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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함존중 Feb 01. 2020

못생긴 술을 선택하지 않는 소비자를 욕하지 말라

디자인 is the 선택의 핵심요소


얼마 전 대기업 퇴사한 소위 골드미스라 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났다. 


몇 년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 우리 나이에 연하면 땡큐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제가 덧붙였죠.


내가 주변에 잘 나가는 여자 대표님들 보니까 다 8~9살 연하 만나더라. 두세 살 연하는 쳐 주지도 않더만. 


오랜만에 만나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지만 거짓은 아니다. 나도 페북에 일찌감치 "나는 얼빠요" 고백한 적 있지만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물론 저는 아님은 상대의 재력을 보지 않는다. 내가 가진 다른 요소를 짝짓기 상대에게서 찾는 게 동물로서 인간의 본능이다.


아래 기사가 2007년 판이니 벌써 12년 전에도 이런 가설들이 여러 실험을 통해 증명된 바 있다. 경제 수준과 관련된 젠더 간 짝짓기 이론에 관해 요즘은 더 많은 논문과 실험들이 있지만 아래 기사가 나름 재밌어서 그냥 이걸로 링크해 본다.


http://legacy.h21.hani.co.kr/section-021160000/2007/07/021160000200707260670005.html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 사람들은 최소한을 만족시키는 제품을 찾지 않는다. 옛날옛적 라떼는 말이야 대한민국 보릿고개 시절에야 그저 밥이라도 먹여주면 감사합니다, 쌀밥이 나오면 그날은 특별한 날이 되었겠지만 이제는 잡곡밥이 몸에 좋다는 웰빙 트렌드를 넘어 쌀의 품종, 도정의 정도를 따져 밥을 짓고 술을 빚는다. 그뿐인가? 햇반과 그 아류들이 밥솥 대신 젊은이들의 부엌에 당연한 듯 놓여져 있다. 심지어 쌀과 밥은 끼니를 챙겨주는 기본식도 아니다. 샐러드, 닭가슴살, 찹스테이크 처럼 다양한 식재료들이 한국사람 끼니의 한 켠을 차지한지 오래다. 


술은 더하다. 술이란 게 처음부터 기호식품이다. 쌀과 밥처럼 누구나 먹던 음식이 아니란 말이다. 누군 먹고 누군 안 먹고, 먹는 사람들 중에도 누군 처음처럼을 선호하고 누군 참이슬을 선호하는 더없는 기호 식품이고 취향 제품이다. 취향 제품을 제조할 때는 필수품 보다 훨씬 브랜드와 네임밸류, 외양에 치중해야 한다.  왜 앱등이들이 생기고 매니아 판매에서 삼성이 애플 못 따라잡는가? 이제는 통화 품질만 높다고 폰이 팔리는 그런 시대도, 시장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좀 야박하게 말하면, 기호 식품인 술을 만드는 양조장에서 못생긴 제품을 만들었다면 그건 당신이 소비자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제목이 너무 어그로를 끄는 것 같아 잠깐 고민했다. 그렇지만 넘나 사실인 걸?


주종 및 서브네임은 같은 복숭아 와인이 있다. 처음에는 먼저 알게된 A라는 와인을 팔았는데 '이게 까다롭기로 소문난 트위터리안 들에게 완판될만한 제품인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조금 더 알아보니 트위터에서 입소문 타고 완판된 와인은 다른 생산업체였던 거지. 당연히 A 제품은 재주문되지 못한 채 #술다방 입점리스트에서 낙오되었다. 아멘.


A와인과 비교해서 보여주고 싶은데 아무래도 좋은 걸 알리는 것보다 안 좋은 걸 공개하는 건 조금 미안한 일이라 [복숭아와인] 검색하면 나올테니 구글링해 보시고.

이게 바로 2-3년 전 SNS에서 불티나게 팔려 만든 양을 완판하고 복숭아가 새로 수확되어 술이 되기까지 몇달을 품절 상태로 동결되었던 '금이산 복숭아와인'이다. 


어여쁘지 아니한가?


디자인은 여러 타입이 있고 톤앤매너 역시 천차만별로 가져 갈 수 있다. 얼빠들을 위한 취향저격 그 자체다. 게다가 복숭아로 만들었다. 우리가 "복숭아"라는 과일을 떠올렸을 때 입에 침이 고이며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은가?


단물이 쫘악 입안으로 흘러넘치며 달큰한 국물을 넘겼을 때의 시원함과 촉촉함, 그리고 물복을 씹을 때 그 설탕의 강을 맨발로 걸어, 가는 실처럼 씹히는 섬유질에 감기는 느낌까지, 입가를 타고 입술에 묻은 탐스러운 맛을 먹어본 사람은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라벨이 시커멓고 어두운데 대체 뭔 이미지인지 연상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에 반해 금이산 농원의 과일 와인들은 셰리프체(명조체처럼 끝이 각진 타입의 글꼴)로 구현한 고상하면서도 간결한 명칭과 과일에만 금박을 쳐 포인트를 준 센스까지, 복숭아란 과실이 가진 특유의 달콤하고 물컹하면서 시원한 미감을 라벨을 통해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지 않나? 


