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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Nov 26. 2023

선물받았다, 사케동

오늘은 내가 해준 요리뿐만 아니라 남친에게 받은 마음도 생각이 나 글로 남겨보고 싶었다. 그가 해준 요리 중 사케동이 생각이 났다.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탱탱한 살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던 그는 이마트에서 연어를 손질해 양파 조림까지 곁들여 사케동 도시락을 만들어주었다. 이걸 다시 떠올리다보니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고맙지만 언젠가 우리도 죄인들로서 서로에게 상처를 낼 수도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굉장히 큰 상처를 받았음을 인식한 후로는 “다시는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으리라”결심하고 지나치게 애를 써온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까봐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들도 거르고 걸러 말하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경우들도 생겼었다. 그래서 실제로 상처를 덜 줬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인간의 본성 특징상 아예 안주고 살 수는 없었을 거였다. 그래도 나는 애써 나를 속이며 겉으로 큰 문제는 없었으니 이 원칙을 잘 지키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 해에 초등학생들을 교회에서 가르치고 섬길 생각을 하니 너무 큰 스트레스가 되는 거였다.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이라면 아예 사람을 가까이 하지도 않는 것이 가장 마음에 원하는 상태인데, 게다가 아이들을 만나려니 영 마음에 안내키는데 상황이 이렇게 흘러와버려서 생각이 어려워졌다.


남친은 상처를 안주고 안받는게 가능하지 않다고 얘기해주었지만 몇 주정도 내 걸로 잘 소화가 안되다가 문득 정말 그렇다고 생각이 됐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오기란 참 기독교 신앙생활에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나만 봐도 그렇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여러 번, 아니 수백 번 이상 받는다 하더라도 사실 나는 충분히 나 자신을 사랑하며 나를 유지 발전시킬 근력이 있다. 나 자신과 사람들을 너무 약하게 볼 필요는 없는게 사람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기가 막히게 잘 할 수 있는 존재들이라 그런 거 같다. 다만 조금 어리고 어려운 존재들에게 상처도 한번씩 받는 것 등은 너무 못 참아주어서 문제인 게 오히려 우리들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상처받을까봐 자기 보호 하는 데 바빠서 오히려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게 자연 상태의 우리들 모습 같았다.


오히려 조금 상처를 주고 받더라도 그것에 내가 다쳤다며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다신 그러지 마 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잘못한 사람이 다신 그러지 않을게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자존심을 버리고, 사과하려 할 때 나도 억울한 게 있고 이유가 있어서인데라고 하지 않고. 이게 참 어렵지만, 약간의 여유가 우리 사이에 흐를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사케동의 추억으로 여기까지 흘러온 생각. 공원에서 먹는 밥은 맛있었고 렌치 드레싱 구하러 여기저기 다녔다는 샐러드는 렌치가 아니어도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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