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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님 Mar 19. 2022

03. 버티고 난 뒤 얻은 것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살아남기

한 3개월을 초라한 나로 버텼다.

일단 내 뒤에는 회사-이직 사이의 기간에 부모님께 손 벌린 돈이 있었고, 그 외 여러 이유로 내 등 뒤에는 버티게 만드는,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벽이 있었다. 이유야 어떻든 사실은 꾸역꾸역 버틴 것이다. 꾸역꾸역.


친구를 만나면 한없이 호소했다.

우리 회사는 이렇고, 저렇고.


면접 보러 들어갈 때 느끼던 자유로운 분위기, 그것을 보고 이 회사를 꼭 들어오고 싶었는데 그것이 나를 어색하게 했고 동료들은 이미 서로 친하게 지내 그 틈으로 끼어드는 것도 쉽지 않았다.


팀 안에서도 영어도 잘하고, 회사 생활을 한지 오래되어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어려웠고 디자이너 둘은 같이 입사한 동기로 이미 친해진 상태. 


회사는 좋은 점이 많았다. 자유롭고 복지도 훌륭했다. 하지만 내 눈은 나를 힘들게 하는 것만 보인 것 같다.

프로젝트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디자인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기획 의도인데, 이 프로젝트는 기획자의 의도가 아주 간단하면서도 심플했다. 어뷰징(Abuse에서 파생된 단어로 주로 온라인 게임에서 버그, 핵 등의 불법 프로그램, 타인 계정 도용, 다중 계정 접속 등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챙기는 행위)을 하는 유저를 막는 경고문을 띄우는데 그 경고문이 디자인에서 강하게 표현되길 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 디자인을 해서 넘겼을 때 기획자는 '더, 더, 더!'를 요구했다.

심플했던 내 디자인은 점점 색이 강해지기 시작했고 그렇게 요구를 듣다 보니 톤 앤 매너가 죽기 시작했다. 그렇게 앉아서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디자인 시안이 많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보니 나 혼자 급해지기 시작했고 이윽고 퇴근 시간을 퇴근 시간답게 보내지 못하는 일도 생긴 것 같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와서 집에 안 가냐며 나에게 물었다.


UI 능력자! 디자인을 한 지 14년 된 동료는 내 디자인을 보며 여러 가지 리뷰도 해주고, 제안을 해줬다. 아 동료란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나의 고민은 빠르게 끝이 났고 퇴근을 도와준 덕분에 시간이 맞은 동료와 나는 같이 퇴근을 하게 되었다.


'스케치'를 처음 사용하는데 어렵지 않냐고 물어봤고, 나는 툴을 빠르게 익히는 편이기도 했고 막상 작업이 우선이 되니까 툴은 뒷전이 돼버리긴 했는데, 그래도 어려운 건 있어서 그때를 기회 삼아 이것저것 물어보고 책도 추천받고, 그렇게 동료들과 말을 트기 시작했다.


말을 트면서 슬그머니 그동안 겪었던 고민들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아이맥은 화면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살펴보는지(앱을 받고 있었는데 스페이스바만 치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같은 간단한 질문부터 회사 내부에서 다들 외국어를 다 잘하냐고 묻기도 했다.


다행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나와 같은 심정을 갖고 있었고, 기획서를 읽는데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새로운 섬에 안착을 하고 드디어 기대하던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회사 생활은 쉽지 않았다.


어느 날은 기획으로 괴롭혔고, 어느 날은 사람과 사람 사이가 나를 괴롭혔다. 그때마다 나를 버티게 하는 것은 동료와 월급,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며 '배워간다'라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벌써 3년 전 일이 돼버렸고, 지금은 그 회사에서 나 혼자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지만 그때 그 느낌을 나는 아직 잊지 않았다.


다음 글에서는 그다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디자이너가 디자이너를 만났을 때. 새로운 동료를 만났을 때의 대한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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