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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Jan 02. 2019

서른 살 넘어 이제야 처음 해 본 것들

이렇게 경험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2018년이 지났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힘들고 황당하고 어이없게 느껴지는 일들도 많았지만 내게 의미 있었던 건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간 한국에서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하지 않았던 일들인데 여기에서 환경이 받쳐주기도 하고 또는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해서 시작한 일들에 꽤 재미를 느끼고 있다. 서른 살 넘어서 삶이 또다시 확장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내가 여기 와서 시작한 일들에 대해 적어보려고 한다. 


수영


저녁 수영 너무 좋다

요즘 내가 가장 재미를 느끼는 활동이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수영을 아예 할 줄 몰랐다. 튜브가 없으면 물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하고 스노클링 하러 가도 구명조끼가 없으면 무서워서 얼굴을 담그지 못했다. 아주 어릴 때 수영장에서 강습을 받아본 적 있지만 물에 뜨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런데 얼굴을 아예 물에 담가야 한다니.... 


운동을 해야겠다 생각이 든 순간 남편과 같이 수영 강습을 받아보기로 했다. 아파트에 수영장이 있으니 선생님이 와 주시고 수영을 가르쳐 주는 방식이다. 첫 수업 때는 '저 수영 아예 못해요, 물도 무서워요'라고 말하고 킥판까지 챙겨갔다. 물에 들어가서 숨을 내뱉는 것부터 연습하는데 물안경을 쓰고 있는데도 눈을 뜨기 힘들고 귀가 콱 막히는 느낌이 무서웠다. 초반에는 킥판 없이 물에 뜨는 것도 겁나고 분명 내 키보다 낮은 높이인데 발이 닿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쯤 물에서 허우적대고 나니까 이제는 킥판 없이 물에 뜨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물론 '수영을 할 줄 안다'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적당히 물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놀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얼마 전에는 뒤로 누워서 (배영 자세) 발차기를 했는데 꽤 평온해서 나 스스로 놀랐다. 이제는 구명조끼 없이 스노클링하고 멋진 호텔 수영장에서 빈둥거릴 수 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물론 정확한 영법을 구사하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뭔가 물에서 재미를 느끼고 나니까 일주일에 다섯 번 넘게 수영장에 갔던 것 같다. 수영장이 멀거나 날씨가 추운 것도 아니어서 더 좋은 듯. 


요리


한국 다녀와서 재료를 공수한 다음 부쩍 자신감 상승, 오른쪽은 그냥 열심히 만들어 본 샌드위치

또 고백하자면 나는 요리하는 걸 정말 즐기지 않는다. 한국에 있을 때는 남편이 요리를 하고 내가 설거지와 청소를 주로 했는데 여기서는 상대적으로 내 시간이 많다 보니 요리를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처음에는 반찬 배달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것도 복불복일 때가 많고 100% 내 입맛에 맞지도 않았다. 그리고 우리 집에 오는 메이드 아주머니는 요리를 잘해주긴 하지만 베트남 요리라 초반에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요리를 얼마나 싫어했냐면 장 보러 가는 것, 메뉴 고르는 것, 아니 무슨 요리를 해 달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스트레스라고 남편한테 털어놓을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 


중간에 잠깐 한국에 갔을 때 마트에서 비장의 무기가 될 만한 아이템을 잔뜩 샀었다. 여기서는 구하기 힘든 파 기름이라든지 표고버섯 슬라이스라든지, 갈릭 파우더라든지... 그 후에 간단한 재료를 사다가 책 보면서 요리를 시작했는데 남편이 좋은 반응을 보여준 다음부터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 요리를 하고 있다. 이래서 성공 경험이 중요하다고 말을 하나보다. 한두 번 괜찮은 결과물을 낸 다음부터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도 하고 요리에 대한 감이 늘어서 어떤 재료와 어떤 양념이 잘 어울릴지 생각하기도 한다. 


대학생 때부터 독립해 살기는 했지만 서울은 요리를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도시였다. 1-2인 가구면 오히려 사 먹는 게 경제적이니... 사실 지금 요리를 하는 것도 경제적인 이유라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맛'을 느끼기 위한 목적이 크다. 한식당도 엄청나게 많지만 집에서 편하게 앉아 밥 먹는 게 요즘 참 기분이 좋다. 


베트남어 
나름 열심히 공부한 흔적, 짧은 베트남어로 문자 보냈는데 영어로 답변 주시는 베트남분...

한국에서 지냈으면 배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베트남어. 여기 오기 전에 스페인 여행을 가겠다고 2달 정도 스페인어를 배우긴 했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영어 외의 다른 언어를 배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여기서 살아야 하니까, 영어로는 내가 얻는 정보의 양도 한정적이고 하다못해 마트를 가도 물건 사는 데 지장이 있으니 오자마자 바로 베트남어 공부를 시작했다. 신기한 건 베트남어 배우고 3달 정도 지나고 나니까 표지판 글씨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였다. 다행인 건 베트남어는 단어를 풀어쓰는 경향이 있어서 그 메인이 되는 단어 몇 개만 알아도 대충 유추를 할 수 있다. 


베트남어 성조를 배워봅시다


물론 아직도 듣고 말하는 게 많이 부족하기는 하다. 베트남어의 6 성조는 정말... 넘기 힘든 관문이다. 특히 전화 오면 제일 먼저 하는 말이 (베트남어로) '나 외국인이야, 이해 못했는데 영어로 말해줘'라는 게 함정. 제일 처음 익힌 베트남어가 '나는 베트남어를 모릅니다'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인가. 심지어 내가 용기를 내서 베트남어로 문자를 보냈는데 영어로 답변해 주는 사람도 있다. (이 분은 전화했더니 유창한 한국어로 응대해 주셔서 엄청 놀람... 3개 국어를 하시는 건가요) 


지금은 생존 베트남어 몇 마디를 듣고 말하는 정도, 아파트 공지나 광고 문자는 대략 눈치로 해석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가끔 택시를 타면 주소를 베트남어로 말하기도 하고 배달 전화 오면 우리 집 호수를 얘기하면서 올라오라고 말할 수 있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베트남어 짧게 배워봐야 현지 사람들이 못 알아듣는다, 요즘 사람들 다 영어 할 줄 안다, 나중에 필요가 없다고도 하는데 영어로 치면 아이엠 어 보이 수준의 문장이라도 읽고 말할 줄 알게 된 후로 확실히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달라졌다. 대충 더듬더듬 성조 틀린 채로 말해도 사람들이 이해해 주기도 하고. 내가 외국인인데 100% 정확한 언어를 구사할 필요는 없지 않나요... 


여하튼 나는 여기 베트남에 살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배워둔 게 내 삶에 도움이 됐다. 참고로 내 남편은 내가 택시 기사에게 '유턴해야 돼'라거나 카드 비밀번호를 베트남어로 불러주면 그 때마다 놀란다고 했다. 그리고 올해는 남편도 베트남어를 시작하기로 결심! 



올해는 베트남에서 뭘 시작해 볼까. 조금씩 내가 할 줄 아는 것들의 범위를 넓히는 이 과정이 참 재밌다. '나는 원래 못해'라고 지레 포기했던 것도 이런 환경에 놓이니까 하나둘씩 해 볼 수 있고. 올해는 좀 더 용기를 내서 더 신나는 일들을 시작해 봐야겠다. 평생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그 어딘가에서 재미를 느끼게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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