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여가 눈 깜짝할 사이로 어느 틈에 훌쩍 지나갔다
올여름은 폭염이나 열대야가 길지 않아서 찌는듯한 무더위 없이 지나가서 거저먹었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수월하게 지나갔다
추위보다 더위를 못 참는 체질이라 얼른 겨울이 오길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지 모른다
벗어도 벗어도 흐르는 땀
베갯잇이 젖고 시트 타월이 눅눅하고, 벗고 벗어도 그다음은 더 이상 벗을 것이 없을 때는 난감해질 수 밖에 없다
살 껍데기까지 벗을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열대야 때문에 작년 여름에 곤욕을 치른 기억이 아직도 트라우마처럼 생생한데
다행스럽게 더운 날이 8월 초 보름가량 난리를 부리다가 입추, 말복을 지나면서 기세가 갑자기 꺾여 버렸다
오늘이 처서다
모기 입이 삐뚜러 진다는 절기
동해안 해수욕장도 이미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했단다
천고마비의 독서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지만 몇 주일째 도서관 열람실을 찾아가지 못했다
오후 해기 기우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시간이란 마치 아이스크림 핥듯 그렇듯 달콤하기만 한데
그냥저냥 도서관 앞을 오고 가며 눈길만 준채 일부러 지나쳐 버리곤 했다
내겐 서고 800 코너 시, 평론, 소설집이 있는 공간 813.7 칸은 문제의 소설 '당신의 아주 먼 섬'이 꽂혀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안 가본 새에 173쪽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마냥 궁금하기도 했지만 왠지 누군가가 나를 마치 숨어서 지켜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서뿔리 그곳으로 냉큼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동안 '쿠알라룸프르' 화상들이 주최하는 아시아 중견화가 초대전 준비로 분주하기도 했지만
도서관 쪽으로 향한 궁금증을 동반한 나의 촉수는 여념 없이 분주하게 늘 움직이고 있었다
그대의 먼 섬에 대해서는 솔직히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다
자꾸 그 800번 코너가 뇌리에서 빙빙 돌며 쉽사리 지워지질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라 표현하는 것이 사실 솔직한 심경이었다
내일은 어떻게 하든 짬을 내어 도서관에 부리나케 달려가 볼 참이다
도대체 과연 이들에게 뭔 사단이 났는지,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 책갈피로 들어가서 빨리 알아봐야겠다는 조바심과
조급한 마음이 앞서 도무지 참을 수없는 상태에 이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ᆢ
늦은 오후 잰걸음으로 달려가 열람실 서고 800 코너에 찾아 들었다
다행히 소설은 대여가 되지 않아서 서고에 묵묵히 꽂힌 채 그 자리애 존재했다
행여라도 어느 누가 대여라도 해 갔으면 어쩔까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떨리는 손으로 '정미경' 작가의 '아주 먼 섬'을 꺼내 173쪽을 펼쳤다
역시나 책갈피에는 새로운 메모가 다시 꽂혀 있었다
"선생님 '창이'공항에서 점심도 거른 채 해 질 무렵까지 기다렸는데 결국 안 오셨어요."
""너무 하십니다"
"이젠 제가 선생님 계신 서울로 가야겠어요"
"18일 오후 10시 30분 인천공항 도착할 예정입니다
나고야발 아시아나로 갈 거예요. 입국장에서 뵈었으면 합니다"
메모지에는 그렇게 또다른 새로운 전언이 새겨져 있었다
내가 남의 사생활에 몰래 너무 끼어들고 마는구나
후회했지만 도대체 너무 흥미롭고 궁금해서 이들의 행보에서 눈을 감출 수가 없었다
도서관을 나오자 밖으로는 예보에 없던 늦여름 소낙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어둠이 밀려오고 있었다
거센 빗줄기에 차마 문밖으로 나서지 못하고 빗속에 망연히 관악산 쪽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붉은 등을 깜박이며 봉우리를 넘어 영종도 쪽으로 여객기 한대가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비는 끝일 줄을 모르고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그대가 떠나간 후
아직도 잊지 못하며 삽니다
바람은 늘 내게로 불어와도
그대의 향기는 없네요
바람이 늘 그대 쪽으로만 불어서
내 향기가 닿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랑은 바람 같아서 늘
떠돌아다니지요
내가 넘어가는 언덕 저편에
당신이 보였으면 좋겠어요
바람으로라도 와줬으면 좋겠어요
그럼 나는
또 한 계절 그대를 품고
살아갈 수 있겠지요
바람 같은 그대를 보러
오늘도 저 언덕 너머로 갑니다
바람되어 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