 어딘가에 유토피아가 있을 것 같아 떠났는데 한국이 그리울 때, 그리고 곱창(양의 위)을 빨리 뒤집지 못한 죄로 똥방에 좌천되었을 때. 어떻게 곱창방이 명관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똥방을 보게 하라.

  곱창방을 나서자마자 뜨끈한 증기와 함께 배설물 냄새가 훅 풍겨져 나왔다. 냄새를 증기에 데워 퍼트리면 구역감이 곱절이 되는 마법, 마치 똥 묻은 스팀 타월을 얼굴에 얹은 것 같았다. 곱창방은 냄새라도 안 났는데... 숨을 참고 인수인계자를 따라갔다. 앞쪽에서는 초록색 건더기에 절여진 빵빵한 돼지 오줌보 같은 주머니를 터트리고 있었고, 뒤편에서는 창자 같은 기다란 장기를 휙휙 돌리고 있었다. 어디로 배치될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오면 안 될 곳에 왔단 것.


  <노란망을 쓴 자, 그 무게를 견뎌라>

  영화에 흔히 나오는 기절 했다 일어나니 절벽 앞인 장면은 과장이 아니다. 극도의 리얼리즘이다. 거기까지 간 과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데 똥주머니가 내 앞을 유유히 지나가고 있었다. 벽에 난 구멍은 몇 초 간격으로 똥주머니를 뿜어냈고, 최전선에 선 노예가 주머니를 고리에 걸었다. 두 번째 타자는 주머니에 붙어있는 지방을 손으로 떼어내고, 맞은편 세 번째 노예가 기다란 장기와 잔여 지방을 칼로 제거한다. 작업자의 숙련도에 따라 장기가 초록색 찌꺼기를 뿜어내거나 판(하수구로 향하는 통로)에 잔뜩 쌓이기도 한다. 마지막 타자가 똥주머니에 칼집을 내고, 그대로 레일을 타고 올라간 주머니는 삶아져 곱창방에 쏟아진다.

  이 중 내가 맡은 노역은 지방 떼기였다. 줄줄이 매달려오는 주머니의 형태는 각양각색이었다. 판에 닿을 듯 커다란 것과 비교적 작은 것, 뽀얗고 깨끗한 것과 피하지방임을 알리듯 누렇고 똥찌꺼기가 잔뜩 묻은 것, 얇은 막만 있는 것과 두껍고 포도송이 같은 지방 덩어리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

  "지방 손으로 뜯어내면 돼요."

  내가 왜? 당시 돼지 오줌보 같은 그 주머니가 어느 부위인지를 몰랐기에 더 거부감이 들었다. 미지는 두려움을 동반하니까. 심지어 나는 주머니에 담긴 초록 찌꺼기가 양의 대변이라는 강한 의심을 품고 있었다.

  "이걸요?"

  "네, 그냥 잡아서 떼시면 돼요."

  제가요? 까지는 아무리 멘털이 나갔어도 차마 뱉을 수 없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똥물(정확히는 잔디)을 뒤집어쓴 채 똥주머니의 인해전술을 쳐내고 있었으니까. 그때 '이런 일 못 해.'를 시전하고 잘렸어야 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머뭇머뭇 대다가 지방으로 손을 뻗었다. 물컹하고 뜨끈한 감촉이 생생히 느껴졌다. 후각과 촉각의 강한 자극, 이것이 오감놀이... 아니, 오감 고문인가? 그렇게 나는 똥주머니 노예군단에 합류했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똥주머니를 그대로 보내기 일쑤였다. 미끄러운 데다 크기가 크고 지방이 두꺼울수록 유착이 심해 잘 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지에 세 번째 노예에게 미처 제거되지 않은 지방을 자르는 작업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주머니는 초단위로 쏟아졌고, 나는 금방 요령을 터득했다. 지방에 엄지를 쑤셔 넣어 막에 구멍을 낸 뒤 손가락을 고리처럼 걸어 뜯는 것이다. 나는 한국인 특유의 노예근성을 발휘해 기계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얼마지 않아 엄지 손가락에 감각이 사라졌다.

  장점인지 단점인지 몰라도 똥방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었다. 도리도리 잼잼을 하는 수준으로 내 고개는 자꾸만 시계를 향했다. 이렇게 숨이 헉헉 나올 만큼 지쳤는데 지금쯤이면 5분은 지나 있겠지 싶어 확인하면 단 1분도 지나있지 않았다. 망할 놈의 쉬는 시간은 언제 오는 거지? 고인 물 노예용인 남색머리망 속 유일하게 노란 머리망을 한 나. 신입을 배려해 주기 위해 노란망을 쓰게 한 거 아니었나요? 졸도하기 직전인데 왜 나는 고인 물과 똑같은 노동 강도로 일하고 있는 거죠? 플랭크를 할 때보다 더욱 간절하게 시간이 흐르기를 기도하고 애원하고 원망하고 좌절하고 절규했다.

