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10개월, 뇌가 폭발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운을 떼야할까?
글을 쓴 지 벌써 10개월이 흘렀다. 복직 이후 1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나는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갔다. 아기를 언제 낳았냐는 듯, 내가 임신이나 했었냐는 듯. 나의 딸 평화가 언제든 어딜 가든 내 마음 안에 함께 한다는 사실 외에, 나는 변한 것이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고 인생은 절대로 예전 같지가 않았다"는 수많은 여성들의 증언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나는 아기를 낳기 전과 정확히 동일한 사람이다. 예전보다 능숙하게 처리할 줄 아는 게 조금 많아졌을 뿐, 외양적으로 추구하는 스타일이나 사고방식까지 전부 그대로다.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일단 복직 이후 프로그램에 투입되고 나서 마의 두 달이 있었다. 2018년 여름은 사실 그랬다. 평온하던 휴직 기간의 바이브를 다시 팍팍하고 '빡세게' 조이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힘들 줄은 몰랐다. 그렇게 적응기가 끝나고 2018년 하반기 - 곧 신나는 발산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일은 발산하는 형태의 직업이다. 수렴한 뒤 곱씹어 소화시킬 겨를도 없이 바깥으로 뱉어야만 하는 단기속성 크리에이티브. 도토리 줍듯 주머니에 생각을 담아 활자의 형태로 다시 요리해낼라치면, 이미 '쇼', '영상'의 형태로 도토리를 소진하고 난 뒤였다.
둘째로, 사실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나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초 집단인 데다 회사 역사상 최초의 워킹맘 피디가 배출됐다는 사실을 우호적으로(?) 생각하는 회사에 다닌다는 점, 여기에 페미니스트와 결혼했다는 점까지 어떤 이들이 보았을 때는 너무도 이상적인 여건으로 읽힐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 걱정한 것에 비해서 너무 많은 것이 순조롭게 흘렀고 세상 사람들이 겁 준 것과는 전혀 반대로 나는 너무나 멀쩡하게, 그리고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 회사의 피디로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위 문장의 '우호적으로(?)'에 물음표를 단 이유다. 우호적이랄 것도 없다는 얘기다.
복직을 막 했을 때는 당황스러운 질문도 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부 기성세대 남성들에게서 '아기 엄마'라는 시선을 느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시대의 분위기, 그리고 그 분위기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콘텐츠 회사에 몸 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아기는 지금 누가 봐?"라는 질문을 왜 막 '아기 아빠'가 된 사람에게는 하지 않느냐는 나의 반문은 전혀 유난스럽지 않은 것이었고, 복직 후 겨우 몇 주가 지나자 나에게 아기, 육아에 관해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다. 한 번 더 말하면 입 아프지만, 아기는 베이비시터와 나와 남편과 외할머니와 (때때로) 고모가 다 함께 본다. 세상 사람들이여 제발, 아기를 보는 사람은 엄마 한 명이 아니다.
"이래서 애 엄마들은 안 돼"라는 말 들을까 봐 능력의 한계치까지 치달아가면서 회사에 온 몸을 바쳤다는 흔한 워킹맘의 슬픈 이야기 역시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내 와이프도 아기 낳더니 회사에서 확실히 예전만큼 못하더라, 그러니 너도 화이팅해야지"라는 말, 나도 들었었다. 하지만 업무가 코 앞에 닥치니 나에게 부여되는 동기란 '애 엄마라서 능력치가 떨어졌다는 얘기 듣지 않기' 따위가 아니었다. 다만 아기 낳기 전과 너무도 동일하게 '나 자신이 성취감을 즐길 수 있으리라고 예상되는 수준까지 도달하기'였을 뿐이다. '아기가 아침마다 엄마랑 떨어지기 싫다고 울진 않아?' 최근까지 가끔 듣는 질문이지만 난 이 질문 역시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기가 아침마다 아빠랑 떨어지기 싫다고 울진 않아?'라는 질문이 당연하지 않듯. 아기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빠가 집에 없다고 울지 않듯, 엄마가 회사에 출근한다고 해서 울지는 않는다. 이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가 일을 하러 잠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자연스럽다. 