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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음 Apr 17. 2024

달은 어느 쪽으로 뜰까?

스승은 찾는 이들을 도우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가리킨다. 하지만 많은 이가 스승의 가리킴을 잘못 받아들인다. 가리킴의 본질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 가리킴의 본질을 이야기에 담아본다.


여기는 공전하는 달을 가진 KOI-4878.01 행성이다. 

이 행성에는 달을 보면 진리를 본다는 믿음이 있다.

*

스승이 앉아 있고 제자 둘이 스승을 마주하고 앉아 있다. 제자 농사와 사냥 사이로 둥근달이 환하게 떠 있다. 스승은 제자 농사에게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달을 보라고 하며 달을 가리킨다. 제자 농사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달을 본다. 스승은 다른 제자 사냥에게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달을 보라고 하며 달을 가리킨다. 제자 사냥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달을 본다. 스승의 도움으로 두 제자는 달을 보았다.

*

스승이 자리를 비웠을 때 두 제자 농사와 사냥이 싸운다. 

“오른쪽으로 보는 것이 스승님이 말한 진리네.” 

“무슨 소리! 왼쪽으로 보는 것이 스승님이 말한 진리네.” 

“허 참, 내가 직접 들었네. 바로 앞에서 직접 들었다니까! 자네도 옆에서 같이 듣지 않았나?”

“허 참, 내가 들은 것은 왼쪽으로 돌리라는 말씀이었네. 내가 직접 들었네. 바로 앞에서 이 두 귀로 똑똑히!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달을 봤다니까! 자네야말로 왼쪽으로 돌리라는 말을 같이 듣지 않았나! 이 친구 인제 보니 거짓말까지 하는군.” 

“뭐, 거짓말? 이 친구, 신실한 친구로 봤는데 인제 보니 친구를 모함하는 아주 형편없는 놈이네. 앞으로 상종 못 하겠군!” 

방문 밖에서 스승은 제자들이 싸우는 소리를 고스란히 듣고 빙그레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젓는다.

*

다음 날, 스승과 두 제자가 다시 마주하고 앉았다. 모두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다. 이번에 스승은 제자들에게 자리를 바꿔 앉으라고 한다. 제자들이 자리를 바꿔 앉자, 스승은 제자 사냥에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달을 보라고 말한다. 

사냥은 갑자기 화가 치민다. 옆에 있는 농사의 눈치가 보이면서 스승이 제자 농사 편을 드는 것 같다. 그리고 일관성 없이 말을 바꾸는 스승에 화가 난다.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고 화를 낸다. 

“왜 어제는 왼쪽으로 보라 하셔놓고 오늘은 오른쪽으로 보라고 하십니까? 어떻게 어제와 다르게 말씀하시는지요! 혹시, 달이 어디 있는지 모르시는 건 아닌가요? 어제 분명 달을 보았고 달이란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거늘, 어떻게 보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냥은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스승을 떠나버렸다.

“이 스승은 달이 어디 있는지 몰라. 일관성이 없어. 일관성이! 한 번 달을 보게 돼서 이번에는 진짜인가 했더니 그냥 우연이었어. 또 가짜를 만났군. 도대체 몇 번째야. 이런 가짜 말고 진정한 스승을 찾아야 하는데.”

사냥은 일관성 있는 스승을 찾아 다시 길을 나선다.

*

얼마 뒤 사냥은 늘 왼쪽만 보라고 말하는 줏대 있는 스승을 찾았다. 새로운 스승이 말한다.

“달은 늘 왼쪽에 있네. 모든 성현의 말씀대로 달은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사실이 명확하네. 달은 늘 왼쪽에 있네. 진정한 진리의 스승이신 내 스승께서 직접 내게 주신 가르침이네. 그리고 그 가르침을 따라 분명히 달을 본다네. 이 사실을 믿게나. 그럼 자네도 보게 될 것이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서 끊임없이 수행하게나.”

드디어 진정한 스승을 찾았다고 생각한 사냥은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수행한다.

*

한 달이 지나고 한 계절이 지나고 한 해가 지났다. 그런데 아무리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달은 보이질 않는다. 사냥은 자책한다. 

왼쪽으로 확 빨리 돌려야 되나 보다. 안 보인다. 

