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살 수 없어야 한다
평화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외출했던 날을 기억한다. 출산 후 6주쯤 되었었나. 너풀대는 수유원피스 위에 그대로 가디건을 걸쳤다. 민낯에, 간단한 레드 립. 겨우 은행 가는 길이었을 뿐인데, 설렜다. 만삭 때보다 9kg 정도 가벼운 몸으로 사뿐 걸었다. 봄이 오고 있었다.
집순이인 나에게 출근을 제외한 외출이란 조금은 성가신 일이었다. 심한 근시에 난시까지 있어서 집에서는 핑글핑글 도는 안경을 쓰는 내가, 완전한 스모키, 매트, 선호하는 '센 언니' 룩을 완성하는 데는 많은 숏(shot)이 동원되기 때문이다.
안경 벗고 렌즈 끼기 (컷) 윗도리 입고 거울 앞에서 옆구리 돌려보기 (점프컷) 다른 옷 입고 가만 서 있기 (점프컷) 한 발 들고 스타킹 신기 (점프컷) 괴상한 모자 썼다가 벗기 (컷) 화장대 앞에서 입술 맘맘마하기 (컷) 눈두덩이에 뭔가를 바르기. (컷) 면허는 있으나 운전을 못하는 내가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검색하고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현관문을 나서는 건 또 다른 시퀀스다.
영화 <프랜시스 하Francis Ha>의 프랜시스가, 옷가지 몇 개 설렁설렁 걸치고 오토바이 타러 나가는 친구를 보면서 '외출을 저렇게 쉽게 하다니 부럽다'고 말할 때 그 심정이 내 심정이었다.
출산 후 11주가 지난 지금도 나에게 외출은 여전히 온 성의를 다 해 임하는 일과 중에 하나다. 다만 그 준비 과정이 임신 전처럼 성가신 게 아니라 가장 신나는 일이 되었다는 게 좀 다르다. 동네 슈퍼 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화장을 다 한다. 만삭 -11kg. 아직 목표 체중까지는 5kg이나 남았지만 얼추 마음에 드는 멋부림옷을 입을 수 있다. 양말부터 모자까지 고르고 고르고 고른다. 귀걸이도 물론 한다.
외출결핍증후군의 증상이다.
아기를 데리고 혼자서 외출을 감행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산책을 방해하는 요소야 얼마든지 있다. 먼저 미세먼지를 들 수 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기띠를 메고 아기를 안정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거나, 유모차를 꺼내고 조립한 뒤 아기가 지금 유모차 탈 기분이 나는지, 짜증을 내어 나를 포함한 어른들을 당황시킬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를 점검하는 일도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다. 옷을 갈아입고 비비크림이라도 바를라치면 평화가 불러서 달려가서 공갈을 물려줘야 한다거나, 나가기 직전 기저귀를 갈아주고 혹시 모르니 여분의 기저귀와 물티슈를 챙겨야 하는 건 뭐 아무 것도 아니다. 또 평화는 길어야 3시간마다 젖을 먹기 때문에 일단 수유 직후에 외출을 시도해야 가장 오랜 시간을 밖에 있을 수 있다. 그마저도 밖에 있다가 밥 먹은지 2시간만에 배가 고프다고 울기 시작한다면?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데까지 30분 거리에 있는 곳까지 가버렸다면? 수유커버와 가제수건을 챙겼는데도 불구하고 그 곳에 수유할 수 있는 곳이 없다면? (백화점을 싫어하는 나에게, 외출한 곳에 수유실 없을 가능성 99%. 다음 대통령아 수유실 좀 만들어라 남자 화장실에 기저귀 갈이대 만들고) 그것도 아니라면 분유를 타갈 준비를 해서 분유를 먹였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먹인지 오래 된 한 쪽 가슴이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부풀어오르기 시작한다면? 그래서 공중화장실에 들어가서 내 손으로 직접 가슴을 꽉꽉 쥐어짜면서 안에 들어찬 모유를 빼내주어야 한다면?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다 못 뺐는데 눈치보면서 나와야 한다면?
아무튼 이래저래 아직까지 딸과 단둘이 나가는 시간을 즐기는 수준에 이르르지 못한 초보 엄마에게, 남편이 집에 있고 미세먼지가 적은 날은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번 나갈 때 최선을 다 해서 땅 불 바람 물 마음을 만끽한다.
그 절호의 기회가 지난 어린이날에도 찾아왔다. 볕 좋고 바람 좋고, 무엇보다 나의 날, 어린이날이지 않은가. 마침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친구가 넌지시 이야기했던 공연이 있었다. 프로그램하면서 만났던 분이 하는 공연이라 더 궁금했다. 아기가 자기 직전에는 분유를 먹기 때문에 마지막 모유수유를 마치고 또 여러 점프컷과 두 개의 시퀀스를 거쳐 현관문을 나섰다.
