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녀 기혼 여성을 바보취급하는 사회에게
아기가 100일이 지나고 슬슬 나의 바깥 활동이 늘어나면서 어린이집과 시터를 본격적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보육포털을 통해 국공립 어린이집 세 군데에 대기를 걸어놨지만 30번째 50번째 뭐 그래서 원하는 날짜에 들어갈 수 없을 거라는 체념 어린 확신에, 미리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산부인과/산후조리원에서 어색하지만 슬며시 넘겼던 엄마라는 사회적 역할이 다시 본격적으로 나에게 장착되면서, 한국 사회가 엄마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오늘 하루만 해도 참 다각도에서 피부로 느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인하다는 헛소리처럼, 엄마는 하나의 부류로 쉽게도 집단화되었고, 그 집단의 특성은 고리타분한 한 세대처럼 잘도 정의되었다. 그 사회적 시선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엄마는 그냥 엄마다. 이름이 없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아들 둘을 낳고 몇 년 기르다 한국에 돌아온 대학 동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출산 문화, 육아 문화, 다른 거 꼽자면 끝도 없지만 대표적이고 가장 상징적인 건, 산부인과에서든 보육시설에서든 여자가 아기를 낳았더라도 자기 이름으로 불린다는 거였다. 오늘 여러 어린이집에 전화를 돌렸는데, 몇 군데에서 상담에 필요한 정보를 물었다. 그 중에 내 이름을 물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다 아기 이름, 연령, 성별, 끝. 한 군데서 '누구 엄마라고 불러드리면 되죠?'라길래 '그냥 제 이름으로 불러주세요.'하고 내 이름을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아니 아니. 그냥 누구 엄마로 불러요 다들.'
그러니까, 엄마는 그냥 뭉뚱그려져서 엄마고 맘충이고 아줌마다. 한국에서 엄마는 집단 자아만이 강조될 뿐 개인으로서 존중되지 않는다.
2. 엄마는 학벌과 사회적 간판에 혹한다.
베이비시터 구인글도 올렸다. 돈을 투자해서 구인글을 맨 위에 올리고 무료열람하게 하는 등 노력을 했더니 두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그 중 한 명의 문자 중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저는 강남에서 인기 많은 도우미입니다. 의사 부부 연대 교수 부부 검사변호사 부부 인기 EBS 영어강사 부부 등 자녀들 돌보았고 모두 만족하시는 A급 도우미에요. 나 불러주는 데 강남에도 아직 많은데 이제 돈이 그리 안 급해서 연락 드려요' 아...! 평소에 이런 내용이 먹힌다는 거다. 이게 그 사람의 셀링포인트다. 문자 전문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장문의 문자를 다 읽으니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이런 사회 엘리트도 나를 써. 너희 집은 그보다 못하지? 그러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나를 써야지.' 순간 욱해서 똑같은 사람이 되기로 했다. 남편 학벌 내 학벌 둘의 직업 모두 공개하고, 시간이 안 맞으니 일단 다른 분 구하겠다고. 우리 부부의 학벌과 직업을 확인한 그 사람은 갑자기 태도를 바꾸며 공부 많이 한 사람 존경한다고, 급할 때 꼭 연락 달라고, 이렇게 연락 닿은 것도 인연 아니냐고 했다. 아마 그 분에게 아기를 맡길 일은 없을 것 같다.
3. 엄마는 신문물(?)에 친숙하지 않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아동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런 데선 어떻게 장사하나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남겨둔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했나보다. "아 저기 OO클럽 어플 경로에 번호 남기셨더라구요." "네네. 그 어플이 설치가 안 되더라구요." 그 어플은 시대착오적이게도 QR코드를 통해서만 접근해서 설치할 수 있었고, 그 마저도 iOS에서는 에러가 나면서 계속 설치에 실패했었다. "아 그러시면 저희가 한 번 방문해서 어플도 설치해드리고요. 상품 설명도..." 저기요? 제가 어플 설치를 못하는 게 아니고 귀사의 어플 설계가 매우 미흡해서 안 되는 거고요? 그냥 앱스토어 검색해서 나오게 하는 게 훨씬 접근성이 좋아서 장사도 잘 될 거고요?
"그래서 내일 한 번 찾아뵈려 하는데 시간 괜찮으세요?" 네? 댁이 누구신데 당장 내일 우리 집에 온다는 거죠? "아 저 내일은 지방 갈 일이 있구요." "아! 그러시구나. 시댁 가세요?" 아뇨. 모든 유부녀에게 지방 = 시댁 인가요? 더구나 내가 내일 지방 가는 이유를 왜 당신이 알아야 하죠?
오늘 전화했던 어느 어린이집에서는 내가 스마트폰으로 위치를 검색해서 집에서 가까운 것을 확인하고 전화한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집에서 어린이집으로 오는 길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다. 주소 아니까 알아서 찾아가겠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편의점과 은행 등의 자잘한 랜드마크를 곁들여서. 친절한 것은 고마운데, 어느 시대에 사시는 건지.
나라는 동일한 인간이 이 상태로 직장에 가서 피디라는 역할을 수행한다면, 그 누구도 내가 알아서 길을 찾지 못할거라거나 어플 하나 설치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내 이름을 지우고 누군가의 엄마가 되면, 갑자기 사회는 나의 시대 적응력을 얕보고 무식하게 만든다. 조리원에서 얼떨결에 본 공중파 드라마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드라마 볼 시간에 책이나 한 권 더 읽으라'고 구박하는 것을 혹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부부가 저렇지'라며 아무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혹시, 여자들이 아기를 낳고 직장으로 얼른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가, 엄마라는 역할을 장착한 순간 이렇게 은근히 평가절하되는 경우를 참지 못해서가 아닐까? (참고로 위의 그 출판사는 예전에 산후조리원에 찾아와서는 '아기들에게는 백설공주 신데렐라 같은 동화가 인문학이니 어릴 적부터 많이 읽혀야 한다는 우동뇌 같은 소리를 해댔던 출판사다. 다시 말하지만 백설공주가? 신데렐라가? 밥해주고 걸레질하다가 왕자님이랑 결혼해서 또 밥해주고 걸레질한다는 그 얘기가? 얼마나 엄마들을 바보로 알면, 저런 소리를 해대면서 장사를 할까.)
믿거나 말거나 이 모든 일들이 오늘 하루 사이에 일어났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나일 뿐인데, 아기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굉장히 '우매'해진 느낌이다. 여자는 감정적이야, 자식 일이라면 갑자기 이성을 잃지, 여자들은 자식 키우느라 자기계발에도, 외부의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못 느껴. 이 따위의 의심 없는 결론들이 판 치는 세상에서, 대체 어떻게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루만에 나는 의도치도 않게 이다지도 불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