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그림 Nov 16. 2023

어렸을 적 추억이 담긴, 제육볶음을 해주다

남친이가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를 해주려고 물어봤을 때 제육볶음, 카레 같은 음식이 나왔다. 때마침 같이 도시락 먹는 화요일 전날 월요일에 연차를 썼다. 남친이가 집에서도 해먹는다는 제육볶음은 얼마나 맛있을까 궁금해하며, 눈은 바쁘게 고기를 고른다. 한돈 앞다리살을 두 근 산다.


남친이 많이 먹냐고? 두 근을 먹지는 않는다. 이왕 요리하는 김에 부모님과 같이 사니 부모님 것도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은 매주 부모님이 싸주시는 반찬으로 직장에 도시락을 챙겨가면서, 부모님 제육볶음은 해두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좀 미안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여태까지 제육볶음은 안 드셨기에 취향 저격에는 실패했지만, 어쨌든 마음의 짐을 살짝 덜고자 했다. 부모님은 제육볶음 하냐며, 잠깐 관심을 보이시곤 더이상 말이 없으셨다. 나의 괜한 미안함은 이제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이제 부모님이 아니라 옆에 있는 남친을 챙기는 것이 부모님께도 당연하고 좋은 일임을 생각하며,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제육볶음은 남친의 애정요리기도 하지만 나에게도 추억이 많은 음식이다. 어렸을 적 엄마는 김치를 팍팍 넣고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해주셨었다. 그 맛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예전에는 지금처럼 목살이 아닌 아마 기름이 더 많은 삼겹살을 썼던 것 같다. 하여간 엄청 맛있었던, 고추기름의 맛. 감칠맛 도는 김치의 맛.


하지만 이젠, 나만의 제육볶음을 만들어 갈 시간이다.

좀 서툴지도 모른다. 오늘 한 제육볶음도 약간 싱겁고 양파에서 나온 물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는 다른 나의 요리경험, 요리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엄마가 해주었던 어렸을 적 그 맛에는 엄마의 세월과 경험이 담겨 있다. 엄마의 엄마가 해주었던 맛에 대한 엄마의 기억에 더해 엄마가 고안한 레시피. 손님이 올 때 자주 꺼냈던 걸로 기억되는 특정한 상황들. 엄마가 젊었을 때의 추억들이 제육볶음을 통해 켜켜이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떤 제육볶음을 만들까. 언제 어떤 상황에서, 이 요리를 꺼내놓을까. 김치를 넣을까, 원래 내 생각대로 양파를 넣어 만들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내 길을 만들어 갈 것이다.

어머니의 엄마 세대는 바쁘게 돈을 벌어야 해서 집에 잘 있는 경우가 없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일반화해서 말하는 경향을 감안하더라도 그랬을 거 같다. 엄마에게도 가이드는 그래서 별로 없었다. 우당탕탕 실수하기도 했지만 따뜻한 기억들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며 그렇게 사셨다. 나 또한 가이드랄 사람은 또 딱히 만나기 어렵다. 그저 몇몇 사람들과 문안을 주고 받으며 그들의 좋은 점을 일부 마음에 담아둘뿐, 모르는 것도 두려운 것도 꽤 있는 인생을 터벅터벅 걸어간다. 다양한 모양의 발자국을 남긴다.


때로는 예전과 비교해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가 생각하며 감사한다. 흑역사라며 이불킥하는 것도 자기중심적인 것 같다. 그저 찍혀 온 발자국을 보며 앞으로를 더욱 기대해 본다.


엄마가 만들어준 제육볶음과 조금 스타일이 달라도, 잘못 구워 물이 많이 나왔어도, 괜찮고 좋기만 한 나의 요리인생과 나의 선택들이다. 나도 그 때의 엄마처럼 40대가 되면 제육볶음 쯤은 눈감고도 만들 수 있겠지. 아직 덜 익은 좌충우돌 미생의 삶도 괜찮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 요리해주고 싶은 마음 하나 그래도 따뜻하게 품고 있다는 면에서는 성공적이지 않은가.


남친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제육을 맛있게 먹어줬다. 날이 추워져서 이제 더이상 바깥에서 고기를 먹기는 어렵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친은 보온도시락통이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해주었다. 너 좀 먹어봤구나!!


오늘도 나만의 길을 걸어가리라, 뭐든 잘 먹는 너의 입에 맞다면 주눅들지 않고 지치지 않고 요리할 수 있다.국민요리 제육볶음 클리어!

이전 02화 함께하는 식단, 닭가슴살 샐러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