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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쵸 Feb 21. 2024

이렇게 워홀 가면 안 된다 표본의 개노답 워홀기 29

양공장 원정대, 남바완의 고난의 대서사시 11

  <탈출까지 D-93~D-71:번따새의 헌팅기 2/오일쉐어 구하기/오일쉐어 해지하기>



  <축 헌 팅 성 공>

  노예 식당에서 새참을 먹다 보면 엉덩이를 떼야하는 순간이 종종 발생한다. 의자가 벤치처럼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이 오고 나가려면 불가피했다. 창자방 노예 닐람을 처음 본 건 그때였다. 그가 도시락을 들고 식탁 옆에 서서 인사를 건넸다. 내가 엉덩이를 떼자 닐람은 벤치를 밀어 앉은 뒤 다시 끌어왔다. 밥을 먹는데 '헌팅' 생각뿐이었다. 헌팅은 해야 하는데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기 싫다는 내향인의 자아가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곱창방에서 기회를 노리거나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는 것보다 지금 물어보는 게 나았다. 업무메일에 으레 사용되는 날씨에 관한 첫 문장 같은 구린 플러팅이 자동 반사로 튀어나갔다.

  "안녕, 너 차 있니?"

  "나는 아니고 남편이 있어."

  "잘 됐다! 나 오일쉐어 필요한데.. 맨날 우버 타는데 오늘 없어서 택시 타니까 36불 나왔거든.."

  "음.. 그럼 남편한테 물어볼게."

  닐람은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는 구걸하다시피 돈은 꼭 지불하겠다고 반복했다. 그간의 숱한 헌팅 실패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마감 임박이란 말에 홀린 듯 결제하듯이, 지금이 놓치면 안 되는 유일한 기회처럼 느껴졌다. 인도어로 이어지는 통화는 유추할 수도 없는데 자꾸만 귀를 기울이게 됐다.

  "남편이 괜찮다고 했어."

  "정말? 우와! 고마워!"

  "일주일 단위로 결제하고, 1인당 왕복에 50불이야."

  "둘이 합쳐서 50불?"

  "한 명당 50불, 그러니까 총 100불이야."

  오일쉐어 평균 시세는 20불에서 30불이다. 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태우는데 100불?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가겠네. 할머니에게 구형 휴대폰을 48개월 약정에 부가서비스를 죄다 가입시켜 파는 폰팔이와 다름이 무엇인가. 더러워서 안 타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쉽사리 no를 외치지 못했다. 그날 타고 온 택시가 편도로 36불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돈독이 제대로 오른 금액일지라도 매일 우버 타는 것보다 쌌다. 더보에서는 어쩔 수없이 타협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알.. 겠어.. 계좌이체 해줄게. 계좌 알려줄래?"

  "아, 우린 현금만 받아~"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하루 만에 파국으로 치닫은 인도 부부와의 만남>

  시간 맞춰 차가 집 앞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원래라면 추위에 덜덜 떨며 우버가 올 때까지 옹졸하게 뿌려진 별 몇 꼬집을 욕했을 텐데. 50불이란 비용은 좋게 생각하려 해도 '눈탱이' 라고밖에 설명되지 않았지만, 쾌적한 출퇴근이 보장된다는 점만큼은 좋았다. 우버가 없으면 어떡하나, 택시 불렀는데 왜 안 오나, 지각하면 어쩌나 따위의 걱정과는 이제 안녕이다!

  문을 열자 나를 맞이한 건 유아용 카시트였다.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은 빈 카시트. 말없이 운전석을 쳐다보자 부부가 웃으며 말했다.

  "반대편으로 타~"

  그들에게서 찔려한다거나 당황한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천연덕스러운 뻔뻔함에 당황한 건 나였다. 원래 뒷자리는 2.5인석에 가까운 3인석이지만 카시트가 중간 깍두기 좌석을 침범해 1.5인석이 되어있었다. 카시트도 당당하게 한 자리 이상을 차지했는데 사람은 구겨져서 타야 한다니. 시세보다 2배 이상 비싼 금액을 받으면서 카시트를 떼는 성의조차 없을 수가. 둘이 뇌가 동기화된 건가? 어떻게 둘 중 한 명도 상식적인 생각을 못 하는 거지?

