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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그림 Nov 20. 2023

my favorite, 마파두부

마파는 마이 패이보릿의 준말이랬다.


남친의 대학원 입학 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때꼰한 남친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집중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 성실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약간의 불만이 고개를 들 뻔했으니...그것은 "멀리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


시험이 가까워 올수록 사람은 자기 익숙한 동네에서 늘 가던 밥을 먹으며 새로운 자극을 줄이고 오직 시험에만 전념하고 싶어하는 법이다. 나 또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했을 때 사람은 물론 하나도 만나지 않았고 스트레스 풀기로 했었던 엄마와의 고스톱도 치지 않았으며 오직 환경이 좋은 카페를 골라가며 전전했었다. 친한 오빠의 결혼식도 가지 않는 등 지금 생각하면 참 이기적이기만 했던 나였다.


남친도 마찬가지였다. 멀리 나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우리는 콤팩트한 경로를 따라 밥과 차를 빠르게 해결하고 곧 헤어지는 데이트를 2주 정도 이어가게 됐다. 이쯤 되니 반복되는 밥과 차 데이트가 약간 답답시려울 무렵... 역시 우리의 새로움이 되어주시는 분은 하나님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맛집과 카페가 딱 옆에 붙어 있는 곳에서 밥과 차를 해결했다. 닭칼국수와 멸치칼국수를 나눠 먹으며 거의 말을 나누지 않고 국물을 즐겼다. 그가 한숨 돌릴 시간을 주고 싶었다. (모드 체인지가 잘 안되더라) 바로 옆 카페로 옮겨 말씀 묵상을 함께 하며 만난 하나님은 이동경로가 짧고 밥먹고 카페가는 데이트 속에서도 큰 새로움을 선사해주셨다. 너무도 급진적인 복음임을 다시금 일깨워주신 것이다. 오른 뺨을 맞으면 왼 뺨도 돌려대라는 그 '당해줌'에 대한 말이 너무나 억울하고 화날 수밖에 없다고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 인내와 축복해줌으로 그리스도를 닮는 모습 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새롭고 좋았다. 역시 관계를 새롭게 해주는 것은 말씀이지 늘 새롭고 짜릿한 데이트 환경이 아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또 우리는 아침에 기도회도 가졌다. 새벽예배에 가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한 것인데, 아침 기도회의 말씀에서도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돌려대라는 말씀이 나와서 신기함을 느꼈다. 하나님이 복음으로 우리를 계속해서 초대해주시고 있고, 무얼 먹고 무얼 누리느냐에 신경쓰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로 우리 둘을 부르고 계심을 함께 기도로 경험할 수 있어 참 좋았다. 아침에는 버스터미널에서 추우니까 역전우동을 먹었다. 남친은 여느 때처럼 옳은 말만 하고, 나는 받아들였지만 겉으론 열받는 척 하면서 재밌게 보냈다. 복음만이 경직될 수 있는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또 새롭게 물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복음으로 새로워진 마음으로 또 힘을 내어 사랑하고, 시덥지 않은 농담들을 주고 받으며 웃을 수 있다. 다른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아참, 남친이 너무 바빠 집밥 해먹을 시간이 없을 거 같아 마파두부를 한솥 끓여서 나눠주었다. 남친의 ma favorite mapatofu(내멋대로 씀)가 된 그 요리에는 신명나는 데이트에 대한 나의 약간의 포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누리는 상황으로가 아닌 오직 복음만으로 즐거운 데이트가 뭔지 경험할 수 있어서 참 진귀한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 편을 깊이 즐김에 감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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