“너무 많이 돌렸나? 조금만 돌려보자.” 

그래도 안 보인다. 

늘 자기 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달을 보려 수행에 수행을 거듭했지만 달은 보이지 않았다.

*

풀이 죽어 있던 사냥은 한번은 여러 수행자들과 함께 밥을 먹다가 아주 좋은 정보를 얻는다.

한 사람이 아주 자신 있게 승리에 찬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비결을 말해준다. 

“내가 이 방법으로 정확히 달을 보았다네. 정확히 다리를 꼬아서 가부좌 틀고 에너지를 단전에 모으고 숨은 길게 30초에 한 번 들숨과 날숨을 쉬면서 신실한 마음으로 제3의 눈에 집중하면서 고개를 돌리는 데 정확히 10초의 시간이 걸리도록 천천히 왼쪽으로 돌려서 보면 달을 보게 된다네. 중요한 점은 절대 이 중에서 하나라도 빠트리면 안 된다는 것이지. 달을 볼 때까지 절대 흐트러져서는 안 되네. 정확한 자세와 에너지 그리고 숨, 신실한 마음, 특히 제3의 눈에 집중을 놓여서는 안 되네.”

이 말은 들은 사냥은 너무도 기뻤다. 

드디어 정확한 정보를 찾았구나. 이렇게 상세하게 알려준 사람이 어디 있었던가? 제자는 그 사람에게 몇 번이고 고맙다며 인사했다. 그리고 빨리 가서 해보고 싶었다.

*

집으로 돌아온 사냥은 조용히 앉아서 그 사람이 일러준 대로 해본다. 정말 열심히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라도 빠질세라 최선을 다한다. 그런데 달은 보이지 않는다. 

스스로 자책한다. 

“난 아직 수련이 덜 되었나 보다. 그 사람은 몇 년을 했을까? 어디서 잘못된 거지?” 

문득 생각이 든다. 

“아! 뭔가 빠진 게 틀림없어. 아, 이런 바보, 정확히 받아 적어 왔어야지. 뭔가 까먹었거나 잘못 들었을 거란 말이야. 참 바보 같군.” 

*

사냥은 그 사람을 어렵게 다시 찾아 물어본다. 빠짐없이 받아 적고 아예 책으로 만든다. ‘직접 경험한 확실하게 달을 보는 상세 지침서’라는 근사한 제목까지 붙였다. 

그렇게 책을 들고 한 줄 한 줄, 한 단어 한 단어 빠짐없이 따라하며 열심히 고개를 돌려본다. 

얼마나 오래 수련했을까? 

아직도 달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는 한 번 봤다고 하고, 누구는 여러 번 봤다고도 한다. 

자책한다. 자괴감까지 든다.

“뭐가 잘못됐을까? 뭘 잘못한 거지? 뭘 빠져 먹었지? 난 원래 안 되나 보다. 그래, 한 책에서 본 적이 있지. 달을 보려면 500년의 수련이 있어야 하고 수천 번의 환생을 거듭해야 한다고. 아,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 언제, 몇 번의 생을 더 살면 달을 보게 되려나?” 

눈물이 흐른다. 예전에 보았던 달의 기억은 이제 희미하다. 말수도 줄어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다. 다 쓸모없는 짓 같아 한동안 달을 보는 수행을 멈춘다. 

그러다 문득 다시 떠오르는 생각! 

“이번 생에 열심히 수행해야 다음 생에 가서라도 볼 수 있지. 그리고 참! 왜 스승님께 그 친구에게 들은 방법을 확인하지 않았지?” 

갑자기 힘이 솟는다.

*

사냥은 왼쪽 스승에게 찾아가 확인해 본다. 

스승이 말한다. 

“그런 자질구레한 방법은 필요 없다네. 호흡도 필요 없고 자세도 필요 없고 3의 눈 같은 말 같지도 않은 것은 필요 없네. 단지 신실한 마음으로 늘 왼쪽으로만 고개를 돌려 보면 되네. 그럼 달을 볼 게야.” 

제자는 자신의 어리석음에 눈물 흘리며 고마움에 스승에게 절을 올리고 묻는다. 

“스승님께서는 늘 달을 보십니까?” 

스승이 답한다. 

