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적으로 연재를 시작한 것을 후회하며,
미리 써 놓지 못한 저의 게으름을 반성하며.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를 드리며 날짜만 지키겠다고 11시 59분 발행 버튼을 눌렀습니다.**
사람 나이 마흔에 접어들면 불혹(不惑: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는 나이)이라 하고 쉰에 접어들면 지천명(知天命: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라고 한다. 그 나이에 접어들면 나도 사리분별이 가능하고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생각했다. 생각한대로 한 번에 이루어지면 재미없을까봐 그런가… 마흔 후반, 내일모레 쉰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인격에도 세포가 있는지, 나이를 먹는 만큼 인격 세포가 분열해 다중이가 되었다.
유아기부터 아동기 시절
엄마는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MBTI 극'E' 성향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하게 되면 잔치집처럼 대량으로 만들어 이 집 저 집 나눠먹었다. 여름방학되면 온 동네 아이들를 데리고 자가용도 아닌 시내버스를 타고 유원지 수영장에서 놀았다. 우리 집 개가 목줄이 풀려 동네를 돌아다니면 우리 집에 다시 데려다줬다. 심지어 대부분 동네 애들의 유치는 엄마의 손에 뽑혔을 정도였다. 그 시절 우리 동네와 엄마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응답하라. 1988' 드라마의 동네 분위기와 정환이 엄마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통장 한번 한 적은 없지만 모두들 엄마를 정말 좋아했고 따랐다. 나도 그런 엄마가 좋았고 멋졌다. 하지만 낯을 많이 가렸고 말수가 적었던 나는 엄마의 성격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엄마와 전혀 다른 성격 때문에 동네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애로 생각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었다. 그 걱정은 3살 터울의 작은언니와 함께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 때까지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멀리서 동네사람이 보이면 그 즉시 뒤돌아 집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아니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동네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니는 길을 택했다. 어쩔 수 없이 동네사람을 만나게 되면 갑자기 허둥지둥 책가방을 열고 물건을 찾는 척을 했다. 책가방이 없다면 담벼락에 손바닥을 문지르며 '게'처럼 벽을 바라보고 옆으로 걸었다. 그렇게 시선을 피해도 동네사람이 먼저 내게 인사를 하게 된다면 초점 없는 눈동자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그리고 잽싸게 걷기 시작했다. 마치 '너에게 다른 말을 할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듯 말이다.
그나마 혼자 다닐 때는 나만의 방법이 통했지만, 엄마만큼 강력한 극'E'의 소유자인 작은 언니와 함께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정말 난생처음 보는 사람, 저 멀리 지나가는 사람, 구멍가게 주인, 세탁소 아저씨 등 그 누구든 언니가 봤다면 먼저 다가가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언니가 인사를 하는데 옆에 있는 동생이 멀뚱하게 서있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고개만 까딱 거렸다. 심할 때는 1미터 간격으로 인사만 하다 집에 도착할 때도 있었다. 인사만 했을 뿐인데 눈알이 빠질 듯한 느낌이었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