  첫 번째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엄지손가락이 화형식을 한 듯 불타고 있었다. 아무런 감각이 없어서 움직여지지가 않는데 고통만은 선명했다. 인터넷이 터지는 구역에서 쌓여있는 메시지에 답장을 하는데 손이 개다리춤을 췄다. 죄다 오타여서 제대로 쓰인 글자가 없는 지경인데 수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전송버튼도 겨우 누를 지경이었으니까. 진심으로 도망이 간절했다아니, 실은 도망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이게 맞나?' 순간순간 드는 의문은 계시임에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서지 않았던 건 아직 플레처(양공장) 맛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쉬는 시간에 찍은 사진, 표정에 많은 감정이 담겨있다


  <숙련된 똥방 첫 타자는 소설의 완벽한 첫 문장과 맞먹는다>

  소설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눈길을 사로잡는 첫 문장이다. 얼마나 강렬하게 독자를 붙잡아두느냐로 완독률이 정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완벽한 첫 문장 공식은 똥방에서도 통했다. 첫 번째 노예가 숙련될수록 다음 노예들이 편했다. 하지만 움직이는 레일에 미끄럽고 무거운 주머니를 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구멍을 위쪽에 내면 주머니가 찢어져 판에 떨어졌다. 간당간당하게 고리에 걸려있다 해도 다음 타자가 지방을 떼고 나면 찢어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판에 떨어진 주머니는 하수구에 빠지기 전에 다시 걸어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벽에서 쏟아져 나온 똥주머니가 한가득 쌓였다. '잘 가라' 하고 시원하게 하수구행을 눈감는 선택지 따위는 없기에 밀린 걸 해치우기 위해서 더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그럼 찢어질 일 없게 구멍을 아래쪽에 내면 어떻게 될까? 빵빵하게 부푼 주머니가 똥물을 뿜어댄다. 시각적으로도 후각적으로도 역겹다는 말은 아무리 해도 부족하기에 하지 않겠다. 하지만 작업대에 불순물이 가득할수록 작업자들에게 똥물이 더 많이 튀었다. 이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 노동일지라도 작업자에 따라 결과물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은 일이기에 반복만 한다면 숙련자가 될 수 있기도 했다. 하지만 플레처 로동수용소를 관통하는 모순의 고리가 있으니... 이는 일을 할수록 몸이 성한 곳이 없어져 요령을 상쇄한다는 것이다. 요령 +10 골병 -10, 도합 0의 결과물을 산출한다.


  <똥방 두 번째 노예 선정 최고의 첫 번째 노예>

  똥방 첫 번째 노예의 작업물에 가장 영향을 받는 건 두 번째 노예다. 두 번째 노예가 일을 잘 못 할 때 수습을 해야 하는 것도 첫 번째 노예다. 이처럼 첫 번째 노예와 두 번째 노예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공생 관계에 있다. 똥방 모든 노예들이 매번 역할을 바꿔 일하는 동안 신입 노예인 나는 두 번째 자리를 지켰는데, 앞에 누가 오느냐에 따라 가뜩이나 (가)족같은 일이 얼마나 더 (가)족같아지는가를 체감했다.

  최고의 첫 번째 노예는 단언컨대 썬오였다. 고이다 못해 썩은 물인 그는 죽지 못해 출근하는 여타의 노예들과 달리 새벽부터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단 하나의 똥주머니도 놓치지 않고 척척 거는 데다, 구멍을 뚫은 위치마저 적절했다. 그래서인지 그가 건 똥주머니는 힘을 주어 지방을 뜯어내도 고리에서 이탈한 적이 없었다. 여담이지만 그의 수더분한 성격과 먼저 친근하게 다가와주는 모습에 카풀 제안(헌팅)을 하기도 했다. 훗날 그는 나의 두 번째 카풀 차주인이 된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거하게 뒤통수를 맞게 되는데...

