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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Jul 09. 2018

들장미 소녀 캔디처럼 살기로 결심했다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요

 

사랑하는 맥주와, 사랑하는 분위기를 모두 갖춘 곳

 

 세차장에서 물을 쏟아 붓는 것처럼 비가 왔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다니, 신기했다. 오늘 같은 날에는 창문이 큰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면 좋을 텐데. 커피가 아니라 맥주를 마셔도 좋겠다. 내 취향에 맞는 노래가 나오는 카페에 앉아서. 창문이 큰 카페가 아니라, 어두컴컴한 카페라도 좋겠다. 적당히 어두운 카페와, 적당히 오래되고 낡은 분위기가 어우러진 카페 겸 바에 앉아서 느릿느릿 글을 쓰고 싶다. 비가 오는 날의 아침에는 햇살이 들지 않아서, 유난히 일어나기가 싫었고, 일어나서도 밖에 나가기는 싫었다. 화장하면서 레이첼 야마가타의 노래를 들었는데, 너무 좋아서 이렇게 그냥 좋아하는 노래를 주구장창 들으면서 누워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은 지속되어야 하니까. 그래서 무기력함으로 가득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집을 나섰고, 별다른 감정 없이 해야 할 일을 했다. 페스티벌이 너무너무 가고 싶은 요즘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뷰민라를 다녀온 직캠들을 보면서 부럽다는 말을 몇 번이나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공연을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언제였더라. 내가 사랑하는 순간들을 놓치고 사는 요즘이다. 요즘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있기는 한지, 모든 것이 의무가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다. 무엇을 할 때 진심으로 즐겁고, 무엇을 꾸역꾸역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만한 여유도, 힘도 없다. '데드라인 전까지 완성해야 한다.' 데드라인으로 가득찬 일정표를 보면서, 하는 생각은 그게 전부다. 결과물이 무엇이 되었든 일단 데드라인 전까지 완성할 것, 그게 요즘 나의 일상이다.


https://tv.naver.com/v/3155329


 얼마 전 ‘이불 밖은 위험해’를 보다가 강다니엘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로꼬가 강다니엘에게 "오늘 뭐하다 왔어?"라고 묻자, 강다니엘은 네 시간 자고 일어나서 샵 가랴, 여러 번의 무대에서 공연하랴, 팬싸인회도 가랴 정신없었던 하루의 스케줄을 쭉 이야기한다. 로꼬는 다음 주 사전 녹화를 미리 했다는 다니엘에게, 왜 미리 했냐고 그 이유를 묻는다. 그에 대해 다니엘은 잘 모르겠다고, 스케줄이 별로 궁금하지 않다고 답한다. 그냥 가면 '아, 이거구나' 하면서 한다고. 로꼬가 만든 수제 햄버거를 먹으면서, 별스럽지 않은 듯 무심하게 말하는 그 장면이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매일 밤 새고, 그래서 피곤해 죽겠다고 말하는 인터뷰를 볼 때보다도 더 안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삶의 여유가 없는지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너무 바쁘니까 자신이 하는 일 하나하나에 대해 생각하고,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할 만한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저 해야 한다고 하니까 하는 것이고, 해야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할 여유가 없을지도 몰랐다. 이미 그렇게 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고, 익숙해져 있는 대로 하는 것뿐일지도 몰랐다.

     

충전이 필요해


 강다니엘의 스케줄에 비하면 내 일상은 한가롭기 그지없는 삶일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나는 그가 했던 말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더 이상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설렘을 느끼지 않는다. 해야 하는 일이니까 하는 것이지, 이 일을 왜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끝내고 나서 성취감을 느끼지도, 그 일을 통해 내 자신이 성장했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그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5퍼센트 남은 핸드폰처럼. 이미 방전된 상태에서, 겨우 20퍼센트를 충전하자마자 충전기를 뽑아서 다시 방전되고, 방전된 상태에서 절전 모드로 꾸역꾸역 버티다가 안 되겠다 싶을 때 겨우 20퍼센트를 충전하고. 그리고 또 충전기를 뽑는 핸드폰과 닮아 있는 삶. 100%, 아니 80퍼센트 이상의 안정적인 충전을 한 적이 없는 나날들이다.     


 그런 상태에서 더 최악인 것은, 다른 사람들과 내 자신을 자꾸만 비교하게 된다는 점이다. 다른 사람들은 더한 극한의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나는 그래도 20퍼센트라도 충전할 시간이 있지, 다른 사람들은 5% 상태에서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 듯하다. 매일 같이 밤을 새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있다 보면, 나는 왜 겨우 이 정도로 방전되어 버린 거지 싶은 순간도 있다. 남들이 더 힘들다고 해서 내가 힘들지 않다고 부정하지는 말자, 이렇게 생각을 하다가도 그렇게 힘든 사람들 앞에서는 힘들다고 말하는 게 쉽지 않다. 나도 누구에겐가 기대고 싶은데, 지금의 나를 누군가가 안아주고 위로해 줬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꺼내는 게 쉽지 않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그래서 씩씩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밝은 사람보다는 씩씩한 사람. 어렵거나 힘든 일이 생겨도 씩씩하게 극복할 수 있는 사람. 캔디형 여주인공이 지겹고 짜증난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즘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캔디형 여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가 짜증나는 이유는, 결국은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잘난 남성에게 의존해서 극복한다는 데에 있다)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혼자 힘으로도 스스로를 잘 위로하고, '으쌰으쌰 잘 해보자' 행복을 찾고 에너지를 찾을 수 있는 사람.


행복은 아주 가끔,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그렇지만 요즘의 현실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혼자 있는 아침부터 자기 직전까지 우울함이 디폴트값이 되어 버렸다. 우울함은 지속되는 반면에, 행복은 잠깐 흩뿌려지는 순간에 불과한 나날들이다. 사람들과 함께할 때의 행복감, 잠깐 맛있는 것을 먹고 여유를 즐기는 순간의 행복감 등 행복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그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 여유와 분위기가 사라지고 나면 사라져 버리는 일시적인 것들.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고 싶은데, 지속 가능한 행복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외부에서 자꾸 행복을 찾기 시작하면, 그것에 의존적이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내 안에서 행복을 찾고 싶다. 그렇지만 내 안에서 비롯될 수 있는 행복이 무엇인지, 그 방안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찾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래도 언제든 위안이 되는 것은 글과 음악이고, 그것이라도 남아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요즘은 너무너무 외롭고, 지속적으로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꾸만 한다. 무기력하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를 사랑해 달라고, 안아 달라고 말하고 싶어서. 기대고 싶었다. 지금의 나도 괜찮다고, 사랑한다고 말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외부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내 자신을 다독일 충분한 힘이 없는 것 같아서, 그래서 다른 사람을 자꾸만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우울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누군가 나를 좋아하게 된다면 나의 밝은 면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사랑을 갈구하면서 그 사람에게 매력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많이 웃고, 더 밝고 해맑고 사랑스러운 사람처럼 굴겠지. 그런 모습으로 어필하고, 그런 모습으로 사랑을 얻고 나서 나는 과연 어두운 모습을 보여줄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그 사람이 나의 이런 면을 사랑할까, 이런 모습의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자꾸만 미루게 되지 않을까. 결국엔 그 괴리감 속에서 나는 더 외로워지면 어쩌지.


 그래도 언젠가는 내 우울을 감싸 안아줄 사람을 만나고 싶다. 슬픔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그리고 나의 슬픔과 우울을 타인과 비교하지 말아야겠다. 내가 더 우울해, 할 필요도 없지만 나의 우울은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말할 필요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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