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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Feb 05.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27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9

  <탈출까지 D-72:하베스트 2층:개노답 워셔 3형제(목닦이워셔, 배닦이워셔, 발닦이워셔)/콩팥비계제거단>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플레처 천냥마트>

  손바닥만 한 공간에 어떻게든 모든 공정을 구겨 넣은 1층 하베스트가 조그만 구멍가게라면, 2층 하베스트는 천냥마트에 가까웠다. 없는 거 빼고 다 있다는 천냥마트처럼 대부분의 공정이 2층에서 이루어졌다. 털 박리, 발굽과 장기, 불필요한 지방 제거를 거쳐 양 사체는 비로소 고기로 거듭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기는 완제품이 되기 위해 콜드룸과 핫룸으로, 털과 가죽은 깃털 방으로, 장기는 1층 하베스트로, 불필요한 부속물은 고기방으로 보내진다. 마치 물류의 중심 옥천 Hub처럼 2층 하베스트는 양공장의 근본과 같았다.

  나는 1층 소속이지만 손이 느려 자주 추방됐기에 2층에서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개노답 워셔 3형제(목닦이, 배닦이, 발닦이) 일, 콩팥과 비계 제거, 창자방으로 갈 창자 분리, 바주카포로 털 제거하기 등... 쓸데없이 공정이 세분화되어 있어서 이 외에도 '대체 이 짓은 왜 하나?' 싶은 역할이 무궁무진하리라 예측한다.


  <개노답 워셔 3형제>

  개노답 워셔 3형제는 2층 하베스트의 대표적인 잉여 공정으로, 누구도 이 일이 왜 존재하는지 모른다고 단언할 수 있다. 초기 단계에서 목과 앞발을 닦는 목닦이 워셔, 배를 닦는 배닦이 워셔, 후반 공정에서 뒷발을 닦는 발닦이 워셔 등... 최소 5명 이상의 잉여 인력들은 넋 나간 동태눈으로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팔을 휘적댔다. 하지만 레일을 타고 지나가는 동안 몇 번 문지른다고 말라붙은 피가 제대로 제거될 리 없었다. 티끌만큼 깨끗해진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양 사체를 보고 있노라면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곤 했다. 나는 여기서 무얼 하는가? 어쩌면 이 멍청한 짓이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함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여기서 하는 모든 일에 의문을 가지면 안 된다. '존재의 이유' 같은 성찰은 더더욱 금물이다. 뇌를 빼고 좀비처럼 팔이나 휘적거려야 한다. 그래야 가뜩이나 흐르지 않는 시간에 잡아먹히지 않을 테니. 때때로 나는 시간은 허상이라는 양자역학적 정신승리를 했다. 과거, 현재, 미래는 공존하니 지금 퇴근한 나도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지만 망상이 끝난 후에도 퇴근까지 억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플랭크를 한대도 이것보다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겠다 싶을 만큼.

  물론 쉬는 시간은 예외였다. 근무 중에 화장실도 못 가는 유일한 부서답게, 이곳은 쉬는 시간도 더 짧았다. 쉬러 갈 때와 복귀할 때 부츠를 꼼꼼히 씻어야 했는데, 두 작업 모두 쉬는 시간에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준비에만 5분 이상을 허비하고 화장실을 가고 나면 복귀가 임박해 있었다. 하지만 시간에 맞춰 돌아와도 지각한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노예들이 하나같이 복귀 시간보다 빨리 와서 대기했기 때문이다. 마치 모두 8시 50분까지 출근하는 회사에서 정시 출근한 사람이 튀듯이.


  <다시는 노동권 지수 5등급 나라를 무시하지 마라>

  개노답 워셔 3형제 중 가장 쉬운 역은 발닦이 워셔였다. 노란 콘테나 위에 올라가 양 사체가 오면 슥슥 문지르기만 하면 됐다. 호스를 직접 들어야 하는 다른 곳과 달리 위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 온도도 따뜻했다. 난이도도 최하인데 구색으로 끼워 넣은 자리여서 적당히 일 해도 지적받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이 어딘가. 100명의 노예가 있으면 100개의 방법이 있는 플레처 로동수용소가 아닌가. 어느 날 맞은편 노예가 나를 불렀다. 그는 나와 똑같은 발닦이 워셔로, 내가 앞면을 닦으면 이어서 그가 뒷면을 닦았다.

  "몰랐나 본데, 제거 안 된 발목도 네가 떼야 돼."

  양 사체의 60%에 제거가 되다 만 발목이 달려 있었다. 날카로운 잔뼈가 노출된 발목은 얇은 니트릴 장갑 하나만 낀 손으로 떼내기 쉽지 않았다. 1차로 절단이 된 상태였지만 뼈 전부가 잘리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절단기로 잘라야 하는 걸 맨손으로 떼내려니 손이 너무 아팠고, 종종 뼛조각에 손을 베기도 했다. 핏물 닦으랴 발목 뜯으랴 정신이 없어서 간혹 발목을 떼는 걸 놓치면 득달같이 맞은편 노예의 지적이 날아왔다.

