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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Jan 26.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26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8

  <탈출까지 D-83~D-73:하베스트 1층:창자방/고기방>



  <돌려 돌려 뺑이판!>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인 것은? 오이디푸스가 정답을 맞히기 전까지 스핑크스는 이 질문 하나로 소위 꿀을 빨았다. 스핑크스가 더 오래 해 먹고 싶었다면 은유나 철학은커녕 모순으로 가득해 논리로는 풀 수 없는 문제를 냈어야 했다. 세 명이 속해있지만 두 명만 있을 수 있는 곳은? 곱창방! 21세기에 노예 제도가 남아있는 곳은? 더보 플레처 로동수용소! 플레처 맛을 본 자가 아닌 이상 절대 맞출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닌가.

  입사 첫날 인수인계자는 말했다. '안쪽 방(곱창방) 소속은 세 명이지만, 세 명이 있으면 안 돼요.' 그 말대로 곱창방에 세 명이 있어본 적이 없다. 어쩌다 세 명이 있기라도 하면 현장 관리자 얼은 선악과를 따먹는 장면이라도 목격한 양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래서 곱창방 노예 3인은 돌려 돌려 돌림판처럼 매일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하며 뺑이를 쳐야 했다. 순전히 곱창방에 두 명만 남기기 위한 이동이기 때문에 해당 부서에서도 난감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무슨 일을 줘야 하나.' 그 생각이 훤히 읽힐 때면 쓸모없는 잉여 인력이 된 것 같았다.

  사실 어디서 일하는가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그놈이 그놈, 도찐개찐이라는 말처럼 어딜 가도 다 (가)족같은 것을. 다만 곱창방은 하베스트 부서의 무존재를 담당하고 있기에 일단 그 방에 유배되기만 하면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부서는 슈퍼바이저가 상근하고 있는 데다 같은 노예들끼리도 도끼눈을 뜨고 감시자 역할을 했다. 레일에 줄줄이 밀려오는 작업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뒷사람이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 같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곱창방이 나은가 싶다가도 아니,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다른 부서를 전전하며 받은 충격 때문에 곱창라이팅을 당한 게 분명했다. 똥 묻은 개가 있다고 해서 겨 묻은 개가 깨끗한 건 아니기에.


  <세발낙지 장인이 되는 길>

  동전의 양면이 있듯이 똥방에도 앞편과 뒤편이 존재한다. 앞편은 곱창방으로 가는 똥주머니를, 뒤편(창자방)은 창자로 추정되는 기다란 장기를 다뤘다. 똥물이 담긴 사각 작업판 위쪽에 회전문처럼 돌릴 수 있는 창자걸이가 있다. 1번 노예가 사탕 목걸이 만들듯 창자를 걸이에 꿰어 옆칸으로 넘기면, 2번 노예가 실뭉치 풀듯 창자 끝을 쭉 풀어내 한 다발로 모아 끝 길이를 맞춰 춘다. 미개 원시부족처럼 이곳은 가위나 칼 같은 문명의 산물을 금기시하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유일한 도구, 손가락만을 사용해야 한다. 작업 방식은 세발낙지 감기와 동일하다. 먼저 창자 다발을 손으로 쭉쭉 쓸어내려준다. 이 과정을 허투루 할 시에 똥물이 사방에 튀는 게 뭔지를 체득할 수 있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젓가락에 세발낙지 감듯 창자를 손에 감은 뒤 한 번에 끝단을 끊어내 맞은편 3번 노예에게 건넨다. 그럼 3번 노예가 여러 개의 봉에 다발을 지휘하듯 지그재그로 걸어 4번 노예 앞에 있는 봉에 건다. 4번 노예는 또다시 다발의 끝을 맞춰 매듭을 짓고 몸을 숙여 아래쪽 고리에 건다. 멈추지 않고 일어나 맞물려 돌아가는 두 개의 원형 통 사이에 창자를 두 번 통과시킨 창자 보관함에 걸어준다. 그렇게 원형 통을 통과한 창자를 5번 노예가 상자에 담아 레일에 올린다. 작업 과정이 복잡해 보여도 쉴 새 없이 일하는 앞편과 달리 화기애애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나는 창자를 세발 낙지처럼 손질하는 두 번째 노예를 맡았다. 시범으로 볼 때는 쉬웠는데 막상 하려니 끝단을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위쪽에 있는 건 확실한데 구불구불 꼬여있다 보니 라면 끝단 찾기처럼 막막했다. 어찌어찌 찾아 잡아당겨도 손상모처럼 쉽게 끊어져서 몇 번이고 재시도해야 했다. 중간에 힘줄 같은 두꺼운 막이 덧대져 있으면 제거도 해야 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창자를 한데 모아 권투 선수처럼 비장하게 손에 감아도 끊어내는 단계에서 다시 막혔다. 머리카락 하나를 끊어내기는 쉬워도 다발은 끊기 어렵듯이 말이다. 혼자 낑낑대고 있으면 고인 물 노예가 다시 시범을 보여줬는데, 별다른 힘을 들이지 않고 창자 다발을 끊어냈다. 하지만 내 병든 손가락은 일상생활에서도 고통을 호소했기에 아무리 용을 써도 그를 따라 할 수가 없었다.

