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반지 잃어버리기
방송국 근처 그 생선구이 가게는 이제 사라져버렸다.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 라는 가장 어려운 질문에 항상 손쉽게 정답을 내려주던 곳. 내가 안간힘을 다해 기억하려 했던 곳. 기억해내려 할수록 얄궂은 블랙홀로 변해버렸던 곳. 자비도 없이, 내 결혼반지를 앗아간 곳.
결혼반지를 떠올릴 단서조차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 듯,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는 구조를 바꾸더니 마침내 텅 비어버렸다. 내 반지를 고래처럼 삼키고는 영영 그 터를 떠났다. 나는 그 상가의 권리금이 얼마나 올랐을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순진하게 생선구이 가게 사장님을 원망했다. 마치 그 가게가 존속한다면, 내가 결혼반지를 잃어버린 그 어이없는 사연도 없던 일이 되기나 할 것처럼. 반지가 나에게 돌아올 것처럼.
그 날은 엄마를 만나 저주 받은 2014년 10월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엄마는 엄마답게 별다른 위로가 없었다. 야. 원래 다 그런 거야. 니가 원래 좀 이상하잖아. 사람들 눈에는 니가 더 이상해. 이런 식의, 객관성을 확보해주려는 시도들 뿐이었다. 그 식당에는 우리 밖에 없었고, 밥을 다 먹고 나서도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이 훌쩍. 빈 그릇을 치우고 갈 채비를 하는 식당 직원을 따라 경황 없이 계산을 하고 식당을 나서다,
이걸 두고 가셨네요. 손 안에 반지 하나가 들어왔다.
직원과 나의 손이 스치는 데 1초가 흘렀다.
호기롭게 오른손에 반지를 끼고 또각 또각 몇 걸음 걷다, 아침에 왼손에 결혼 반지를 끼려고 반지 통을 뒤지던 기억이 스쳤다. 다시 식당으로. 글쎄 아가씨 내가 반지 2개 줬잖아. 왜 하나밖에 못 받았대? 떨어졌으면 소리가 났을 건데. 모르겠네 이 식당엔 없는 것 같아. 나가는 길에 떨어뜨렸나 찾아봐.
준 사람은 2개를 줬다는데, 받은 사람은 1개를 받은 미스테리. 엄마와 나는 고양이처럼 살살 엎드리고, 거북처럼 목을 빼가면서 샅샅이 그 가게를 뒤졌다. 떨어지지도 않았고, 내 손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그 반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혹여 생선구이 가게 사장님이 폐업을 준비하면서 가게의 모든 설비를 들어낼 때, 주방의 타일바닥 어느 한 켠에서 수줍게 나를 기다리고 있지는 않았을까. 그 사장님은, 혹시라도 찾게 되면 연락 달라며 전화번호를 적던 내 얼굴을 떠올리고는 메모지를 찾아보려 했으나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라서 포기하고 말았을까. 옛날 동화처럼, 어느 액세서리 상점에 그걸 가져가서 값을 얼마 쳐줄 수 있나 묻고, 실망해서 겨우 하루 이틀 유흥비로 날려버렸을까.
그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리차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를 보았다. 한 때 가히 ‘내 인생의 영화’라 불렀던 ‘Waking Life’를 만든 링클레이터의 그 영화. 내가 울기 시작한 건 암실 장면에서였다. 선생이 말했다. 넌 다른 애들과 달라. 그래 너 재능 있어. 근데 알아? 너 같은 애들 성공 못해. 네 세계가 그렇게 특별해? 다른 사진작가들이 어떻게 성공했는지 봐. 엄마가 아들을 대학교로 떠나보내면서 “내 삶은 끝났어, 나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고 할 때쯤에는, 벌써 몇 분간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울었다. 내가 그러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링클레이터의 씁쓸한 농담에 성실하게 웃어주고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12년간 ‘촬영 당한’ 배우와 감독 링클레이터가 나누었을 대화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 배우가 어떻게 자라는지에 따라, 그 배우가 어떤 성향과 생각을 갖느냐에 따라 결정되었을 사소한 요소들. 그리고 그 사소한 요소를 통해 생겼을 큰 변화들. 입봉작을 만들면서, 꾸밀 수 있는 것도 굳이 꾸미지 않으려고 했던 내 노력들. 출연자들과 나눈 대화. 출연자가 진심이었든, 그렇지 않았든.