나는 가끔 혹시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아빠들이 지금 나 같은 삶을 살아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돌아와서 아기를 만나는 것이 본인에게도 아기에게도 너무도 당연한. 그러고도 얼마든지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아기와의 건강한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오늘의 글은 사실 이렇게 안온한 여건 속에서 멀쩡히 일하던 나에게 찾아온 '승리/정준영 사태'에서 촉발되었다. 지난 10개월간 크고 작게 짜증이 나는 상황들은 있었으나 목소리를 내면 즉시 시정되는 것처럼 보였고, 그 이외에 특별히 크게 분노하는 상황이 없으니 나는 세상이 좋아지고 있나 보다 하고 어느 정도는 안도하며 지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내가 얼마나 착각을 하면서 살아왔는지, 아직 얼마나 갈 길이 멀었는지 다시 깨닫고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권력을 잡아왔던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 프로그램의 메인 피디가 되면 실질적으로야 어떻든 표면상으로는 '권력자'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의견을 묻고 내 결정에 따른다. 남성들이 주도해왔던 인류 역사에서 늘 그래 왔듯 권력자가 있으면 그 권력자를 따르는 자들과의 주고받는 관계에 따라 소위 말하는 '큰 일'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인물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 코어에서 나는 일순간 명예 남성이 되어보라는 주문을 받았었고, "나는 내 식대로 일하니 다시는 이런 기득권 남성 코스프레는 나에게 요청하지 말라"는 핀잔 한 마디에 많은 사람들이 수그러드는 것처럼 보였다. 이 '바닥'에 여성이 많아지면서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고 착각)한 순간이었다.
"그러게 사람이 역시 핸드폰을 조심해야 해."
이번 정준영 사건을 대하는 어떤 사람의 코멘트였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내 지난 안온한 10개월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을 조심해야 한다고? 이게 무슨 네이버 실검 1위에 '정준영 동영상'이 올라오는 얘기란 말인가. 이 바닥에서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끼리의 대화에선 '우리가 잘 버텨야 한국의 연예계가 무너지지 않는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피해자가 몇이든, 여자가 '허벅지에서 찰싹찰싹 소리 나는' 물건 취급을 당하든, 지금까지 공고하게 쌓아온 것들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어떤 두려움.
'형 동생 카르텔'. 작년 여름 '관습'이라며 태어난 지 3n년 만에 처음으로 단란주점에 끌려갔을 때 며칠을 되뇌던 단어들이다. 여성의 날이 불과 며칠 전이었고 온라인에서나마 나는 세계 곳곳에서 여성들이 연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제 겨우 20대 후반 30대 초반 어린 남자들이 '연대'할 수 있었던 에너지가 고작 여성을 수단으로 본인의 남성성을 과시하는 범죄행위였다니 헛웃음이 나고 뇌가 폭발하는 것 같았다. 그걸 다 어디에서 배웠을까? '관습'이라며 단란주점에 데려간 '형'들에게서? '좋은 거 보여줄까?'라면서 성인잡지 빌려주던 중학교 3학년 '형'들에게서? 머리 희끗한 할아버지가 세일러복 교복을 찢으면서 흥분하는 일본산 야동에서?
내 딸이 엄마 아빠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공룡이다. 그래서 그녀는 공룡이 그려진 모든 것을 다 갖고 있다. 옷, 양말, 모자, 책, 퍼즐, 피규어, 솜 인형, 팬티, 등등등.
공룡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유아용품을 사려면 으레 'BOYS' '남아용'이라 적혀 있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조차도, 넓게 보면 정준영과 승리처럼 '남성성 과시'를 부추기는 사회의 디테일한 요소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공룡처럼 커다랗고 큰 소리가 나는 우람한 동물은 남자들에게나 어울리는 것이지, 암." 이런 발상이 21세기에 어울리기나 한 것인가. 우리는 이 안에서 편안해, 여자는 어찌 됐든 2등 시민이잖아, 여자가 어찌 되든 우리만 안 무너지면 돼. 그러니까 핸드폰이나 조심하자. 그런 발상에서, 촌스럽고 구시대적인 '남아용 공룡 캐릭터'가 당연시되는 것이다. 그 편안함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이 상실되고 있는지, SKY 나와서 그래서 글 깨나 읽은 운동권 아재들 먼저라도 곰곰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금세 관둘 거라 생각했던 '애 엄마'들이 가정에서 사회 곳곳에서 이루고 있는 일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