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메이카
[에필로그]
"한교수님 이 시죠
여기는 자메이카 '킹스턴'인데요
저는 황현우라고 합니다
지금 국제 전화입니다
제가 이틀 후 인천공항으로 입국 예정인데
어머님 일로 만나 뵙고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전화드리게 되었습니다
황당하시겠지만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말씀 드리 기로하고
제가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거라 모든 게 낯설고 서툰지라 시간이 허락되시면 공항 입국장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항공기 도착 편과 시간은 따로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니,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중을 나오라는 얘깁니까
뜬금없는 당황스럽고 일방적인 요구로 들리는데
당신은, 또 어머니는 누구신지 저는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런 황당한 요구는 들어드릴 수가 없겠네요
납득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설명해 주시던가요"
"아, 교수님 전화번호는 어머님이 알려주셨습니다
세월이 흘렀지만 번호를 바꾸지 않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13년 전 인천 공항 입국장에서 강릉 가는 시외버스 막차를 어떤 여성분과 함께 타신 기억이 있으신지요
어머님의 성함이 '안채령'이라고 하면 혹시 기억이 나실지 모른다고 하시던데요
기억이 나시는지요ᆢ"
순간ᆢ 안채령, 안채령, 강릉 가는 막차, 어느 해 가을날 무모했던 여자가 생각났다
10년이 훨씬 지난 일이지만 생생하게 생각나는 기억 하나가 순간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아, 기억이 납니다만 어쩐 일로 어머님이 저를 찾으시는지요
입국 일정을 알려주시면 제가 공항으로 황형을 마중하러 나가겠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13년 전 가을 아레나 콘텐츠포럼과
뉴욕 세계 어학회 세미나를 마치고 귀국하는 입국장에서 인천 가는 리무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앞에 어느 여성분이 커다란 여행 가방을 가지고 서 있었다
잠시 후 여성분이 얼굴이
홍조를 띤 채 뒤에 있는 내게 힘들게 부탁을 해 왔다
"저 선생님, 기내식이 안 좋았는지 급한 볼일이 있는데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제가방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 급해서 초면에 염치없이 부탁드립니다
금방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그리고 내 대답도 무시한 채 입국장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달려 들어갔다
그리나 오분도 안 돼 리무진 버스가 들어왔고 막차는 손님을 싣고 무정하게 떠나가 버렸다
차마 맡긴 가방을 두고 나만 탑승하고 갈 처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잠시 후 급히 그녀가 뛰어 왔지만 이미 막차는 떠나가고 나와 가방만 덩그러니 주차장에 남아 있었다
"어머, 죄송해서 어떡해요
저 때문에 선생님마저 막차를 놓치셨네요 이 일을 어찌하면 좋아요"
늦은 시간이라 버스는 전구간 모두 끊어진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옆 구간에 강릉 가는 막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여자분이 급히 제안을 해왔다
"선생님 막차는 이 차하나 남았는데 같이 타시겠어요
네?ᆢ 강릉 가는 차를요?
네, 함께 타면 어떠세요"
우린 얼떨결에 강릉 가는 막차에 함께 타게 됐다
우리가 그렇게 강릉 시외터미널에 도착하자 시간이 자정이 넘어서고 있었다
어느새 우리는 남이 아닌 함께가 되어 있었다
가는 동안 우리는 눈을 붙이지 못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젊어서 자메이카로 이주해 의류업에 종사하는 사업가 였고
나는 아랍어를 가르치는 모 대학의 전임교수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야기 와 자기 분야의 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우리는 뜻밖의 2박 3일을 동해에서 함께했고 그녀는 찻집을 하는 언니가 산다는 동해市로,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한 편의 드라마를 찍은듯한 꿈같은 여정이었다
그때 그여자의 아들이 자메이카에서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왜? 무슨 일로 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 까맣게 잊고 있는 나를 찾아오는 것일까
왠지 불안하기도 궁금하기도 했다
지난 그때 일들이 무슨 화근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오만가지 추측과 상상으로 남은 이틀이 천년 같았다
결국 그의 입국 날이 다가왔다
황현우, 그를 만나러 SUV Jeep '체로키'를 끌고 나는 그를 마중하러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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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메이카 2
"한국을 방문할 당시 그때 어머니는 혈액암 말기 판정을 받고 마지막으로 모국을 방문하는 길이었습니다
공항에서 교수님을 만나고 일주일 만에 킹스턴으로 돌아왔을 때 공항에 대기하던 엠블란스에 실려 바로 병원에 입원하셨지요
그렇게 2년을 투병하시고 놀랍게도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하셨습니다
그때 강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선생님과의 조우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13년을 더 잘 살아오신 겁니다"