“아니네. 달을 볼 때도 있고 보지 않을 때도 있네. 나도 아직은 늘 보지는 못한다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늘 이 자리에서 꾸준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면 달이 보일 때가 있다는 사실이네. 이렇게 확실한 비법이 있으니 수행을 게을리하면 안 되지. 늘 달을 볼 수 있는, 그런 신선들의 경지를 생각하는 것은 수행에 방해가 되니 차근차근 꾸준히 주어진 수행에만 전념하게. 그래야지 언젠가 삼천 생의 수행 공덕이 모여 늘 달을 보는 신선의 경지에 들 수 있다네.”

사냥은 스승의 솔직함에 감탄하며 

“진리는 이런 것이구나!” 하며 깊이 느낀다. 그리고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스승을 마주 보고 앉아 깊이 다짐한다. 

“달을 보기 전까지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다.” 

그렇게 사냥은 스승을 마주하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달을 보려 한다.

*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났는지 모른다. 간혹 스승이 달이 보인다고 말씀하시지만, 제자는 달이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더욱 열심히 마음을 다잡는다. 그리고 아예 고개를 왼쪽으로 고정하고 돌리지도 않는다. 목에서 경련이 일어나도 꾹 참는다. 이를 악 깨물고 참는다. 깊이 다시 다짐한다. 

“내 목이 부러져도 좋다. 이렇게 죽어도 좋다. 이생은 달을 보기 위해 태어난 것이리라. 한 번만이라도 다시 그때처럼 달을 보게 된다면 이 자리에서 죽은들 무슨 여한이 있으랴.”

*

고행으로 사냥은 말라간다. 수염이 자라고 손톱이 길고 목에는 이제 감각조차 없다. 눈을 하도 뜨고 있어서 눈도 희미하다. 한시라도 놓일세라 눈의 깜빡 임도 최소한으로 줄인다. 정신이 멍하다. 그러다 머리가 띵하다, 정신을 잃고 앉은 채로 쓰러진다.

*

깊은 침묵 속.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깊은 침묵 속 뭔가 밝은 빛이 느껴진다. 정신이 살짝 돌아온다. 온몸에 감각이 없다. 이렇게 죽나 싶은데 그래도 희미하게 정신이 돌아온다. 눈을 천천히 떠본다. 살며시. 뭔가가 밝다. 무언가 빛이 눈으로 들어온다. 

“이게 뭐지?” 싶다. 

조금 지나니 빛의 형체가 조금씩 드러난다. 둥글게 빛나는 그 무엇. 점차 선명해지다, 확연해진다. 

“아! 달이다.” 

달이 환히 떠 있다. 달은 조용히 빛나고 있다. 사냥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눈물에 흐려지는 달을 눈을 깜빡이며 보고 다시 본다.

“아, 이렇게 달을 보는구나.” 

달을 보기 위해 보냈던 지난 세월이 스쳐 지나간다. 얼마나 열심히 진실하게 찾았던 달인가! 이렇게 앞에서 환히 빛날 줄은 몰랐다. 

“아 달은 참 밝구나. 이렇게 죽기 전에 보게 되다니.” 

가슴에 불타는 듯 뜨거움이 솟구치며 감사함과 감격스러움에 온몸이 짜릿하다. 그렇게 어느덧 몸에 감각이 돌아온다. 서서히 쓰려진 몸을 추스르며 바로 앉는다. 달을 놓일세라 계속 달을 바라보며 그렇게 앉았다. 달을 보는데 문득 목의 감각이 느껴진다. 너무 아프다. 가만히 보니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으로 보고 있다.

*

“이럴 수가!” 

한 생각이 뇌리를 번개처럼 지나간다. 

“왼쪽이 아니었구나. 오른쪽이었구나. 내가 틀렸구나! 옛날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싸웠던 친구 농사의 말이 맞았구나.” 

사냥은 처음으로 자신이 틀렸음을 깨닫고 반성한다. 그때 앞에 앉은 스승의 말이 들린다. 

“달이 보이네. 자네, 달이 보이는가?” 

사냥은 기쁨에 차서 답한다. 

“예 스승님. 드디어 달이 보입니다. 이제 달이 보입니다. 너무도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스승이 감격에 차 말한다.

