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와의 인터뷰

울어버릴테다

by 딥마고
유아infant라는 단어는 '말할 줄 모르는'이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너는 '난 괴로워'라는 말만은 완벽하게 할 줄 알고, 쉬지도 않고 주저 없이 그렇게 말해. 그 주장에 대한 너의 헌신적인 태도에는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어. 일단 울기 시작하면 너는 분노의 화신이 되고, 온몸으로 그 감정을 표현하지. 재미있는 건 네가 조용하게 있을 때는 몸에서 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야. (...)

내가 너에게 젖을 먹이기 전까지 네 안에는 과거의 만족감에 관한 기억도, 미래의 충족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하지 않아. 그러다 젖을 빨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역전되겠지. 너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불만도 느끼지 않게 돼. 네가 지각하는 유일한 순간은 오로지 지금뿐이야. 너는 현재 시제 속에서만 살아. 여러 의미에서 실로 부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중


일을 하면서 인터뷰 촬영을 수도 없이 했다. ENG로 나가든 스튜디오로 들어오든 여러 종류의 촬영들 중에서 가장 매력을 느낀 것이 바로 인터뷰라, 피디가 아니라 인터뷰어로 직업을 전환하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었다. 그래서 오늘은 생후 35일 된 나의 딸 평화를 인터뷰해보았다. 배가 부르고 기저귀가 보송보송한 데다 마사지를 충분히 받아 기분이 아주 좋을 때 시도했다.


- 안녕하세요. 나는 너의 엄마지만, 오늘은 너를 인터뷰하기 위해 이 곳에 왔어요.

- 안녕하세요. 인터뷰하는 엄마.

- 요즘 어떻게 지내요?

- 대체로 괜찮은 편인 것 같아요. 먹는 것도 만족하는 편이고, 잠도 꽤 깊게 자요. 가끔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고 사람의 체온이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아, 원래 세상이 뿌옇고 잘 안 보였었는데 최근에 새로운 게 많이 보여서 그것도 좀 재밌어요.

- 참을 수 없이 배가 아프다니 그것 참 힘들겠어요. 사람의 체온이 부족하다는 얘기는 뭐죠?

- 내가 계속 말을 하는데, 웬만하면 나를 내려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분명 잠들 때까지는 엄마가 안아줘서 따뜻했고 살랑살랑 흔들려서 기분도 좋았는데,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가 엄마나 아빠 품이 아니고 어디 움직이지도 않는 이상한 이불 위에서 이상한 인형 곁에 누워 있을 때 그 배신감을 엄마는 상상이나 해봤겠어요?

- 글쎄요. 상상은 안 해봤지만 아마 나도 겪었던 일일 거예요. 기억이 안 나서 그렇지.

- 아무튼 그러지 말라고요. 엄마가 책 읽고 싶고 영화 보고 싶은 건 알겠는데 그럴 거면 나를 안고 그런 일들을 하는 건 어때요?

- 오늘의 주인공은 평화님이시니 질문은 제가 할게요. 최근에 배가 안 고파도 뭔가를 계속 빨고 싶어하시던데, 엄마 젖꼭지가 아닌 것을 빨아도 성에 차나요?

- 없는 것보다는 낫죠. 그리고 한 가지 얘기해두는데, 엄마가 맨날 나한테 주는 게 '공갈'이라는 거 나도 알고 있으니 날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 취급하지 마세요. 공갈인 거 다 아니까 이제 그건 더 이상 공갈이 아니다!

- 응?

- 없는 것보다 훨씬 나아요. 다만 내가 그걸 배고플 때까지 빤다고 해서 밥을 늦게 줘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밥이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업적을 해칠 수는 없죠.

- 업적이요?

-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서 한 달 만에 2킬로가 늘었는데, 그게 업적 아닌가요?

- 아니 그건 제 업적도 되지 않나요?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죠. 먹을 것을 거부하는 다른 또래들이 얼마나 많은데.

- 그래요... 요즘 느낀 게 있다면 좀 말씀해주시죠.

-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잠들어버려서 목욕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내 찝찝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찝찝해도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밥 먹고, 배 아프면 울고, 그렇게 지냈어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계속 들었던 '야아오옹~' 하는 소리가 대체 어디에서 나는 건가 했었는데 이제 그 소리를 내는 털복숭이를 확인했어요. 지금은 나보다 큰 것 같은데 내가 지기가 싫어가지고 원. 이건 오프 더 레코드로 말하는 건데 나는 빨리 커지는 마법을 쓰기 위해 매일 매일 주문을 외워요. 끄응! 끄응! 끄으응! 하고 소리를 내면서 팔다리를 쭉쭉 펴고 마구 움직여주면 되는데 어른들이 그거를 '용쓴다'고 표현하더라고요. 그건 용을 쓰는 게 아니에요. 엄마 뱃속이 너무 아늑했었는데 나와보니까 세상에 공백이 너무 많아서 내 몸을 키워서 조금이라도 채워보려고 마법을 쓰는 거예요. 앞으로는 엄마라도 '용을 쓰고 있네' 대신에 '마법을 쓰고 있네'라고 생각해주세요. 이건 영아계의 비밀이니까 아무한테도 말하지는 말고요. 그리고 아빠가 말해주던데 엄마는 지난 인터뷰 이후로 내가 짐볼을 타면 왜 울음을 그치는지 계속 궁금해 했다면서요?

- 크흠, 뭐 그렇게까지 계속 궁금하진 않았어요 흥.

