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얘기를 몇 번째 하는 거지
드디어 마지막(이라고 믿고 싶은) 이사를 마치고 3주 정도 지났다. 아직 100% 세팅된 건 아니어도, 이전보다 더 여유로운 마음과 그간 쌓인 경험치로 꽤 행복하게 새 집에서 지내는 중이다. 물론 그 사이에 모든 것이 순탄하게 지나간 건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곳은 베트남이니까.
우리가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했던 이 집도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첫 월세 계약 때는 몰랐었는데 원래 베트남에서는 렌트 계약서에 달러로 월세를 명기하는 게 불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서는 일종의 관행처럼 달러로 계약서를 쓰고, 매달 달러로 월세를 주거나 (심지어 주인이 매달 받으러 오기도 한다) 월세 송금일 기준 매매 환율로 계산해서 동화로 주는 것이다. 내가 하루 만에 뛰쳐나온 집은 주인이 쿨하게 동화로 고정을 해줬었는데 이번 집은 달러 고정 아니면 지금보다 꽤 높은 환율로 동화를 고정하는 것 말고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월세 900불짜리 집이 동화로 고정하니까 930불이 되는 기적.... 분명 미국을 전쟁에서 이긴 나라인데 왜 이렇게 달러를 선호하는 것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어쩔 수 없는 신흥국의 입장인가 싶어서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해졌다. 베트남인 집주인마저도 앞으로 달러 환율이 더 오를 거라 생각해서 달러로 월세를 받고 싶어 하는 이 상황. 우리는 베트남 동화로 월급을 받으니까 동화로 월세를 고정하려다가 한국에서 잔뜩 바꿔 온 달러가 있음을 깨닫고 그냥 매달 다른 환율로 월세를 송금하기로 했다.
다행히 두 번째 집에서 나오는 것과 지금 집으로 짐을 옮기는 건 매우 순조로웠다. 애초에 두 번째 집에서 짐을 다 풀었던 게 아니라서 그냥 고스란히 또 옮기는.... 이번 집은 두 번째 집과 달리 주방이 넓어서 아주머니들도 정리를 잘 해주셨고 새 집이라 특별히 청소를 더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였다면 3-4시간이면 끝날 이사가 여기서는 하루 종일 걸린다. 그게 지하주차장 높이가 높지 않아서 탑차가 들어가지 못하고, 아파트에 사다리차를 대지 못하니 엘리베이터로 사람이(!) 옮겨야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해외이사 패킹하고 컨테이너에 싣는 것도 이렇게 오래 안 걸리는데 여기서는 정말 문자 그대로 '하루 종일' 걸린다.
이 집은 안방에 붙박이장이 없어서 옷을 수납할 공간이 없었다. 옷장을 사야 하나 고민하다가 저번에 WisePass 소개해 준 남편 선배분이 인테리어 컨설팅하는 친구를 소개해줘서 우리는 옷장을 커스텀하기로 했다. 원하는 사이즈와 디자인, 소재로 옷장을 맞출 수 있는 것이다. 남의 집에 왜 옷장을 맞추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필요하면 돈을 쓴다'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나서는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사실 옷장 자재가 엄청 좋은 것도 아니라서 사는 거랑 별로 차이 없었다. 나중에 나갈 때 주인한테 팔아도 되고.)
옷장을 맞추면서 책상과 책장도 같이 주문했다. 원래 갖고 있던 책상과 책장은 내가 대학생 때부터 쓰던 거고 그때부터 이사를 엄청나게 다녀서 이래저래 부실하기도 했던 터라 어차피 살 때가 됐다는 생각이었다. 책상과 책장도 엄청나게 좋은 재질은 아니고 적당한 걸로 했다. 뭔가 우리의 살림살이 시즌2로 돌입한 느낌?
이번에 가구 몇 개 주문받으면서 든 생각은, 집 전체 인테리어를 마친 사람은 정말 존경할만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베트남에서 인테리어를 마쳤다면 그 사람은 모든 것을 해탈한 성자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한국에서도 인테리어 하면 매번 약속 잡고, 내가 선택한 샘플대로 시공되는지 보고, 마지막에 하자 없는지 다 챙겨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듣기로 어디선가 문제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있다고. 나도 신혼집 도배가 제대로 안 돼서 다 뜯고 다시 했는데도 문제가 생겨서 포기하고 그냥 살았던 기억이 있다. 내 집 아니니까 할 수 있었던 결정인데 내 집이었다면 정말.. (말잇못)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여기에 덧붙여 상상 초월하는 일들이 또 벌어진다.
일단 사람들이 시간 맞춰 오리라는 보장이 없다. 이건 베트남에 살면서 가장 먼저 포기해야 할 부분인데, 애초에 정확한 시간 약속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2시에서 4시 사이, 이런 식으로 약속을 잡는다. 그럼 나는 꼬박 그 시간을 다 기다려야 하는 것. 안오는 줄 알고 나갔다가 갑자기 전화와서 지금 집 앞이라고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아... 혈압...)
그리고 나의 저 옷장은 100% 우리 집에서 모두 조립된 제품이다. 옷장이 배달된다기에 기다렸는데 사람들이 들고 온 건 나무 판 여러 개랑 못, 전동 드릴... 결국 내 안방에서 다시 위치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드릴로 구멍 내서 못을 박는다. (먼지... 톱밥...) 애초에 그들은 약속한 시간보다 거의 1시간을 늦었지만 2시간 동안 옷장을 완성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왜냐하면 오다가 문 하나는 스크래치가 났고, 손잡이를 깜빡하고 안 들고 왔기 때문이다. (....) 그래서 다음 날 다시 와서 문을 마저 달고 손잡이를 다는데 그것도 똑같이 약속시간보다 늦었고, 2시간 걸렸다. 와중에 서랍 손잡이 하나는 치수를 잘못 쟀는지 안쪽에 나사보다 드릴 구멍을 더 많이 냈다. 좋은 자재로 옷장 만들었으면 아까워서 큰일 날 뻔... 컴플레인했다가는 언제 내가 옷장을 쓸 수 있을지 몰라서 그냥 대충 쓰겠다고 하고 돌려보냈다.
그다음 책상은 조립해서 가져오라고 했는데 책상 길이가 너무 길어서 방에 넣을 수가 없었다. 내가 애초에 그 부분 계산해보라고 분명 얘기했거늘... 정작 책상 납품한 제조업자는 책상 놓기만 하고 사라져 버려서 앞서 말한 그 컨설팅 업체 친구들이 다시 책상다리를 해체해서 방에 넣고 다시 조립해줬다. (....)
책장은 아직도 안 왔는데 이제는 기다리는 건 포기했고, 무사히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직도 계속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더 나은 마음가짐으로 새 보금자리에서 나름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메이드를 소개받아서 나는 요리를 포함한 가사노동에서 거의 손을 뗐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망설이지 않는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베트남어 수업도 빠지지 않았고, 다음 주나 다다음 주부터는 수영 수업도 들어볼 예정이다. 새 집에서의 내 일상을 사진 몇 장으로 간단히 소개하며 이번 글도 마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