  사람용이라기에는 말티즈용에 가까운 가운데석에 구겨져 앉았다. 차가 출발했다. 중심을 잡으려 애써도 쏠리는 몸을 가눌 수 없었다. 사람과 카시트 사이에 꽉 끼어있을 때는 출퇴근길 지옥철을 탄 것 같았고, 방향 전환 때문에 좌우로 충돌할 때는 범퍼카를 탄 것 같았다. 이를 악 물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삼켰다. 소원이 있다면 빨리 내리는 것뿐이었다. 한국이 그리운 워홀러가 있다면 인도인 부부와 오일쉐어를 하도록 하자. 눈을 감고 무엇을 상상하느냐에 따라 당신은 지긋지긋한 더보가 아닌 서울랜드로, 지옥철로 순간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왜 그들은 카시트를 떼고 오지 않았는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깜빡 잊었나? 시간이 없었나? 카시트에 귀신이라도 타고 있었나? 인도 계급도에 카시트가 있다면 한국인은 그 밑인 건가? 하지만 어떤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이미 빈정은 상했고 더는 그 차를 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그래, 퇴근길에 어떻게 하는지 보자. 카시트를 뗄 수도 있고, 한 마디 설명이라도 해줄 수 있잖아?

  퇴근 후, 뒷좌석 문을 열었을 때 깨달았다. 상식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카시트를 달고 오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도 카시트는 그대로였고 그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었다.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행보가 괘씸했다. 와중에 닐람 남편이 해맑게 스몰톡을 시도했다.

  "어디서 왔어?"

  "한국.."

  근데 카시트 왜 달고 왔냐?

  "오 내 친구도 한국인이야! 지금 멜번 살아!"

  "그렇구나.."

  그래서 카시트 달고 왔냐?

  그는 신이 나서 한국인 친구에 대한 쓸모없는 정보를 늘어놓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조건 반사적으로 '그래서 카시트 왜 달고 왔냐고'가 뒤따랐다. 마치 문장의 끝에 온점이 붙어야 마무리가 되듯이. 속으로라도 빈정거리지 않으면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내일부터 다시 번따새로 돌아가야겠다. 나는 인도인 부부에게 작별을 고했다. 내일 하루치 차비를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하지만 수중에는 현금이 없었고 은행은 물론, ATM이 있는 변두리 마트까지도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영감탱 가만 안 둬>

  여태까지 내가 왜 집주인 노인을 혐오하는가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가 베트남에서 여자를 사 와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에 60살 어린 자식을 낳아서? 마당에서 덕구랑 놀 때마다 음침하게 다가와서? 퇴근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밥 좀 먹으려는데 한참을 붙잡고 말 걸어대서? 그 덕에 덕구가 식탁에 올라가 내 밥을 반절이나 먹어서? 그 와중에도 한 말 또 하느라 날 놔주지 않아서? 보다 못한 아손이가 늙은 애비를 뜯어말린 뒤에야 겨우 해방될 수 있어서? 10살짜리보다 눈치 없는 70살 영감탱이라서? 모두 사실이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노인과 사이가 나쁘지 않던 시절에도 웬만하면 노인과 엮이지 않으려 애썼다. 본능적인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인에게 계좌 이체를 해주고 현금을 받는 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다. 돈을 뽑으러 우버를 타고 읍내까지 갔다 오기에는 타산이 맞지 않았으니까. 아무리 내려놓아도 타협해야만 하는 순간은 지겨울 정도로 자주 찾아왔다. 노인에게 문자를 보내자 알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노인과의 대면이 얼른 끝나길 바라며 돈을 송금했다.

  저녁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노인이 돌아왔다. 손자.. 아니, 아손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왔는지 노인은 혼자였다. 부엌으로 곧장 온 노인은 10불을 건넸다. 내가 손을 뻗자 그는 쉭- 하고 과장스럽게 돈을 거두었다. 카시트를 봤을 때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영감탱이가 지금 뭘 한 거지? 그는 다시 내게 돈을 건넸고, 내가 잡으려 하자 돈을 물리고는 껄껄 웃었다.

  '시발.. 너 나랑 친하냐?'