“아, 다행이네. 자네가 드디어 달을 보게 되다니 참으로 기쁘네.” 

스승도 제자도 감격스럽다.

*

얼마나 지났을까? 달이 희미해져 간다.

그리고 사냥에게 문득 일어나는 깨우침. 

“스승님은 왼쪽이라 말했는데, 난 오른쪽을 보고 달을 봤다. 이 뭐지?!”

갑자기 머리가 뭔가로 강하게 맞은 것처럼 띵하다. 생각이 멈춘듯하다. 한동안 바보처럼 멍해졌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그래도 이해가 안 된다. 

그러다 문득 확연해진다. 

“아, 내가 스승님의 반대쪽에 앉아 있구나! 그러니 스승님께 왼쪽은 나에게는 오른쪽이구나.” 

크게 깨닫는다. 

“달은 오른쪽이나 왼쪽이라는 말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앉은 방향에 따라서 다르게 말할 수 있구나!” 

큰 깨달음이 한동안 사냥의 가슴을 울린다. 

시간이 좀 지나니 가슴의 울림이 잦아들다 생각이 많아진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어디를 돌아봐도 달은 보이지 않는다. 큰 깨달음이라고 생각했던 확신이 언제 있었냐는 듯 두려움이 엄습한다.

*

사냥이 스승에게 묻는다.

“스승님 달을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서도 볼 수 있습니까? 만일 반대로 돌아앉으면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스승이 답한다. 

“달은 늘 그 자리에 있다고 모든 위대한 스승들이 한결같이 얘기하지. 그 말은 달의 위치가 절대 불변이라는 뜻이지. 그런데 달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다네. 나의 스승께서 일러 주신 대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야만 달을 볼 수 있다네. 그리고 한 번 달을 보면 절대로 반대로 돌아앉거나 자리를 틀어 앉으면 안 되네. 그 자리는 달이 정해준 자리이기 때문이네. 몇 번의 생을 거듭해서 수행을 쌓으면 언젠가 신선의 세계에 든다더군. 그러면 달과 하나가 되는 경지에 오르는 것이지. 그때가 되면 자네 말대로 돌아앉아도 되고 어디를 보고 앉아도 달을 볼 수 있다더군. 하지만 아직은 아니네. 아직은 그런 돌아앉는다는 따위의 잡생각은 내려놓고 부지런히 수행하시게나.”


사냥은 스승의 말에 크게 감복하며 섣부른 깨우침을 부끄러워하며 생각한다. 

“스승님께서 앉아계신 저 자리가 달이 정해준 신성한 절대적 자리구나. 나도 바로 옆에 앉아 왼쪽으로 봐야지. 그렇지, 역시 왼쪽이었어! 내가 맞았군. 다른 잡생각은 하지 말고 왼쪽에 대한 믿음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아야겠다. 오른쪽이니 하는 것은 이생의 것이 아니야. 신선의 경지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을 내가 하려 했다니 참으로 부끄럽군.” 


사냥은 곧 스승 옆에 앉아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고정한다. 정말이지, 머지않아 달이 보인다. 

사냥은 생각한다. 

“역시 스승님 말씀이 맞구나. 왼쪽이야!”

*

그렇게 오랫동안 왼쪽 스승과 함께 달을 보기도 하고 사라진 달을 그리워하기도 하며 세월을 보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달을 보며 달에 관해 말하는 스승과 제자를 보고 놀라며 여러 사람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렇게 달을 본다는 스승과 제자의 소식이 세상에 퍼져 나간다. 이 소식을 듣고 세상 곳곳에서 이 둘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들 앞에 모여 달에 관한 말씀을 듣는다. 간혹 달을 보며 달에 관한 말씀을 전할 때는 모두가 이들에게 경배하며 찬양한다. 어떤 이는 절을 하고 어떤 이는 감격해 노래를 부르고 어떤 이들은 노래에 맞춰 춤을 춘다. 어떤 이는 이분들의 말씀을 받아 적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받아든 어떤 이들은 말씀을 반복해서 읽어간다. 사람들은 찬양하고 춤추고 말씀을 반복하고 절하며 자기들이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길 이 위대한 스승과 제자에게 빌고 기도를 올린다.

