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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 아픔과 슬픔

이반디, 『햇살 나라』, 위즈덤하우스, 2024

by 달리

* 쪽수: 88쪽



이반디의 동화집 『햇살 나라』를 보았습니다. 죽음, 학대, 폭력, 전쟁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기존 동화가 잘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김남중의 『동화 없는 동화책』이 추구했던 가치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각 작품의 제목은 순서대로 「햇살 나라」, 「다정한 스튜어트」, 「마녀 포포포」, 「이 닦아 주는 침대」입니다. 네 작품 모두 밀도가 매우 높아서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그중 앞의 두 작품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햇살 나라」는 주인공 '세아'가 3층짜리 건물의 지하방으로 이사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2층 오른쪽 집을 마음에 들어 하는 세아의 바람과 달리 엄마는 짐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고, 세아도 붉어진 얼굴로 따라 내려갑니다. 아마 세아는 거기에 집이 있을 거란 생각도 못했던 것 같지요.


새로 마련한 보금자리가 지하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묘사가 책의 맨 앞장에 배치되었다는 것은 이 책이 일관되게 추구하고 있는 방향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곧잘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그렇기 때문에 낮은 곳에서 아파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무심한 사람들의 귀에는 잘 닿지 않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도 그런 무심한 태도를 경계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정말로 보고 듣고 기억해야 할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눈높이보다 낮은 곳에 있다고 말합니다.


세아의 엄마는 마트에서 일하고 저녁 늦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세아는 어두운 지하방에서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하지요. 외로운 세아에게 세아를 닮은 바람 요정과 비 요정, 햇살 요정이 차례대로 다녀간 뒤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집니다. 지하방 창문으로 물이 폭포처럼 들어와 집안은 금세 물바다가 됩니다. 세아는 울며 현관문을 열어보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은 지상에 머무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그래서 세아는 물이 턱밑까지 차오르도록 방 안에 혼자 남아있습니다. 그때 하늘 여신이 나타나 세아를 데려갑니다. 세아는 떠나는 순간에도 남겨질 엄마를 걱정하고, 그런 세아에게 하늘 여신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너는 햇살 나라의 공주니까 언제든지 엄마에게 올 수 있단다. 햇살은 사라지지 않지."

22쪽


그리고 이 이야기의 끝문장은 이렇습니다.


이것이 모두가 기억해야 할 세아가 진짜 공주가 된 이야기입니다.

24쪽


이로써 '세아가 진짜 공주가 된 이야기'는 단지 재미있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모두가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됩니다. 주인공이 공주가 되는 이야기는 세상에 많고 많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진짜' 공주 이야기는 이렇듯 가려진 곳에 존재하는 슬픔을 감지해 내는 이들의 눈과 귀를 통해 전해집니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야기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망연한 죽음에 관한 소식을 접할 때, 떠나는 사람의 마음과 남겨지는 사람의 눈물을 상상할 때, 한 번씩 떠올려봄직한 질문입니다.


「다정한 스튜어트」에서 '스튜어트'는 '준이'가 이모에게 받은 폴라로이드 사진기의 이름입니다. 스튜어트는 어린 주인공의 시선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준이는 스튜어트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준이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엄마는 준이를 학대하고, 아빠는 그걸 방관합니다. 엄마는 준이의 스튜어트를 벽에 던져 부수고, 비 오는 날 분리수거를 시키고, 흠뻑 젖은 채로 돌아온 준이를 구박하고, 그대로 침대에 눕는 준이를 일으켜 세워 머리를 때립니다. 준이는 고장 난 스튜어트를 집어듭니다.


"왜? 나한테 던지기라도 하게?"
엄마의 말은 뭘 모르는 소리였습니다. 준이는 스튜어트에 눈을 대고 엄마를 보았습니다.
(……)
"그거 고장 났는데 어쩌나."
엄마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서렸습니다.

40쪽


이 장면에서 준이 엄마의 말과 행동은 정말로 끔찍합니다. 준이가 그토록 아끼는 스튜어트를 무기로 쓸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모습이나, 고장 난 사진기로 뭘 어쩌겠냐고 비아냥거리는 모습에서 독자는 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면모를 상상하게 됩니다. 「다정한 스튜어트」의 가장 탁월한 지점은 그 상상을 아주 구체적인 실물로 바꾸어 기록해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입니다. 죽었던 스튜어트에 불이 켜졌습니다. 준이는 몸이 떨렸습니다.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뛰었습니다.
스튜어트는 온 힘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스튜어트는 준이의 심장처럼 뜨거웠습니다. 스튜어트가 천천히 사진을 뱉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스튜어트는 사진 한 장을 바닥에 떨어트렸습니다.
(……)
"이게 엄마예요."

41쪽


이반디의 작품을 읽다 보면 가슴에 정말 깊이 박히는 문장을 이따금 만나게 됩니다. 전 『꼬마 너구리 요요』에서 본 "왜 나는 아니야?"라는 문장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정한 스튜어트」의 "이게 엄마예요."도 그렇습니다. 언뜻 평범한 말처럼 보이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일상어와는 꽤 거리가 있는 조합이죠. 이런 짧고 간결한 조합으로 작품 전체를 날카롭게 관통하는 문장을 빚어내는 것도 놀라운데, 제가 더 놀란 건 바로 다음 장에 나오는 이 작품의 끝문장이었습니다.


다만 그 사진 속 여자를 아무리 미워해도 결국 다시 사랑하게 되니 더없이 슬퍼 보일 뿐이었습니다.

43쪽


사진 한 장을 들여다보는 준이의 마음에 미움과 사랑과 슬픔이 모두 들어있고, 이건 직전에 본 끔찍했던 엄마의 모습에 비추어볼 때 더욱 아프고 먹먹하게 느껴집니다. 부모가 아이를 얼마나 사랑하든 아이는 그보다 더 많이 부모를 사랑한다는 말도 떠오르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장을 윤동주의 「자화상」에 대한 오마주로 읽었는데, 정말로 그런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전 「다정한 스튜어트」를 읽고 이반디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대한 작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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