  "이거 니가 떼야 된다고."

  똑같은 역할을 맡았는데 선봉에 섰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발목을 내가 제거해야 된다? 심지어 그는 내가 놓친 발목을 떼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같은 노예끼리 못 잡아먹어 안달인 모습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서로를 고발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공교롭게도 그는 중국인으로, 중국은 한국과 나란히 세계 노동권 지수 5등급에 속해있다. 노동권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나라에서 온 노예 때문에 내가 호주에서까지 5등급 노예가 되어야 한다니. 그는 참된 플레처 로동자로 불릴 자격이 충분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촘촘한 체계로 다 같이 죽어나갈 수밖에 없는 플레처 로동수용소 정신에 완벽히 부합했기에.


  <누구인가, 누가 콩팥 제거를 안 했어>

  양공장에서의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도구를 쓰는 일, 쓰지 않는 일. 콩팥비계제거단은 후자로, 장기가 제거된 양이 배가 열린 채 레일에 실려 오면 맨 손으로 냅다 비계를 뜯으면 된다. 쉬운 일 같지만 양이 워낙 커서 두 명이 왼쪽과 오른쪽을 분담해야 했다. 상상해 보라. 두꺼운 지방층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 손가락을 쑤셔 넣어서 무식하게 뜯는 것을. 마치 제모와 같아서 한 번 뜯는다고 말끔하게 제거되지 않을 때도 많았다. 그럼 멀어지는 레일을 쫓아가 잔여 비계도 없애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레일은 계속 양을 싣고 오기에 한 번 삐끗하면 줄줄이 밀리고 말았다.

  다섯 마리쯤 해치웠을 때 손끝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자비 없이 계속되는 양 사체 인해전술을 정신없이 쳐내고 있는데 왼쪽을 맡은 노예가 콩팥도 떼야한다고 했다. 지금 오른쪽 비계 떼는 것만으로도 버벅대고 있는데... 항상 이런 식이었다. 체계를 볼드모트 호크룩스처럼 꽁꽁 감춰놓고서는 뜬금없는 규칙이 하나씩 튀어나왔다. 어쩌겠는가, 뇌를 빼고 그러려니 하지 않으면 이곳에서 버틸 수 없는 것을. 나는 비계와 콩팥 모두 제거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내 손가락은 병들었고 레일은 나보다 빨랐다. 놓친 양을 쫓아가 콩팥을 떼어내니 그새 줄줄이 밀려 있어서 급한 대로 비계만 떼어냈다. 그러자 왼쪽 노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쫓아가서 떼라니까, 떼라능뇨 떼라가쨔!"

  노예들 간에 존재하는 촘촘한 감시망은 번번이 사회주의 국가를 연상시켰다. 플레처 로동수용소는 플레처(사장) 하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플레처들이 있기에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처럼 되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데 어쩌란 말인가. 칼이라도 쓰게 해 주던가, 악독한 놈들아...

  똥주머니에서 지방을 뗄 때, 창자를 세발낙지처럼 다듬을 때, 그리고 지금. 왜 이 짓을 맨 손으로 하는 건지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 어떤 신념이 있는 건가? 마치 안아키처럼? 우리 양고기 칼 안 쓰고 맨 손으로 손질하기, 그 희생양이 나인 것 같았다. 물론 맨손으로만 작업해야 하는 내가 모르는 이유가 있는 수도 있다. 모든 공정에서 칼을 쓰면 고기가 상할 확률도 커지니까. 하지만 무식하게 손가락으로 쑤셔 파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건 노예들을 위해 뭔가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게 바로 다 죽어가는 기계도 어떻게든 살려내 일하게 하는 플레처니까.


  <가장 쉬운 일조차 쉽지 않은 곳>

  양의 목과 앞발을 닦는 목닦이 워셔는 앞 공정에 위치했다. 양이 가죽이 벗겨지고 발목이 제거되고 뒷발에 고리가 걸려 오면 호스로 물을 쏘며 피를 닦아준다. 호스가 무겁긴 했지만 걸핏하면 기계가 멈춰서 괜찮았다. 이곳의 모든 기계가 그러하듯이 양가죽 벗기는 기계도 1/3의 확률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럼 노예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줄 다리기 하듯 온몸을 뒤로 젖혀 가죽을 벗겨냈다. 백인, 동남아인, 동북아인... 인종은 달랐지만 저마다의 언어로 구호를 외며. 박리에 성공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뿌듯함 혹은 동료애가 드리웠다. 그래도 한 때 생명이었는데 퀘스트 깬 것처럼 좋아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나 또한 양들에게 더는 연민을 느끼지 않았으니 그들을 비난할 자격은 없었다. 눈 감으면 똥주머니가 아른대 잠 못 들던 게 거짓말처럼 인식하지 못한 새에 무뎌져 있었다.