  창자는 쌓여가는데 나 때문에 2번째 구간이 번번이 정체되자 숙련된 노예 제이슨이 2번 노예자리로 왔다. 그는 내 일을 도와주면서 중간중간 1번 노예의 몫인 창자 꿰기도 거들었다. 그러면서 내게 친근하게 말을 걸기까지 했다.

  "나 몇 살처럼 보여?"

  마스크 끼고서 액면가를 맞추라니. 진실을 말했다가 곤란에 빠진 적이 종종 있었기에 나는 고민 끝에 25이라 답했다. 그런데 마스크를 쓰고 있는 데다 주변 환경이 시끄러워 내 말이 잘 전달되지 않았나 보다.

  "35? 너 방금.. 내 마음을 부쉈다.."

  "25이라고 했는데.."

  그는 기뻐했고 화기애애해진 분위기에서 우리는 나이를 비롯한 통성명을 했다. 내 나이를 들은 그가 물었다.

  "그럼 니 보이프렌드는 몇 살이야?"

  "보이프렌드?"

  나도 모르는 내 보이프렌드를 그는 어떻게 알고 있는가. 혼란스러움도 잠시, 나는 그가 말하는 보이프렌드가 굿가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들 머리망을 뒤집어쓴 데다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있는데 어째서 모두 그를 남자로 알고 있는 걸까? 그를 생물학적 남자라고 생각했건 아니건 졸지에 내가 그의 여자친구가 됐다는 사실만은 변함이 없었다.

  "걔 내 보이프렌드 아니야. 그리고 보이도 아니야."

  "오, 쏘리. 몰랐어."

  "걔 레즈비언도 아니야." 

  "리얼리? 오우!"

  굿가이가 내 애인이 아니어도 레즈비언임은 확실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복면가왕 속 방청객처럼 화들짝 놀랐다. 소문은 당사자만 모른다는 말처럼 그가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 사실을 영원히 몰랐겠지. 그리고 그들의 기억 속에 죽지 못해 사는 노인네 같던 레즈비언 커플로 남았으리라.


  <싱잉 인 더 똥물>

  창자방에서 맡은 또 다른 일은 4번 노예로, 창자를 아래쪽 고리와 두 원통 사이를 거쳐 창자 보관함에 전달하는 역할이었다. 창자를 길게 뽑아내는 공정이기 때문에 순서를 틀리거나 잠시라도 멈춘다면 창자가 우르르 쏟아져 나와 손 쓸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순서가 헷갈려도 일단 계속 움직여야 했다. 팔을 휘적대며 앉았다 일어났다 좌로 갔다 우로 갔다를 반복하다 보면 스스로가 기우제를 지내는 고대 무당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창자방은 시간의 저주를 피해 간 곳이었다. 움직임이 큰 일을 쉬지 않고 해야 하는 데다, 원형통에 낀 창자를 균일하게 배치하기 같은 소일거리 덕에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몇 안 되는 몸이 덜 축나는 일이기도 했다. 우비를 써도 똥물에 쫄딱 젖는 것 빼고는 만족스러웠다. 쉬는 시간에 우비를 찢으면(달라붙어서 벗을 수가 없다) 소매에서 출렁대던 똥물이 떨어졌고, 젖은 작업복이 마를 때까지 덜덜 떨어야 하긴 했지만 말이다.