  이인자는 뚱스틴비버로 그는 저스틴 비버처럼 항상 팬티를 반쯤 노출하고 다녔다. 색깔과 무늬가 범상치 않은 팬티만 입으면서 남들에게 보여도 알 바 없다는 태도는 감탄을 자아냈다. 나의 소원은 그가 한 번이라도 온전히 바지를 입는 것이었지만 도망을 치는 날까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의 실력은 출중했다. 똥주머니 하나 걸 때마다 극심한 손가락 통증을 호소하며 힘든 티를 있는 대로 내긴 했지만 말이다. 엄살을 부려도 실력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그가 최고의 첫 번째 노예가 될 수 없는 이유는 내게 창자 싸대기를 날렸기 때문이다. 간혹 벽에 뚫린 구멍에서 창자가 나올 때가 있는데 첫 번째 노예는 그걸 뒤편으로 전해줘야 했다. 바쁘다 보니 다들 여유 있게 건네기보다는 상체만 반쯤 돌려 던지는데, 유독 그의 옆에 있을 때면 창자에 맞기 일쑤였다. 팔에 맞았을 때는 그도 딱히 사과는 하지 않았고 나도 티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창자에 머리를 철썩-하고 맞았을 때는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막장 드라마에서 더 큰 자극을 위해 각종 음식 낭비 싸대기쇼를 선보이긴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창자싸대기를 이길 수 없으리라. 가뜩이나 썩은 얼굴을 처참하게 일그러트리고 노려보자 그는 머쓱하게 사과했다. "쏘리" 하지만 사과가 무색하게 그는 그 뒤로도 날 향해 창자를 날려댔다.


  <똥방 두 번째 노예 선정 최악의 첫 번째 노예>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그는 내 맞은편에서 세 번째 노예(창자 제거)로 일했다. 대부분의 노예들이 머리망과 수염가리개를 쓰고 있어서 얼굴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그만은 빠르게 각인되었다. 그가 일 할 때면 똥물 집중 폭격을 당했기 때문이다. 창자를 제거할 때 시작점을 잘라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잘랐다니 똥물이 사방팔방에 튈 수밖에. 게다가 그렇게 잘린 창자들은 하수구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대신 작업판 중간에 쌓여 더 많은 똥물이 튀게끔 했다. '누가 쟤 좀 저기서 치워라...' 내 바람이 이루어진 건지 그는 세 번째 자리에서 물러나 내 옆자리로 왔다.

  그가 일을 못 한다는 건 내게 단점인 동시에 장점이기도 했다. 그가 고리에 건 똥주머니는 자꾸 찢어져 하수구에 빠졌다. 하지만 그가 떨어진 똥주머니를 건지려고 애쓰는 동안 나는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어느새 잔뜩 쌓인 주머니산에 마음이 급해진 그는 자꾸만 실수를 연발했다. 몸은 편했지만 나는 그가 맞은편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똥물을 맞았다.

  웃을 일이라곤 없는 양공장, 죽는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처럼 지방을 떼고 있을 때였다. 똥판에 잔뜩 쌓인 똥주머니가 넘칠 듯 넘실댔고, 기껏 그가 고리에 건 주머니는 찢어졌다. 새 주머니를 걸려던 그는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찢어진 주머니를 건져 다시 고리에 걸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찢어진 주머니는 또다시 찢어졌고, 와중에도 구멍은 똥주머니를 숨풍숨풍 뱉어댔다. 그는 조급하게 벽 한 번, 하수구 한 번 보며 똥주머니를 건지려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판에 고여있던 똥주머니들이 하수구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찢어진 똥주머니는 말끔히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허우적대던 팔을 멈추고 하수구를 향해 대차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똥주머니가 쌓이든가 말든가 하수구를 죽일 듯 노려보며 10초 이상 뻐큐를 날렸다. 그 모습은 죽을 날만 기다리는 노인네(나)에게 2 주치 웃음을 안겨 주었다.


  <눈 감으면 아른대는 상사병처럼>

  여길 언제까지 다녀야 하는가는 입사 전부터 이어져온 난제였다. 이왕 시골까지 내려온 거 돈을 바짝 벌어가자는 마음 반, 세컨 비자 충족 기간 채우자마자 떠나고 싶은 마음 반. 하지만 똥방에 들어갔다 나온 후 '빠른 탈출이 답'임을 깨달았다. 돈 보다 사람이 먼저이기에. 세컨만 따면 도망가자고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하지만 눈앞에 레일에 걸린 똥주머니가 지나갔다. 누군가 억지로 손을 잡아채 비계를 뜯게 만든 것처럼 물컹한 감촉이 생생했다. 얼른 자야 내일 또 노역을 하러 가는데, 눈 감으면 아른대는 똥주머니에 억지로 눈을 떴다. 그만 떠올리고 싶어도 상사병에 걸린 것처럼 똥방에서 지방을 뜯던 순간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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