- 엄마가 할머니한테 얘기하는 걸 듣자하니 내가 세상에 나올 때가 거의 다 됐을 때쯤 짐볼 운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그건 아녜요. 엄마가 아무리 짐볼 운동을 해도 그 느낌은 양수 때문에 거의 전해지지 않거든요.

- 그럼 이제 진짜 이유를 말해줘요.

- 내가 무중력 상태를 좋아해서 그래요.

- ?

- 내가 미래에 자동차를 타고 높은 턱을 빠른 속도로 지날 때, 자동차가 잠시 공중에 뜨면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가슴이 울렁거린다면서 신기해 할 거예요. 난 내가 그럴 걸 알아요. 지금 짐볼을 타고 상하운동을 할 때 이미 순간적으로 중력이 작용하지 않는 짧은 찰나를 즐기고 있지만, 그 때가 되면 지금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신기해하겠죠. 엄마는 모르겠지만 내가 엄마 배에 꽉 차기 전에, 그러니까 아주 아주 작아서 몸 전체가 심장으로 이루어졌을 때, 나는 중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나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았고 무게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구요. 엄마가 짐볼을 타고 위아래로 움직일 때 순간적으로 무게라는 것이 사라지게 돼요. 그러면 추억이 떠올라요. 열 달 전쯤에 내가 무게를 몰랐을 때의 그 추억 말이에요.

- 그래서 배가 고플 때도 짐볼 운동을 하면 잠시 추억에 잠겨 울음을 멈추게 되는 거군요. 또 그때처럼 잠도 자게 되는 거고요. 흠. 평화님 오늘은 아주 말을 길게 하시네요?

- 아까 엄마 젖을 20분이나 먹고 트림을 시원하게 한 뒤에 한숨 잘 자고 일어났더니 기운이 넘쳐요. 어디 한 번 계속 질문해봐요.

- 하루 중 언제가 가장 행복한가요?

- 엄마는 내가 자주 찡그리고 울기 때문에 괴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나에게 우는 건 의사를 표현하는 수단이에요. 물론 힘들어서 울 때도 많지만 그에 적절한 조치를 엄마가 그때 그때 취해주니까 전체적으로 보면 행복해요. 엄마, 사실 나는 생겨날 때부터 이미 행복했어요. 아빠가 내 코에 있고 엄마가 내 입에 있고 심장이 뛰고 있는데 기쁘지 않을 이유가 뭐겠어요. 엄마랑 나랑 연결해주던 끈을 아빠가 잘라버릴 때는 좀 놀랐지만, 아직도 배 안에서 맡았던 엄마 냄새, 아빠 목소리가 매일 매일 내 근처에 있잖아요. 나를 자주 안아주세요 엄마.

- 평화님, 나는 평화님과 배를 맞대고 24시간 내내 있을 수도 있어요. 어차피 조금 더 지나면 내 품에 있으려고 하지 않을 거니까, 지금 더 많이 안아줄게요.

- 다들 믿으려 하지 않겠지만, 나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와 지금 이렇게 울음으로만 엄마와 소통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이 기억은 내가 더 넓은 세상을 만났을 때 또 어떤 방식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울지 결정해줄 거예요. 그 때는 끄응! 끄응! 대신에 어떤 주문을 외울지 지켜봐주세요. 앗. 기저귀가 축축해요.

- 질문 하나만 더 하고 갈아줄게요.

- 울어버릴테다.

(잠시 기저귀 체인지 타임)


- 자, 기저귀를 갈았으니 다시 질문을 할게요. 할머니를 보면 자꾸 웃는 이유가 뭐죠?

- 엄마, 나는 아직 웃는 게 뭔지 몰라요. 할머니에게 전해주세요. 내가 엄마 뱃속에서의 추억을 회상할 때 나를 보아주신 것뿐이라고요. 시간이 흘러 내가 누군가에게 웃어주게 되더라도, 그건 아마 또 하나의 주문일 거예요. 내가 이렇게 예쁘게 웃으니 나를 떠나지 마세요, 나를 사랑해주세요, 먹을 것을 주세요, 계속 살고 싶어요. 그런 의미를 담아서 웃을 거예요. 엄마에게는 미소가 그런 의미가 아닌가요?

- 나에게 미소는 생존 전략은 아닌 것 같아요. 아니, 그러고보니 맞나?

- 엄마,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엄마도 아마 옛날이 기억이 날 거예요.

- 그럴게요. 평화님,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걸 많이 들었겠지만, 요즘 나는 하루 하루 가는 것이 정말 아까워요. 갓 태어나서 몸에 태지가 덕지덕지 묻어 있던 게 아직 생생한데, 왜 벌써 37일이나 커버린 건가요? 이러다가 100일이 되면 37일을 그리워하고, 돌이 되면 100일을 그리워하고, 그렇게 되겠죠?

- 엄마, 나는 미래가 불안하지 않아요. 내가 불안한 건 아직은 오로지 현재뿐이랍니다. 지난 번에 말했듯이 나에게는 계획이 있어요. 엄마, 우리 앞으로 잘해봐요.

- 평화님, 아빠가 불러요. 코딱지 팔 시간이래요.

- 울어버릴테다.


그러곤 남편이 평화의 코 안을 청소하는 동안, 평화는 정말 울어버렸다. 평화의 울음소리는 언제나처럼 귀여웠지만, 인터뷰를 하고 나니 왜 그런지 전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keyword
이전 05화불온한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