*

얼마 가지 않아 왼쪽을 보던 스승이 숨을 거둔다. 모여있던 모두가 슬퍼하면서 신과 같은 스승의 존재를 떠나보낸다. 스승이 앉아 있던 자리를 신성한 절대 자리로 받들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린 모습을 본떠 금으로 동상을 만들어 절대 자리에 모시며 스승을 기린다. 

동상 옆에 앉아 동상과 같은 모습으로 왼쪽을 보는 사냥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스승이 됐다. 사람들은 이 신성한 모습을 경배하고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파하려 좀 더 조직적인 단체를 만든다. 

좌월교의 탄생이다.

*

사람들은 왼쪽으로 달을 본다는 뜻으로 좌월교라 이름 붙이고, 돌아가신 스승을 좌월신이라 칭하고, 사냥을 좌월교 제1대 교주로 받들어 모신다.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따라야 할 법도를 만들고 좌월신과 제1대 교주의 말씀들을 모아 경전을 만들어 선포한다. 또한, 가르침을 정리하여 교리를 만든다. 

교주가 달이 뜬다고 할 때는 교주의 생생한 달에 대한 말씀을 듣고자 세상 곳곳에 있는 좌월 교도들이 구름처럼 모여든다. 

이렇게 좌월교는 명실상부한 세상 제일의 종교로 자리 잡아나갔다.

*

어느 날 제1대 교주가 계신 좌월교 본산에 한 사람이 찾아온다. 

누가 봐도 평범해 보이는 이 사람이 교주를 만나보고자 하나 만날 길이 없다. 교주를 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는 사람들로 정해져 있기에 보통 사람들이 교주를 만나보려면 보통은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 그것도 운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지만, 그중에서도 실제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고 한다. 

며칠을 머물던 이 사람은 안면을 익힌 한 높은 직책의 사람에게 교주에게 쪽지만이라도 전해줄 순 없겠냐며 사정해 본다.

당신 같은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명이라고 거절하는 그 사람에게 공들여 설득한다. 예전에 알던 반가운 벗이라고 말하며, 이 쪽지를 보면 교주께서 아주 반가워하시고 칭찬하실 거라는 말에 겨우 쪽지를 전한다. 

쪽지를 전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며칠을 기다려본다.

쪽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 오른쪽, 왼쪽 하며 참 많이 싸웠네. 기억하는가? 스승께서 가리키시던 달을 보며 기뻐하던 그때를.” 

며칠을 기다렸을까? 마음을 접고 떠나려 할 즈음에 소식이 온다. 교주님께서 알현을 허락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교주를 만난다. 

*

저 높은 단상에 황금빛으로 빛나는 동상 옆에 옛 친구가 왼쪽을 보며 앉아 있다. 친구가 앉은 곳을 보니 신성한 분위기가 압도했다. 

서로 나눈 몇 마디에 교주는 그 옛날 오른쪽이네 왼쪽이네 하며 싸우던 옛 친구 농사임을 확인하고 기쁘게 맞이한다.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났다. 오랜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옛 친구의 얼굴에서 그 시절 얼굴이 떠오른다.

교주와 마주 앉은 농사가 웃으며 말한다. 

“오늘 참 달이 밝으이. 우리를 반겨주는 듯하네.” 

교주는 이 무슨 소리인가 싶다. 

누추해 보이는 이 친구가 달에 관해서는 세상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좌월교 제1대 교주에게 달을 논하다니!

교주가 정색하며 말한다. 

“오랜만에 만나, 농담이 지나치네. 난 오늘 달을 본 적이 없는데 무슨 소리인가? 아무리 예전 친구라고 하지만 좌월교 교주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네. 예전의 내가 아니니 예의를 지켜주기 바라네.” 

농사가 엷은 미소를 띠며 답한다. 

“실례를 범했습니다. 옛 벗이었던 위대한 교주여. 오늘 교주님의 말씀대로 왼쪽을 보니 달이 훤히 보여서 한 말입니다. 혹시 마음이 되시면 이 옛 친구가 보던 저곳을 한번 보십시오. 또 마음 가시면 우리 예전에 있던 곳으로 한번 찾아오십시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친구는 교단의 지침대로 세 번 절을 올리고 떠났다.