(공연장 도착, 공연 현장, 친구와의 만남, 모든 것을 잊고 즐긴다는 둥 '해방된 엄마' 클리셰 하이라이트 편집. 신나는 BGM, 끝내주는 믹싱.)
공연을 다 보고 공연장을 나서니 밤 9시 반 정도였다. 버릇대로 시간 계산 먼저 했다. 7시에 먹였으니까 9시 반이면 슬슬 목욕을 마치고 분유를 타고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혼자 목욕시키느라 손이 없나? 버스가 바로 왔다. 집까지는 약 40분 소요되는 거리. 텅 빈 버스에서 마음에 드는 자리에 골라앉아 스포티파이가 제안하는 트랙들을 넘기는 중에도, 생각은 온통 젖병, 아기 욕조, 스와들업, 밤기저귀 페넬로페, 코끼리 뺑코... 다시 전화를.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 스포티파이를 꺼버렸다. 물음표 이모티콘을 다섯 개쯤 보내려다가 열 개쯤 보낸다. 지워지지 않는 1.
그 후로 5분 간격으로 전화를 너댓번 더 했다. 받지 않아서였다. 시간이 흐르고 집에 가까이 갈수록 상상은 커져갔다. 아기를 안고 집 앞에 나간다고 했었는데, 나갔다가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목욕과 분유 먹이기는 매일 남편 혼자서 하던 일이기는 하지만 내가 옆에서 도와주었었는데, 내 도움이 없으니 서투르게 하다가 무슨 사고라도 났나. 아닌가. 그냥 잠들었나. 버스는 유달리 천천히 가는 것 같았다. 기사님이 미웠다. 지워지지 않는 1.
평화결핍증후군의 증상이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냅다 뛰었다. 힐을 신었지만, 야외촬영 때 자주 신어서 단련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는 하필 이럴 때 가장 높은 층에 멈추어 있다. 문을 열자마자 큰 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부르고.
웃으면서 마중을 나온 남편은 울상인 나를 보고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팔에는 평화를 안고 있었다. 잘 때 입는 속싸개를 입고 졸린 얼굴을 한 평화. 짜증과 안도와 원망이 섞인 울음이 터졌다. 전화를 왜 안 받았냐고, 메시지는 왜 안 보냐고. 남편이 남은 한쪽 팔로 나를 안았다. 남편의 휴대전화는 침대 위 진동이 잘 안들리는 곳에 뒤집혀 내팽겨져 있었다.
나는 평화를 건네 받아 곧 잠들 것 같은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시 눈물이 흘렀다. 피곤한 어느 아침에 버겁게 느껴지던 무끈한 아기의 무게가 기분 좋게 느껴졌다. 누군가에게 누군가가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남편과 아기를 한꺼번에 잃는 최악의 경우까지도 나는 상상했었기 때문에. 주책맞게도.
그러니까, 결핍된 외출을 보충하는 그 시간은 평화결핍증후군에서 벗어나는 이중의 행복으로 마감되었다. 언제나 외출할 수 있고 언제나 아기와 함께 있을 때 느끼지 못하는 행복.
결핍되었던 것을 보충하는 그 순간이 사람에게 가장 큰 만족감을 준다는 것. 일주일 내내 집안에 묶여 있다가 맞이한 쾌청한 주말 하늘, 아기 없이 보내는 자유로운 시간 끝에 만나는 아기의 기분 좋은 무게. 아기가 낮잠 자는 30분을 틈타 스마트폰으로 글을 쓰는 지금과 같은 시간. 임신한 열 달 동안 못했던, 엎드려 책읽기. 땀흘려 운동하다가 마시는 얼음물 한 모금. 이런 것이, 핸드폰 터치 몇 번으로 주문하고 다음 날 받는 하이힐보다 훨씬 질 좋은 만족을 준다는 당연한 진리를, 그 어느 때보다도 절감하고 있다.
원하는 모든 것을 언제든 어디에서든 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들은 전능감 대신에 정서적 허기를 얻는다. 블랙 프라이데이에 앞다투어 사는 불필요한 세일상품들, 당신은 불완전하다고 끊임없이 외쳐대는 광고이미지들, 만들어진 수요. 물질의 과잉은 미디어에 의해 주입된 불행감을 증명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미니멀리스트, 단순하게 살기를 택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는 적당한 결핍이 행복의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굳이 확인할 것이 없어도 손에서 스마트폰을 놓지 않고 본 것 또 보고 또 보고 하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쯤 전원을 끄고 오프라인 생활을 즐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는 것이다. 정보의 결핍은, 새로운 정보를 더 달게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을 만들테니까.
이런 글을, 일 년에 한 번 뿐이라 더 빛나는 내 생일에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