"그런데 지난달 갑자기 암이 재발하고 이미 전신으로 전이되어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지경으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는 이제 예전처럼 살고 싶다는 강한 의지도 없으시고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싶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 제게 과제 하나를 주셨습니다
교수님을 자기 대신 뵙고 와 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얀 조개 목걸이 하나를 주시며 선생님께 전달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목걸이는 화진포 해수욕장 근처 선물용품 점포에서 사서 걸어준 싸고 흔한 조개껍질 모양의 것이었는데
그동안 애지중지 간직해 온 물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만남이 암을 이겨낸 원동력이었던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내가 잊고 있었던 그녀는 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메이카 까지 가지는 못합니다
까맣게 잊고 살았던 먼 가을날의 이야기가 그저 아득할 뿐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생명의 원천이 되어준 그날의 만남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채령의 남편은 자메이카 정부의 요직인 상원의원으로 정치에 몸담은 거물이었습니다
평생을 정치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부부가 따로 살고 있다시피 늘 채령은 혼자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의류 사업을 시작해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고도 했습니다
지금은 아들이 사업을
이어받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한영수 교수는 난감할 뿐 어떤 위로의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 황현우가 킹스턴으로 돌아간 이틀 후 그가 전해준 그녀의 편지 한 장을 읽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
선생님은 내가 세상에서 받은 마지막 축복이고 선물이셨습니다
그날 선생님과 함께했던 2박 3일이 제겐 생명을 살려준 오아시스였답니다
더 간곡히 함께 있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사생활도 있으시니 더 이상 붙잡지를 못했습니다
사실 동해시에 찻집 하는 언니집에 간다고 한 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그 길로 저는 동해안을 따라 포항, 통영, 거제, 여수를 거쳐 나 홀로 여행을 했습니다
여행 내내 선생님의 따듯한 숨결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메이카로 돌아와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암투병을 이겨냈습니다
그렇게 13년을 더 살았지요
선생님과 함께 했던 밀월여행 덕분입니다
저는 행복했던 기억을 가지고 먼저 떠납니다
선생님께는 의미 없는 조우였을지도 모르는데 저 혼자 호들갑을 떨어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부디 혜량해 주실 것으로 믿으며 아들에게 그동안 제가 품고 살았던 선생님의 조개 목걸이를 반납하려 합니다
죽으면 버려질 물건이지만 내겐 너무 소중해서 돌려드립니다
선생님께서 마음 가는 대로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선생님 사시는 동안 건강하시고 무탈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안녕히 계십시요ᆢ안 채령 올림"
아, 힘들다ᆢ
'자메이카'로 날아가 그동안 무심히 잊고 살았던 내가 죄송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송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가 지은 업보가 크구나
1개월 남았다는 시한부 '채령'님
부디 잘 가시오
영면하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난다면 내가
사죄하리다
자메이카여 안녕!
어제 채령이 떠났다는 소식이 왔다
오늘은 그녀와 13년 전에 왔던 물치항에 왔다
그때처럼 바람이 거세게 분다
포구는 그대로다
나만 홀로 남았다
4년이 지난 후 정부에서 자메이카 경제 협력단으로
각계의 인사 사절단을 모집한다는 전문을 행정실에서 봤다
요행히 나는 그들의 일원으로 자메이카를 방문하게 됐다
당연히 황현우를 만나서 채령의 무덤에 가서 헌화했다
묘비에는 "여한을 남기고 잠들다" 1964~2023 '아츠코' 이라고 적혀 있었다
현우는 지난 일을 조심스레 꺼냈다
어머니께서 제가 한국 방문 시 선생님과 찍은 사진을 보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하나도 안 변하셨다고ᆢ
#시놉시스[synopsis]
영화나 드라마의 줄거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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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기 차서 외로운 저녁
밤 자전거 하나 공원길을 산책하고
사람들은 말없이 걷는다
깊어가는 밤하늘로
비행기 한대 섬 쪽으로 날아가고
나는 공원 벤치에 앉아 할 일없이 음악을 듣는다
하늘엔 별도 없고 달도 없다
어둠이 장막을 드리운 듯 깜깜하다
돌아가야 하는데
집 없는 사람처럼 그저 앉아있다
바이올린 소리가 서글피 우는 소리를 낸다
밤공기가 차다
찬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한로(寒露)가 코 앞이다
절기는 여지없이 제철 따라오고 사람은 절기 따라가고
오고 감이 따로 없는 계절이다
아무도 없어 좋다
다들 산책을 마치고 연속극 보러 들어갔나 보다
전광판에 표시된 습기는 58%
나만 습기는 없다
부서지며 바스락 거리는 소리뿐
달그락 거리는 소리뿐
가을밤 깊어가는 소리뿐
늦은 밤
찻집도 문 닫고
24시간 CU편의점에서 원플러스 원 하는 원두 한잔 뽑아 들고 귀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