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 차
아내는 오늘도 누워있다. 나도 옆에 누워있다. 안정기가 되면 같이 산책을 해야겠다. 아빠는 엄마를 모른다. 정확히는 임산부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정보를 찾아보며 공부하고 있지만, 아빠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영역이다 보니 늘 실수하진 않을까 걱정된다. 집에서 쉬기만 하면 더 안 좋을 것 같아서 움직이고 싶으면서도 엄마가 느끼는 임신초기 몸의 변화나 피로감, 아이에 대한 걱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니 가끔 답답한 경우가 있다. 지금은 아이보다 아내를 더 걱정한다. 아마 계속 그럴 것 같다. 아직 현실감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입덧을 시작한다는데, 아직까지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화장실로 뛰어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잘 먹어서 다행이다. 근데 당기는 음식이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내가 모르는 변화가 있는 것 같다. 어떤 음식(feet. 삼겹살)은 생각하면 속이 울렁거린다고 한다. 그리고 굉장히 피곤해한다. 아내가 일찍 잠에 들다 보니 덩달아 일찍 잠든다.
같이 누워있을 때가 아니다. 아빠는 이 시기에 체력을 길러야 한다. 밥 먹듯이 실패하는 다이어트를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아내인 그녀는 수도 없이 실망시켰지만, 엄마인 그녀를 실망시킬 수는 없다. 그 첫 번째로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사실 아버지께 더 연세가 들기 전에 같이 천왕봉에 오르자고 약속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대학병원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나에게 무급휴가 찬스(?)가 생겼다. 덕분에 부모님 휴일에 맞춰 함께 지리산으로 향했다. 오르는 내내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왕복 9시간가량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어머니는 천왕봉까지 못 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더 힘들어하셨다. 두 분 다 지병이 있어서 원래는 중간지점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부모님께서 끝까지 가보자고 하셔서 놀라면서도 걱정이 됐다. 같이 시작했던 등산객들은 다 올라가 버리고 꼴등으로 오른 우리지만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며 천천히 오르시던 부모님을 보면서 나도 이런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도 포기하지 않고 남부럽지 않게 4명의 자식들을 잘 키워준 부모님처럼 말이다.
"엄마는 손주가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딸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은근슬쩍 물어봤는데, 아들이면 어떻고 딸이면 어떻냐며 건강하기만 하면 된다고 부담 갖지 말라는 말에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계속 아내를 찾으면서 같이 올라와서 이 풍경을 봤으면 참 좋았겠다고 하셨다. 아내는 천왕봉까지 올라갈 체력이 안된다며 말을 돌렸는데,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며칠 후 병원에 다녀와서 이번엔 둘이 같이 부모님 집에 방문했다. 우리는 용돈 드리는 척 봉투를 열어보라며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려줬다. 천왕봉에 올라 쿵쾅쿵쾅 울려대던 내 심장소리만큼이나 우렁찬 소리였다. 부담 갖지 말라던 부모님의 환한 미소도 함께 기억해야겠다.
'난황'이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다. 처음인 것투성이다. 다이아몬드 반지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진짜 동그랗게 반지 모양이 보여서 너무 놀랐다. 난황은 아기에게 영양을 공급해 주는 곳이라고 한다. 저 조그마한 게 우리 아이라니! 너무 놀랍고 귀엽다. 그리고 저 조그마한 아이한테서 심장소리가 들리다니 더 놀랍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의학 기술이라니 더 더 놀랍다. 아내가 미열이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찾아보니 임산부는 기초 체온이 상승하는 게 일반적인 것 같다. 열이 너무 높으면 태아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물수건도 올리고 가습기도 켰다. 처음인 것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