*

친구가 떠나자 교주는 가슴이 허하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무언가가 가슴을 후려친다. 가슴에 뜨거운 불덩이가 타오르는 것 같다. 갑자기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왼쪽을 보시던 스승과 함께 더는 찾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알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늘 허전하다는 것을. 뭔가가 빠져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허전함은 내 수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허상이라 생각하고 허전함이 느껴질 때마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달을 바라보려 더욱더 정진하며 허전함을 눌러 왔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왔다 간 뒤 눌러 왔던 허전함이 폭발했다. 가슴이 불탄다.

*

교주는 주위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 홀로 깊은 생각에 빠진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스쳐 지나갔던 깨우침이 떠올랐다. 

“왼쪽이 아니었구나. 오른쪽이었구나. 내가 틀렸구나. 옛날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싸웠던 그 동무의 말이 맞았구나” 하며 내가 틀릴 수도 있음을 느꼈던 그 순간의 기억이 뇌리를 강하게 스친다. 

그리고 친구가 마주 보며 말한 왼쪽, 바로 자신이 바라보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고개가 말을 듣지 않는다. 너무 힘들다. 얼마나 오랜 세월 왼쪽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던가? 뼈 깎는 고통이 느껴진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다. 

“그냥 그만둘까?” 

마음이 수없이 왔다 갔다 한다. 

왼쪽 스승 앞에 앉아 쓰러졌을 때 보다 더 힘들다. 그러나 멈춰지지 않는다. 너무 엄청난 고통에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가 없다. 

친구가 틀렸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마음일까? 예전에 일어난 깨우침의 힘일까? 

그렇게 얼마나 사투를 벌이며 고개를 조금씩 돌렸을까? 희미한 빛이 보인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빛이 점점 밝아진다. 

그렇다. 

“달이다!” 

달이 보인다. 생각이 멈춘다. 

멍하니 달을 바라보다 눈물이 비처럼 쏟아진다. 얼마나 울었을까? 목이 너무도 아프다.

*

교주는 말없이 앉은 자리에서 내려와 좌월신의 동상에 절을 세 번 올리고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길을 나선다. 참으로 오랜 세월 지내왔던 이곳. 좌월교의 신이 되신 옛 스승과의 추억과 고된 수행의 기억과 수많은 사람과의 기억이 있던 이곳을 떠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난다. 영원할 것 같던 교주의 삶을 이렇게 한순간 내려놓게 될 줄이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발길이 가볍다. 

높이 뜬 달이 사냥의 길을 환히 비춘다.

*

먼 길을 지나 옛 스승과 친구 농사가 있던 곳으로 돌아왔다. 

스승님이 돌아가신 후 그 자리를 지켜온 옛 친구가 반갑게 맞아준다. 

낯설 것 같았던 이곳이 이상하게 익숙하고 정겹다. 


사냥이 농사에게 묻는다. 

“오늘 달을 볼 수 있는가?” 

농사가 답한다. 

“달은 오늘 안 보일 거네. 하지만, 내일은 보일 거야.” 

사냥은 농사의 소리에 어리둥절하다. 이 무슨 소리인가 싶다. 

다음날 농사가 말한다.

“저기 달이 우리를 향해 웃고 있네.” 

농사는 사냥의 몸을 돌려 달을 보게 도와준다. 그래도 사냥은 도무지 달이 보이지 않는다. 

농사가 “저기 하늘에서 살짝 눈웃음처럼 가늘게 빛나는 것이 달이라네. 잘 보게나”라며 알려 준다. 

사냥은 한참을 보다, 하늘에 뜬 가는 눈웃음 모양의 빛을 보고, 저것을 보고 달이라고 하는가 싶어 묻는다.

“어떻게 저게 달인가? 달은 세상의 이치로서 둥글어야 하네. 안 그런가?”

농사가 말한다. 

“달은 그냥 달이네. 사람들이 말하는 세상의 이치처럼 둥근달도 있지. 그런데 매일 달을 보다 보면 달도 모양이 여러 가지라는 사실을 알 거네. 어느 날은 접시처럼 둥글고 어느 날은 그 접시의 반만 보이다가 어느 날은 여인의 눈웃음처럼 가늘기도 하지. 또 어느 날은 보이지 않고 잠시 쉰다네. 달은 달이고, 세상의 이치처럼 둥글다는 말은 그냥 붙여진 이야기지.”