  <고기방>

  여느 때처럼 곱창방 노예들이 이 부서 저 부서로 돌려지고 있을 때였다. 웬일로 현장 관리자 얼이 찾아왔다. 오며 가며 힐끗 감시한 적은 많지만 다가와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는 앞으로 한 명씩 번갈아가서 고기방에서 일하게 될 거라고 했다. 첫 타자는 입사 한 달 선배인 '민'이었고 그다음 타자가 나, 마지막이 굿가이였다. 한 명이 유배 간 동안 곱창방에는 두 명만 남게 되니 그간 골머리를 앓던 '3인 이상 집합 금지'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었다.

  고기방은 컨테이너를 여러 개 지나쳐야 나오는 외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게차가 다닐 만큼 넓고 층고도 확 트여 있는데 일하는 인원은 두세 명 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다 자기 일을 하느라 바빠 남에게 관심도 없는 것이 각자도생의 분위기가 강하게 풍겼다. 업무 공정은 간단했다. 하베스트 2층에서 버려진 부속물(발굽, 고기, 뼈 등)을 분쇄해 네모나게 얼린 뒤 지게차로 내보내면 끝이었다. 휴게실에서 비계가 치덕치덕 눌어붙은 두꺼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목장갑까지 낀 뒤, 3층 높이의 계단으로 올라갔다.

  나는 공정의 첫 단계를 맡았다. 천장에서 떨어진 부속물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지나가면 넓적다리와 비계를 분류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속물 대부분이 자잘한 것들이라 멍하니 벨트 흘러가는 걸 보는 시간이 많았다. 몸이 고정된 채로 시선은 벨트를 쫓아야 해서 어지러웠는데 적응이 되니 '여기만 한 곳이 없네' 싶었다. 벨트가 분쇄기와 연결돼 있어 시끄러웠지만 그 덕에 노래도 부르고 몸도 들썩거릴 수 있었다. 혼자 고층에 서서 팔만 간헐적으로 움직이고 있자니 외국 클럽 DJ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실컷 하라는 대로 넓적다리를 모았더니 처음 보는 노예가 죄다 분쇄기에 버린 적이 있다. 이건 모을 필요 없다면서. 고기방도 다른 방들처럼 매뉴얼이 없고 인수인계자에 따라 구전 설화가 지역별로 다르듯 말들이 달랐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갈아서 버릴 건데 이 짓은 왜 하는 건지, 여기 나를 왜 세워 둔 건지, 온갖 것 다 넣어 만든 블록은 어디에 쓰는 건지... 고기방은 도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부서였다. 하지만 적어도 스트레스는 없고 몸은 편했다. 나는 고기방으로 번갈아 유배되는 시스템이 오래 유지되기를 바랐다. 이대로라면 세컨까지 3개월도 해볼 만한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고기방 유배 시스템은 빠르게 막을 내렸다. 곱창방과 고기방, 모두의 외면을 한 몸에 받는 부서를 오가다 보면 1~2분 정도는 눈치껏 유용할 수 있었다. 이는 말 그대로 눈치껏이지 '마음껏'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기강은 느슨해졌고, 굿가이는 쉬는 시간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고기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기방 슈퍼바이저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얜 뭔데 느긋해?'라는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천천히 준비하던 굿가이가 선심 쓰듯 인사를 건넸다. '하이.' 그 '하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나를 8시간 동안 곱창만 뒤집어야 하는 운명으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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