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분만을 겪고 미래를 기억하다
나는 수중분만으로 딸을 낳았다. 임신 기간 동안 분만 방법에 대해서 조사를 하다가 많은 산모가 그렇듯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후 결정한 방법이었다. 애초부터 개인의 선택 문제였기 때문에 무슨 논리적인 연역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히프노버딩Hypnobirthing>이라는 책의 '출산은 원래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며, 모든 여성에게는 고통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힘이 내재되어 있다'는 반복적인 주장은 정말 이걸 믿느냐 안 믿느냐, 즉 거의 종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 설령 그 주장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 책이 전반적으로 갖고 있는 컬트적인 분위기와 신봉자들의 '간증'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산모의 고통을 경감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 프랑스에서 무통주사 맞고 아들 둘을 낳은 대학 동기에게 내가 수중분만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그 고통을 생으로 다 겪는다는 말이야?' 이 말에 나는 무통주사를 한 3일 정도 고려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수중분만을 했느냐고?
글쎄, 그냥 그러고 싶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서 두 번째로 극심하다는 그 느낌이 궁금하기도 했고, 나 자신의 한계도 시험해보고 싶었다. 차가운 분만대 위가 아닌 따뜻한 물 속에서 고통을 견디게 된다는 것도 왠지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몸에 칼 한 번 댄 적 없는 내가 회음부절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좋았다. 임신 기간을 활기차고 건강하게 지낸 데다 병원에서도 모든 예후를 아주 긍정적으로 말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죽을 것 같던 그 고통을 꽤 단단한 상태로 견디어냈다. 어찌 보면 그 고통을 이용하는 방법을 터득했다고도 할 수 있다. 물론 다시 하라고 하면 안 한다고 할 것이다. 둘째 생각 있느냐는 말에는 손사레를 칠 정도로 생각도 없지만, 만일 하게 되면 이번엔 반드시 무통주사를 맞아보겠다.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출산의 느낌에 대해 공유해달라고 하면 내가 항상 하는 얘기가 있다. 막상 힘을 주기 시작하면 비교적 안 아프다. 다시 말하지만 '비교적'이다. 물론 힘 주기 전까지의 진통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지옥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힘을 주어 아기를 밀어내는 과정이 비교적 덜 고통스러운 이유는 바로 그 지옥 같은 진통이 아기를 밀어내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도 맞는 말이라고 한다. 진통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궁 내 근육이 수축할 때 발생한다. 자궁 내 근육은 수축하면서 아기를 아래로 밀어낸다. 이렇게 고통이 에너지가 되어주는 경험은 처음이지만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처음이고, 앞으로도 없을까?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든다>의 저자 레베카 솔닛의 아름다운 에세이 <멀고도 가까운>의 문장이 나를 이런 물음표로 데려다주었다.
나병은 신경을 짓눌러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게 만들 뿐이고, 그렇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면 환자들은 그 부위를 돌보지 않게 된다. 피부를 상하게 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다. 스스로가 제 손가락과 발가락, 발, 손을 베이고, 화상을 입고, 멍들게 하고, 벗겨지게 하다가, 결국 그 부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 고통에도 목적이 있다. 고통이 없다면 우리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느낄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돌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고통이 가끔은 좋은 기능을 한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고통은 마치 아기의 울음소리처럼 '내가 여기에 있으니 나를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는 표시이다. 아무런 징후가 없이 발전하는 질병들을 우리가 더욱 위험하다고 하는 이유다. 어떤 고통은 그 원인을 찾아 제거함으로써 신체적 정신적 건전함을 회복하기도 하지만, 어떤 고통은 온전히 견뎌내고 실컷 앓아내야 극복되기도 한다. 꼭 출산 시의 진통처럼, 충분히 앓는 과정에서 큰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경우 말이다.
5년 전 에피소드. 롱보드를 산 첫 날 내리막길에서 까불다가 넘어져 발목을 삐었다. 허벅지에도 아스팔트에 쓸린 자국이 꽤 크게 남았다. 다쳐서 한참을 고통 속에 있었는데, 나는 미친 년처럼 실실거렸다. “헤헤, 나 살아있다.” “나 살아있는 게 느껴져.” 지금 영화찍자는 게 아니라, 정말 그랬다. 내가 살아 있어 잠깐 발을 절뚝거려야 한다는 게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출산 후 한 달쯤이 지났을 시점 아주 컨디션이 안 좋던 어느 날에는 그 때 다친 왼쪽 발목에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 통증은 고통에서 생명의 증거를 찾던 5년 전 나와, 마찬가지로 고통에서 더 큰 힘을 찾던 출산 시의 나를 연결해주는 신호였다.
솔닛의 사유는 나를 더 먼 과거로 데려다주었다. 삶의 무의미함에 몸부림치던 20대 초반 그 어리석던 나에게로. 작은 자취방에 홀로 몸을 뉘어 천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물이 흘렀다. 이대로 삶을 끝내도 세상의 엔트로피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나였다. 나의 고통은 잉여였고 매일을 생존에 시달리던 누군가에게는 사치였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광활함은 무엇이든 그릴 수 있는 백지가 아니라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암흑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 고통이 반대로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힘으로 바뀐 건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과거에도 이미 많았고 - 나의 전공이 실존주의자 사르트르를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불문학이었다는 데 감사한다 - 그 당시에도 주위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다. 무의미에 관한 그 수많았던 대화, 오고 갔던 관계들, 그런 것은 무의미하다고 할 수 없었다. 꼭 보드를 타다가 다친 왼쪽 발목의 통증처럼 내 몸에 새겨진 의미들. 지금도 종종 잊곤 하는 사실, 삶의 무의미를 생명력으로 바꾸는 힘은 결국 대화와 연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고통이 에너지가 되어주는 경험을 나는 처음 하는 것이 아니었고, 이것에 관한 한 나는 미래마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날 밤을 오롯이 바쳐 겪은 7시간의 진통은 겨우 30분만에 딸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할 만큼 강한 에너지가 되었다. 이 에너지는 그 날 응축된 형태로 딸의 몸 구석구석에 전달되었고, 이 아이의 삶에서 고통의 형태로 전환되었다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추진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