사냥은 농사의 말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도저히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믿어 보기로 하고, 그렇게 농사의 도움을 받아 매일 달을 본다. 

*

달이 둥글게 환히 빛나던 어느 날이다. 

달을 보던 사냥이 알아차린다. 

“달은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그리고 달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구나!”

그리고 깨닫는다. 

보이지 않을 때도 달은 없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늘 떠 있다는 사실을, 사람에게 보이든 보이지 않든, 사람이 보든 보지 못하든, 늘 자기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달이 떠 있는데도 안 보인 것은 달은 늘 둥글어야 한다는 믿음에, 

달은 꼭 고귀한 특정 방법으로만 보인다는 잘못된 믿음에, 

달은 꼭 수행을 많이 한 사람들만 볼 수 있다는 믿음에, 

신선이 되어야만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믿음에, 

이 모든 믿음에 가려 달이 눈앞에 저렇게 늘 있어도 보지 못하고, 또 본다 해도 달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보는 방향이 틀리기에 그냥 왼쪽이니 오른쪽이니 정해진 것 없이 그냥 돌아서 찾아보면 되는 것을, 

달은 우리가 보든 안 보든 상관없이 그냥 그렇게 빛난다는 사실을, 

그냥 달은 달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한순간, 이 생각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그 오랜 세월 동안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 또는 다른 누군가가 하는 말만 믿으며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달을 못 봤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눈뜬 장님이 따로 없었다. 

눈물이 흐른다. 슬프지도 아쉬운 것도 없는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문득 왼쪽 목이 아파오며 생각한다. 

이 간단한 것을, 왼쪽만 바라보며 앉아 있던 자신이 우습다. 이렇게 늘 떠 있는 달을 내가 못 봤다니,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거짓 믿음 때문에, 편견 때문에 보지 못한다니, 참 우습다. 

눈물은 멈추질 않는 데 웃음이 난다.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울면서 웃는 자신이 미친 사람 같아 보이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울며 웃으며, 한참을 달을 보며 서 있다.

이제 사냥과 달 사이에는 어떤 장애물도 없다. 늘 그랬던 것처럼.

*

그렇게 두 친구는 달을 바라보며 서로 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간다. 

농사가 “오늘 달이 환히 떴네”라고 말하자,

사냥은 “그런가?” 하며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달이 없다. 

이런 모습에 피식 한 번 웃고는 고개를 돌려 달을 찾는다. 그리고 달을 보며 답한다. 

“그래 참 환하게 떴네. 그런데 오늘 달은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네. 왠지 모르겠네.”

농사가 뭔가 아는 듯 묻는다. 

“자네가 있던 좌월교의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 주고 싶지 않은가?”

사냥이 답한다. 

>>“많이 생각했네만. 지금은 달이 이렇게 쉽게 보이고 달을 보는 것이 내게 일상의 일이지만 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지. 어떻게 이것을 설명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농사가 묻는다. 

“자네가 교주니 사람들이 자네 말은 믿지 않을까?” 

사냥이 웃으며 답한다. 

“하하하. 이제 교주는 무슨. 여기서 지내면서 고개가 이제 예전처럼 왼쪽으로 오랫동안 고정되지도 않네. 아무도 나를 못 알아볼 거야. 아마 내가 교주라고 말하고 지금 아는 달에 관해 말하기 시작하면, 거의 십중팔구 나를 나무에 못 박아 죽이려 할 게 눈에 훤히 보이네. 달에 관해서 경전의 내용과 다르게 말하거나 교주로 속이는 사람은 그런 형벌을 받게 돼 있거든. 누굴 탓하겠나? 예전의 내가 다 그렇게 만든 것을. 그리고 많은 사람이 달을 말하며 모여있지만, 그들 중에 정말 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사실 거의 없지. 다들 자기 복을 비느라 바쁘다네.”

*

사냥은 그렇게 말하고 지냈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 좌월교 사람들이 비록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사람들 모두 달을 향한 마음은 자기만큼 순수하고 진실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또한,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정말 달을 보고 싶어 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잘만 설명하면 자신처럼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넘쳐나면서 그냥 이대로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마땅한 방법도 없었는데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사냥은 달은 늘 있다는 뜻으로 ‘늘달’이라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이름으로 책을 써 내려간다. 달을 찾기 위해 걸어왔던 경험을 글로 써 내려간다. 

