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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May 27. 2019

베트남에서 베트남어 못해도 살 수 있나요?

배우면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베트남에 온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 봤을 때 충격과 공포

처음에 한 글자도 못 읽는 까막눈이었는데 지금은 대충 성조가 없어도 간단한 글은 읽을 수 있고 아주 짧은 문장은 말할 수 있다. 사실 나는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베트남 사람을 긴 시간 만날 일이 거의 없어서 정말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수준이다. 


베트남어 못해도 호치민에서는 살 수 있다

호치민에서는 베트남어 못해도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거주한다면 굳이 베트남어 말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다. 특히 7군 푸미흥 (호치민의 한인타운) 지역에 가면 직원들도 다 한국어를 하고, 한국인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며 병원, 미용실, 마트, 부동산 등등 없는 게 없기 때문이다. (하긴 미국 LA 한인타운에서도 영어 못 해도 살 수 있다고 하던데...) 2군 타오디엔/안푸 지역도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대부분 영어로 대화할 수 있다. 아파트에는 리셉션 직원들이 다들 영어를 잘하고, 부동산 계약서도 영문 버전 같이 갖다준다. 식당이나 카페, 마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여기 사는 외국인들 보면 영어만 할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영어를 더 공부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다. 베트남어는 베트남에서만 쓸 수 있지만 영어는 전 세계 어디를 가나 쓸 수 있을테니. 


그것도 틀린 얘기는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호치민은 젊고 역동적인 도시라 그런지 그만큼 영어 구사율도 체감상 높게 느껴진다. 듣기로는 영어 교육에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이고, 게다가 요즘은 유튜브 컨텐츠들이 워낙 잘 되어 있어서 해외 나가 본 적 없어도 영어 잘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다르다고 느꼈던 건 설령 틀린 영어를 쓴다고 해도 그걸 어색해 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본인이 영어를 배우는 상태면 그걸 끊임없이 써보고 싶어하는 듯 했다. 


궁금해서 찾아 본 아시아 내 영어 능숙도. 한국 바로 다음이 베트남이다.

> 그래프 출처


예전에 그랩 바이크에 타서 가는데 내 이름이 영어이름으로 돼 있으니 이것저것 물어보는 드라이버가 있었다. 자기 지금 영어 배우는 중이라며, 넌 어느 나라 사람이고 몇 살이고 어디가냐는 질문 등등. 내가 영어를 원어민만큼 하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질문에는 대답해 줄 수 있어서 최선을 다해(?!) 바이크 뒤에 앉아 큰 소리로 답변해 줬다. 


못리까페쓰어다

또 얼마 전에는 위워크 근처에 로컬 카페에 가서 자신있게 커피를 주문한다고 "cho em một ly cà phê sữa đá" (카페 쓰어다 한 잔 주세요) 라고 했는데 주문 받는 아주머니께서 바로 "Which size?"라고 하셨다. (....) 그 다음 바로 영어로 말씀드렸다는... 


경험의 확장을 위해 언어가 필요하다
한창 때 열심히 하던 공부. 요즘은 이만큼 열심히는 안해서 뜨끔...

보통 한국인들은 기본적인 영어만 할 줄 알면 베트남에서 큰 무리 없이 지낼 수 있다. 하지만 베트남에 살고 있기 때문에 기본적인 베트남어는 할 줄 아는게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건 물론 내 세계도 함께 넓어진다. 


예를 들어 내가 베트남에서 항상 영어 메뉴판이 있는 식당에 가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곳을 자유자재로 갈 수 있다는 건 큰 차이다.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반미 아주머니에게 '고수 빼주시고 계란은 하나 더 넣어주세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것, 택시타고 기사 아저씨에게 내가 가고 싶은 곳 주소를 말하고 어떤 길로 가달라 얘기하는 것, 대단하지는 않지만 몇 마디라도 할 줄 아는게 베트남 생활을 더 편하고 즐겁게 만든다. 


다행인 건 베트남어는 알파벳 기반이라 글자를 익히기가 쉽다는 것, 그리고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외국인'에 대해 관대한 편이라 내가 엉망진창으로 얘기해도 대부분 잘 이해해준다. 내가 성조 다 틀린 글자로 메시지 보내거나, 말도 안되는 억양으로 얘기해도 아직까지 나는 싸늘한 반응보다 '니가 말하고 싶은게 이거야? 아님 저거?'라는 식으로 들어주려고 했던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내가 들을 때도 나 외국인이라 천천히 얘기해 줘, 하면 간단한 문장으로 얘기해주려는 사람들도 많았다. 




성인이 된 다음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도 나는 상대방을 뭐라고 불러야 할 지 (* 베트남에서는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이 서로간의 관계에 따라 정해진다.) 헷갈리거나 자주 안 쓰는 표현이면 문장이 아니라 단어 나열하는 수준으로 얘기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매우 천천히 내 눈과 귀에 들어오는 단어가 늘어가는 걸 느낄 때 아주 뿌듯하고 재미를 느낀다. 

아쉬운 건 아직 여기서 베트남어로 대화할 친구는 없다는 것... 베트남인 친구들을 몇 만나기는 했는데 다들 영어로 대화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한국어 / 영어 / 베트남어가 섞인 혼종 언어가 나올 때도 있다. (본격 0개 국어)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로컬 식당에 가 봐야겠다. 

Em ơi, cho tôi một cơm tấm sườ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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