내가 엄마에게 그 10월을 저주 받았다 표현한 것은 나에겐 첫 아이와도 같았던 입봉작에 쏟아부었던 그 뜨거운 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회의와 대화와 촬영과 밤샘편집이 진심이었고, 오로지 진심이 전달되기만을 바라면서 살았다. 그것은 비대해진 자의식의 결과물이었고, 'Wag the dog'에서 더스틴 호프만이 연기했던 그 기획자처럼 나의 것이 나에게 온전히 돌아오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많은 선배들의 가르침처럼, 모든 제작 프로세스가 끝나고 테입이 내 손을 떠나 송출실로 보내지면 그것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는 그로부터 2년 남짓의 세월이 더 걸렸다. 그렇게 해서 적당한 온도로 사랑하고 때가 되면 떠나보내는 법을 배웠다. 너무 뜨겁게 가열하면 영양소가 파괴되어 버리고 너무 차갑게 식어버리면 속앓이를 유발하는 엄마 젖처럼,
그 때 내가 보이후드를 보면서 흘린 눈물은 아마 결혼반지처럼 중요한 것 하나 간수하지 못하면서 뜨거운 자기애 때문에 세상을 원망하는 스스로를 위해 흘리는 연민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자식이 품을 떠난다고 해서 메이슨의 엄마처럼 "내 삶은 끝났어, 나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라며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 자신으로부터 또 내가 낳은 것들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연습을 해야 했다. 앞으로도 딸을 키우면서 잊지 말아야 할 원칙이 있다면, 내 손을 떠나 딸이 스스로 뛰고 생동하도록 놓아주는 적당한 거리감이 아닐까. 너무 뜨겁지 않게, 또 너무 차갑지도 않게.
그 날 1초가 흘러 결혼반지는 내 손을 떠났고, 그 후 2년 내내 나는 내 손을 떠나는 것들에 대해 애도하는 마음으로 많은 것을 기록해왔다. 애도는 다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공백을 마련해주었고, 기록은 지나간 모든 것들을 붙들어둔다는 환상을 남겨주었다. 모든 것은 특별하다면 특별했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았다. 나는 보이후드를 보고 돌아오던 밤길에서 엄마와 통화하다가 그것을 배운 것인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너 아직 반지 못 찾았어? 응 엄마 내 10월은 왜 이렇게 최악이야? 나는 구제불능이야. 진짜 최악이야.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
그러게 너는 왜 중요한 반지를 그렇게 흘리고 다니냐는 꾸중을 기대하고 있었던 내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괜찮아. 그게 뭐 중요해? 이제 빼고 다녀. 싼 거. 커플링 사서 둘이 끼고 다녀. 방 서방 보고도 결혼 반지 빼고 다니라고 해. 괜찮아.
그 생선구이 가게에서 엄마는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시청자 입장에서 냉정하게 비판했으면서, 나와 헤어지는 길에는 당신이 이제 아무 걱정이 없고 행복하다며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 이루었다’고, 다 이루어서 몸이 아픈 것 같다고 말했었다. 메이슨의 엄마는 “뭔가 더 있을 줄 알았다”고 했었다. 우리 엄마는 "원래 그런 거"라고, 또 "다 이루었다"고 했다. 결혼반지는 특별하다면 특별하고, 그렇지 않다면 그렇지 않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딸이 자는 시간을 틈타 보이후드를 다시 보아야겠다. 나의 결혼반지와 그 생선구이 가게를 애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