복숭아로 만든 와인이라니! 어떤 맛일까? 기대하게 만들지 않는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나온 와인 패키지를 보고 감탄한 게 이 제품이었다. 내가 항상 부르짖는 제품성-가격대-원재료가 전부 일치되는 브랜드 경험(Brand Experience)을 주는 라벨링이거든. 



디자인은 제품 선택의 핵심 요소다.


술다방은 50종 이상의 다양한 전통주(주세법 3조 1의 2에 근거한 개념이지 감성적, 통념적 개념 아님) 제품을 취급하기에 소비자 입장에서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은 장점도 있지만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제품군이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혼란을 가중시키거나 결정 장애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냉장고에 가서 술을 집어 오거나 구경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쇼케이스를 매장 전면에 배치하여 직접 보고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럼 소비자들은 무엇을 집어올까? 


값싼 제품? 도수 낮은 제품? 이미 아는 제품?


일단 쇼케이스 앞에까지 가는 수고로움을 견디는 사람들은 자기 취향에 대해 적극적인 소비자들이다. 친구까지 데려가는 사람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르는 배려돋는 사람이다. 이미 잘 아는 제품을 집어올 거라면 냉장고 앞으로 가지도 않았다. 술다방은 이미 SNS와 네이버 등지에는 비싼 걸로 소문난 곳이라 기본적으로 가성비만 따지는 손님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다. 새로운 경험을 원하고 와인과 맥주가 판치는 힙지로에서 좀 다른 감성을 맛보길 원하고 전통주를 소비하려는 의지가 있거나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메뉴판을 보면서 설명이나 추천을 원하는 사람들이 가격을 꼼꼼히 따지는 반면 스스로 병을 집으러 가는 사람들은 가격을 거의 묻지 않는다. 이러한 소비자들은 자기 취향에 맞는 빛깔 좋고 예쁜 제품을 어김없이 들고 온다. 


판매하는 입장에서 추천할 때도 마찬가지다. 술다방은 다른 전통주점처럼 우리술만 찾거나 전통주를 아는 사람들보다 위에 쓴 것(새로운 경험을 원하고 와인과 맥주가 판치는 힙지로에서 좀 다른 감성을 맛보길 원하고 전통주를 소비하려는 의지가 있거나 의식이 있는 사람들)처럼 전통주 입문자들인 경우가 많아, 우리는 그들에게 '최초 경험이 이후의 구매력을 좌우한다'는 사명감 아래 고객의 취향, 원하는 가격대, 필요한 갬성 등을 최대한 맞춰줄 수 있는 제품을 추천하고자 한다. 잔술로 팔 경우는 다소 예외지만 병술을 추천하는 경우에는 가급적 예쁜 라벨이 부착된 술이었음 하고, 기왕이면 우리 회사에서 기획하고 디자인한 술을 추천한다. 물론 우리 회사가 클라이언트를 고를 때 처음부터 "맛있는 술"을 만들고 지역사회와 동반성장하려는 정직한 양조장만을 엄선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으로 두고.


그렇다면 어떤 디자인이 예쁜 것인가?


디자인의 호불호 혹은 선호도는 제품의 브랜드성과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다. 예쁘다는 건 단순히 화려하거나 고급스럽다거나 정말 모양만 좋은 라벨을 말하는 건 아니다. 이를테면 5천 원에 팔아야 하는 막걸리에 5만 원짜리 제품에서나 볼 법한 패키지를 하는 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게다가 만든 제품을 누구에게, 얼마에, 어디서 팔 것인지를 촘촘하게 고민한 후 디자인과 생산에 들어가야 한다. 그 이후에 도수와 용량, 타게팅한 관능을 맞추는 단계가 후행된다.


제품을 개발하고 생산하기 전, 브랜드 및 제품 전략을 세팅한 후 시설과 설비, 공정을 설계해야 한다. 시설부터 갖춘 당신, 미안하지만 틀렸다.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거다. 제품이라는 알몸은 디자인이라는, 브랜드라는 옷과 이름이 붙여지고 더해진 후에야 비로소 생명체가 되고 생테계적 질서에 편입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좋은 술이란 입에도 좋은 술이어야지 입에만 좋은 술이어서는 곤란하다는 얘기다. 살아서 춤추게 할 수 없다면 그건 창조자의 실책이지 피조물의 실책이 절대 아니다. 


술은 죄가 없다. 


그것을 선택하게 하지 않는 감성적 부재와 트랜드적 시선의 부재에 죄가 있을 뿐이다. 술을 찾는 전국의 수많은 무리들이 사실은 시장 질서와 더불어 이런 미적 문제에 긴밀히 얽혀 있다는 철학이 없다면, 장인의 손을 통해 나온다한들 그 무엇이 아름다울까?




마지막으로  전통주 라벨 디자인을 할 때 필요한  지침서 공유 드립니다.

https://brunch.co.kr/@ssoojeenlee/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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