  친한 사이에 해도 주먹 날아갈 짓을 장난이랍시고 할 만큼 나와 노인은 가깝지 않았다. 물론 그간 노인이 내게 일방적으로 친한 척을 한 건 맞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친밀감을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그의 손에 들린 '내' 돈을 뺏으려 했고, 노인은 잔뜩 신나서 돈을 요리조리 흔들어댔다. 터키 아이스크림 아저씨처럼 현란하게. 내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노려보자 그가 느물 느물하게 웃으며 돈을 건넸다. 10불은 8600원, 우리나라 시간 최저 시급도 되는 돈으로 선심 쓰듯이. 그것도 내 돈을!

  기분이 아주아주 더러웠다. 원색적인 인종차별 보다 더 모욕적이었다. 악의 없이 단순히 성인지 감수성이 후진 걸 수도 있다. 호주 시골 70대 노인네, 네 명칭 중 어떤 것에서도 '진보된 성의식'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가 자각했건 아니건 그의 무의식에는 본능적인 계산이 깔려있었다. 어리고 영어에 서툰 동양인 여자 외국인, 건드려도 뒤탈이 없을 거라는 치졸한 계산이.

  노인은 베트남에서 아내를 사 왔다. 돈으로 만들어진 관계에는 권력이 명확히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말 잘 듣는 가축과 고압적인 주인처럼 보였다. 하지만 무시하는 마음과 별개로 성적 욕망은 가능했으리라. (극심한 인종차별 주의자였다면 아무리 도태의 위기에 처해도 베트남에서 여자를 사 오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 베트남 부인이 그의 아내이자 아손의 엄마가 되어 그를 도태될 운명에서 구해주었겠지.

  노인은 아손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러 오는 것 외에 하는 일이 없었다. 밖에서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베트남 부인은 늦은 저녁을 차렸다. 그럼에도 노인은 베트남 부인을 타박했고, 베트남 부인은 머쓱해할 뿐이었다. 여자를 사느라 지불한 돈은 이미 베트남 부인이 가사와 노예 노동으로 갚고 있음에도 말이다.

나 그냥 마당에서 개랑 놀았을 뿐인데.. tq..^^ Pray for me

  전형적인 순종적인 아시아 여자를 아내로 둔 루저 백인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췄을지 명확했다. 그게 내가 덕구랑 놀거나 공용 공간에 있을 때 노인이 주위를 얼쩡거린 이유겠지. 그럴 때 노인은 마치 여자애 관심 끌고 싶은 남자 초등학생처럼 보였다. 본인이 얼마나 역겨운 존재인지 자각조차 못하는 점이 더욱 구역질을 배가시켰다. 시선을 돌릴 때마다 날 보는 노인을 발견했고, 어느 순간부터 더는 마당에 나가지 않았다. 공용 공간에는 꼭 필요할 때만 잠깐 머물렀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검열도 하고, 앞서나가지 말자고 애써 노인을 좋게 생각하려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들은 한 친구는 마당에 있는 나를 쳐다본다는 대목에서 기겁을 했다.

  '은교인 줄.. 영감탱이 자석이네..'

  나는 은교병에 걸리지 않았으며, 마당에서 은교인양 스스로에게 도취된 적이 단언컨대 없다. 하지만 내가 노인의 은교(웩)라는 망상이길 바랐던 께름칙한 생각은 망상이 아니었다. 돈을 뺏기 위해 애쓰는 나를 내려다보던 표정과 웃음이 그 증거였다. 노인은 마치 썸녀가 작고 귀여워서 약 올리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썸남처럼 굴었다. 나는 노인과 아무 사이도 아니며, 키 차이도 별로 나지 않는 데다, 귀엽게 약 올라하긴커녕 노인의 대가리를 깨고 싶은 걸 참고 있었기에 더 그의 자만 어린 태도가 가소로웠다. 매일 마른기침을 하며 죽음의 기운을 뿌리고 다니는 70대 노인을 누가 남자로 생각한단 말인가. 송장 콜렉터가 아닌 이상에야. 하지만 상황은 순식간이었고, 의도는 그저 장난이었으며 문제를 키우기에 내 영어는 미숙했다. 나는 여기 계속 살아야 했고, 관계가 껄끄러워지면 좋을 게 없었다. 내 기분은 땅바닥에 이미 처박혔는데도 어리석은 나는 그따위 것들을 걱정하느라 바빴다.


  -번따새의 헌팅기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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