  마음보다 더 빨리 망가진 건 몸이었다. 새벽 2시면 항상 잠에서 깼다. 손가락이 퉁퉁 붓고 저려서 손을 구부릴 수 조차 없었다. 온몸의 관절 하나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곱창방에서 삽질을 하느라 망가진 한쪽 어깨는 시큰댔고, 골반도 허리도 다리도 뒤틀린 듯 아팠다. 통증 때문에 두 시간에 한 번씩 깨서 피곤한 채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매일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처음 워셔에 배정됐을 때 기계음은 시끄럽고 쉬는 시간은 짧아도 아프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미 노쇠한 관절은 이곳에서 가장 쉬운 일인 워셔를 할 때도 아프기 시작했다. 호스를 드는 것조차 버거웠고, 손으로 문지르는 작은 동작에도 팔이 시큰댔다. 내 나이 고작 30세, 양들이 도륙되어 원래의 형체를 잃듯이 내 몸도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드디어 밝혀 남바완의 정체>

  내 워홀, 아니 인생의 암흑기인 두보살이의 제목에는 남바완이란 인물이 있다. 짐작했겠지만 수치스럽게도 남바완은... 나다.

  내가 남바완이 된 건 배닦이 워셔를 할 때였다. 배닦이 워셔는 목닦이 워셔의 사선 맞은편 자리이자 다음 공정이다. 목 닦이 구역을 지나면 양의 뒷발이 레일을 따라 올라가면서 양은 배를 보이고 누운 자세가 된다. 마치 통바비큐처럼 말이다. 다음으로 기계에서 집게발이 나와 양의 앞발을 자르양은 위아래가 뒤집힌다. 물론 플레처의 모든 기계가 그러하듯 집게발 또한 40%의 확률로 허공에 삽질을 하곤 했다. 발목이 잘리건 잘리지 않건 양의 위아래가 뒤집힐 때 철퇴를 휘두르듯 요동치는데, 아직 장기가 제거되기 전이기 때문에 장기다발이 몸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그걸 피하는 게 배닦이 워셔의 첫 임무다. 멍청히 서있다가는 장기 싸대기나 몸통박치기를 당할 수 있기에.

  배닦이 워셔는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일이 많았다. 위아래가 뒤집히면서 앞뒤 방향도 돌아갈 때가 있는데 다음 공정으로 가기 전에 정방향으로 돌려줘야 했다. 천장에 호스가 달려 있어 호스를 직접 들 필요는 없었지만, 장기가 쏟아져 나온 양은 닦으면 안 돼서 물을 계속 껐다 켜줘야 했다. 배를 닦고 나면 바로 전 공정에서 자른 발목을 기계가 튕겨내는데 이것조차 절반의 확률로 허공을 튕기기 일쑤였다. 그럼 배닦이 워셔가 몸을 앞쪽으로 숙여 수기로 양 발목을 빼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계 레일 끝에 있는 저지선에 닿게 되는데 그 순간 모든 기계가 작동을 멈추게 된다. 배를 닦고 물 껐다가 수그려서 발목 빼고 다시 몸통 방향 바꿔주고 다시 물 켜고 배 닦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우비는 쫄딱 젖고 고글에는 김이 서려 뵈는 게 없었다.

  발목 튕기미가 맛이 갔을 때도 수고롭지만 발목 자르는 집게발이 맛이 갔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발목이 잘리긴커녕 기계 오작동 때문에 더 단단히 낀 채로 양들이 내려왔다. 집게발은 발목이 이미 지나간 뒤에 불쑥 튀어나와 허공을 썰고 있었다. 한번 박자를 잘 못 타면 계속 헛짓거리를 하는데 그게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양을 어깨에 들쳐 매고 왼쪽 발은 왼쪽으로 맞은편 발은 반대 방향으로 빼냈다. 몸 방향을 정면으로 돌리고 다음 양을 어깨에 둘러메었다. 발목 빼내고 방향 돌리고 또 들쳐 매고 발목 빼고 방향 돌리고... 와중에 반동 때문에 양이 보신각 종 치듯 나를 내려쳤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기계가 병신이면 사람이라도 기계처럼 일 해야 했기에. 기계는 단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안전 저지선에 발목이 걸리기 전에 내가 다 빼냈기 때문에. 어디선가 환청이 들렸다. '오우.' '남바완' 잘 못 들었겠지, 자의식 과잉을 경계하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족히 스무 구가 넘는 양들을 해치우고 나니 집게발이 정신을 차렸다. 발목이 제거된 양들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누군가 나를 톡톡 쳤다. 내 뒷 공정에서 일하는 노예가 내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남바 완!"

  그는 존경 어린 눈으로 남바완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근처에 있던 다른 노예들도 내게 '남바완!'이라 찬사를 보냈다. 나도 어색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올렸다. 뿌듯함과 수치심이 공존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지 않아 나는 남바완이 된 그 자리에서 산업 재해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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