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내가 뒤늦게 알아버렸어, 네가 기획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걸"
어느 날은 본부장님이었고 어느 날은 이사님이셨던 그리고 평직원인 듯 같이 업무를 보았던 창립 멤버분이 떠나가기 전에 말을 전해왔다.
글 내용만 보자면 어지럽지만 굉장히 변화가 많았던 스타트업에서의 3년 8개월이었다.(내게 있어 3년 8개월이라는 단어는 지금도 쓰이는 보람차지만 서글픈, 적어 보이나 열정이 가득했던 단어이다.)
해당 회사를 퇴사하기로 마음먹기 한 달 전부터 주 서비스의 개편이 이루어졌다. 규모가 있는 개편이었고 대대적인 구조조정 후 일어난 프로젝트였다. PC 웹 사이트 페이지 메인부터 여러 가지를 개선하는데, 위에 이야기한 분이 주신 기획서에 따라 열성적으로 UI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부딪치며 내 의견을 관찰해나갔었다.
그 모습이 굉장히 긍정적으로 느껴졌던 것 같다. 이런 모습이 있었는지, 이렇게 열정적인지 붙어서 일해야 알겠다더라. 그럼 그동안 정말 논 것처럼 보인 걸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덕분에 나는 그 당시 열정이 넘쳤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회사에서 점점 성장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예쁘면 다가 아니고, 유저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에 있어 퍼소나(Persona) 일 수 있는 '나'의 기준에서 얼마나 열심히 해왔는지, 기획하고 디자인해왔는지 스스로 나를 점수를 매기고 스스로 취해있었다.
어느 기업에서는 디자인이 '설계'라는 단어로 쓰이기도 한다더라. 어머나 내가 해왔던 일이랑 맞네. 내가 해왔던 일이 UI를 기획하고 제안하고 디자인하고, 나는 마크업까지 할 줄 아니까, 나는 나의 경쟁력에 취해있었고 취업시장이 얼마나 쉬워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 내가 다시 또 한 번 스타트업 기업에 입사를 했고, 입사하고 난 뒤 3개월 꽤 우울하게 지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나의 새로운 회사는 글로벌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MBA를 나오거나, 이름 알려진 좋은 대학을 나오거나 유학을 다녀온 학력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심지어 외국인 동료들도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는데 이전에 받아왔던 기획서와는 다르게 그림이 없는, 들어가야 할 내용만 써져있는 'Spec'이라고 불리는 문서였다. 그런데 더 나를 당황하게 했던 것은 그 문서는 온통 영어였다.
아아 나의 무력감이란.
기대했던 팀원들도 3명이나 생겼는데, 왜 다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
면접 때 팀 디자이너들은 어떠냐고 여쭤봤었다. 한 명은 개발을 잘 알고, 두 명은 UI에 있어서 실력이 좋다. 그중 14년 정도 경력이 되는 디자이너도 있다.라고 이야기를 받았는데 사실 입사 날까지도 별 생각이 없던 나는 는 점심때 그들과의 이야기에서 굉장한 어색함과 힘듦을 느꼈다.
프로젝트에 앞서 사이트를 살펴보자니 '왜 여기서 이 단어가 들어가지?' 싶은 우리 사이트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많았다. 게다가 이전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로 화면을 그려왔는데 여기는 Mac OS 환경인 데다가 Sketch를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회사와 어색한 이들 속의 바다에서 나는 휩쓸리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회사 가는 길은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었는데.
사교성이 나쁜 편이 아니고, 성격이 나쁜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회사에 적응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제일 힘이 드는 건 나란 사람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작아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