사냥이 농사에게 말한다.

“누군가는 이 책을 읽고 거짓 믿음을 내려놓으며 깨닫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지 않을까? 참 쉬운 일이 아니지만.” 

농사가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오른쪽이 진리네, 왼쪽이 진리네라며 말해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며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자욱한 안개속에서 헤매는 우리 같은 찾는 이들이 늘 있기 마련이지. 그렇게 외로운 길을 걷는 그 사람들에게는 자네의 책이 등불이 되어 줄 거라 믿네. 또 찾는 이들 말고도 사람들은 대부분 살아가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그냥 지나치거나 오늘의 삶이 힘들어 덮어두고 살아가지. 하지만 뭔가 허전함은 계속 느껴진다네. 자네의 책이 그들의 가슴에 찾음의 씨앗 하나 심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때가 되면 피어날 씨앗을. 또 자네는 나보다 세상을 더 많이 돌아다니고 수많은 실패와 경험을 해보았으니 사람들의 마음을 더 잘 알 것이고 그들 가슴에 와닿는 가르침을 전할 수 있을 거라 믿네.” 

농사의 말에 사냥의 마음이 따뜻해진다.

*

문득 사냥은 궁금해진다. 

“왜 예전에 우리 스승님은 내게 달을 보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으셨지?” 

농사가 웃으며 답한다.

“나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하나씩 생각이 나더군. 스승님은 늘 말씀하셨다네. 자세히 그리고 상세히. 참으로 대단한 인내를 가지고 못 알아듣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또 말씀하시고 하셨지. 하루는 그러시더군.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 때가 되면 이 말들이 꽃피울 날이 있을 거라고.” 

*

친구의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냥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스승님이 다 말씀하셨구나.” 

그때 알지 못했던 스승의 말씀이 확연하게 살아나 가슴에 박힌다. 한동안 뭉클한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승의 고마움을 온몸으로 느낀다. 지난 일들이 생각난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도 모르게 움직였던 마음, 나도 모르게 가슴을 쳤던 일들, “아! 스승님께서 심어놓으신 씨앗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꽃을 피웠구나. 나를 살렸구나. 내가 알든 모르든 스승의 말씀이 가슴에 살아 숨 쉬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스승에 대한 고마움이 온몸을 감싸며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리고 달과 상관없이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던 모든 분이 떠올랐다. 부모님과 가족들과 인연이 된 여러 고마운 분들. 그분들의 기도가 알게 모르게 내 속에 쌓인 씨앗을 키워왔음을 느낀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모두의 일이었다.

*

사냥이 농사에게 말한다. 

“참 자네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높은 교단에 앉아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고 앉아 있었겠지. 성격 급한 나는 조금도 참지 못하고 떠났는데 차분하고 끈기 있는 자네가 스승님 곁을 지키고 가르침을 이어받아서 나에게도 나누어주니 어떻게 이 고마움을 전할지 모르겠네. 정말 고맙네.” 

사냥의 말에 농사가 웃으며 답한다. 

“내가 더 고맙지. 이렇게 같이 달을 보며 마음 나눌 친구가 있으니 이보다 좋은 선물이 어디 있겠나? 세상의 칭송을 한몸에 받던 그 대단한 교주의 자리를 내려놓고 여기 이 초라한 친구 옆에 있는 주니 고마운 것은 바로 나지.” 

농사가 이어간다. 

“한번은 내가 자네를 찾아 나설까 하니 스승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군.” 

“사람마다 다 자기 길이 있어. 성격이 급하면 급한 대로의 길이 있고 성격이 차분하면 차분한 대로의 길이 있지. 좋고 나쁜 건 없어. 그때그때 보는 사람들 말뿐이지. 그런데 신경 쓸 필요 없어. 먼저 자네부터 자기 찾음을 끝내. 찾음이 끝나면 그때 가서 돕든지 말든지 하게.”

“달이 참 좋네.” 

“그러게, 오늘 달은 구름도 끼어있어 새롭네. 참 볼수록 새롭네.” 

두 친구는 나란히 앉아 달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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