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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11. 2020

Persona=Person+a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김현경 저

 


PERSONA

 

Person(사람)에 a를 더하면 Persona(가면)이 된다. 가면의 어원은 사람에서 출발했고, 사람이라는 단어의 첫 번째 의미가 가면이라고 하니, 사람과 가면의 관계는 동전의 양면처럼 밀접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면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면을 쓰듯 얼굴을 가리는 것, 다시 말해서 나를 숨기고 연극을 하는 작위적이고 조작된 존재라는 의미인가? 지난해 발표된 방탄소년단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의 뮤직비디오는 작은 소극장을 배경으로 하는데 그 소극장의 간판이 "Persona"였다. 방탄소년단의 리더 RM은 그가 쓴 곡의 가사나 인터뷰에서 종종 방탄소년단의 멤버로서의 RM과 김남준(그의 본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자연인으로서의 김남준이 진짜 그의 본질이라면 대중 앞에 연출된 모습으로의 RM은 무엇일까? 언젠가 RM이 사라져 버리고 난 후에 김남준은 누구일까? 그의 비전, 그의 재능, 그의 꿈이 녹아들어 있는 RM은 그의 본질일까? 아니면 대중 앞에 가면을 쓴 페르소나일까?


나는 <사람, 장소, 환대(김현경 저)>를 펴 들기 전까지 "가면과 얼굴"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즉 얼굴은 그 사람의 본질이고 참모습이며, 가면은 그의 본질을 가리는 거짓되고 연출된 가짜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앞뒤가 다른 사람에 대한 거부감은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순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나는 친구 A와 어떤 모임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A가 B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대체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던 걸로 기억된다. 나는 B와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B에 대해 들어온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가 막 모임을 떠나려는데 B가 늦게 모임 장소에 도착했다. 내가 B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려고 했을 때, 어느새 A는 B에게 달려가고 끌어안으며 반가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뭐지? 저 가식적인 몸짓은?, 지금까지 내가 뭘 잘못 들었나?'


그런데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A의 그런 성향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굳이 타인에게 자신의 본마음을 그대로 보여줄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인은 나에게 캐나다 사람들이 얼마나 정치적인지 이야기했다.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도 항상 자신이 얼마나 상대방의 소식을 궁금해했는지, 지난번에 못 봐서 얼마나 섭섭했는지, 이번 모임도 너무나 가고 싶지만 정말 피치 못한 사정 때문에 못 가게 되었다는 것을 구구절절이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Canadian이야"라고 했다. 자기도 처음에는 사람들의 그런 행동이 너무 이상했는데 지금은 웬만한 캐나디안 뺨 칠 정도로 능청을 떤다는 것이다.

정말 저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나는 아닌 척했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가면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나에게 맡겨진 역할에 따라 골라 쓰는 가면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면의 수를 세어보았다. 그 수가 그리 많지 않은 건 내가 투명한 인간이라서 일까? 글쎄...... 가면을 수시로 바꿔 쓰는 것도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건 정말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그러기엔 나는 정성이 많이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얼굴과 가면 


얼마 전에 종영한 "부부의 세계"에서 이태호는 본처인 지선우와 이혼하고, 바람 폈던 대상 여다경과 재혼을 한다. 그런데 재혼을 한 후에도 이태호는 지선우를 잊지 못하고 곁을 맴돈다. 여다경은 어떤 것이 이태호의 얼굴이고 어떤 것이 가면인지 알지 못해 괴로워 하지만 애처로울 정도로 죽을힘을 다해 그가 쓰고 있는 가면을 지키려고 한다. 여다경이 이태호의 가면을 믿어주는 동안 이태호는 남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극의 마지막에 다달아 여다경은 이태호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만다.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그는 그의 얼굴까지 잃어버린다. 그는 여다경의 남편으로서의 자리를 상실하게 되고 그가 속한 모든 장소부터의 환대도 철회된다.


그렇다면 이태호가 지선우와 함께 했을 때가 그의 진실된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고, 여다경과 함께 한 시간들은 가면을 쓰고 그의 본심이 감춘 거짓의 순간인가?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그 역할에 따라 어느 정도 연기를 하며 살아가고 가면을 쓰는데, 그 가면조차 우리의 인격의 일부라고 한다. 가면이 우리의 인격의 일부라니, 얼굴은 진실, 가면은 거짓 아니었나? 얼굴과 가면을 참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으로 생각해 온 나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저자는 이것도 성에 차지 않은지 이렇게 덧붙였다.


"가면은 우리의 진실한 자아이며 우리가 되고자 하는 자아이다"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김현경 저)



이탈리아의 베니스에서 찍은 가면들, 베니스인들은 가면 축제를 통해 평소에 숨기고 감추었던 욕망을 마음껏 표현했다고 한다. ©boah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가까운 사이가 되면 흔히 그 사람의 민낯을 보게 된다는 말을 한다. 피상적인 사이일 때는 몰랐던 아니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을 때도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부부가 되거나 아니면 정말 절친했던 누군가와 동업을 하게 되거나 또는 죽고 못 사는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하게 될 때 우리는 상대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가슴앓이를 시작한다. 대부분 그 시작은 상대방의 얼굴과 가면 사이의 간극을 느끼면서부터다.  늘 좋게만 보아왔는데 이제는 나만 아는 상대방의 단점들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가면을 쓸 때마다 그의 위선이 싫어 가면을 벗겨버리고 싶어 진다. 그런데 저자는 어떤 사람의 연기가 맘에 들지 않더라도 그리고 그가 만들어내는 것이 가면에 불과함을 알면서도 그 가면을 굳이 벗기려 하지 않을 때, 나아가 그의 연기에 호응하면서 그가 가면을 완성하도록 도와주고, 실수로 가면이 벗겨지더라도 못 본 체할 때, 한마디로 그의 가면 뒤에 있는 '신성한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할 때 그 사람은 얼굴을 갖게 된다고 하였다.


 "사람다움은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지며, 우리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체하는 어떤 것, 서로가 서로의 연극을 믿어줌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어떤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본질을 갖지 않는 현상이다"  (사람, 장소, 환대 중에서, 김현경 저)  


생각해보면 사춘기 아들놈과의 갈등도 바로 가면과 얼굴 사이의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들내미는 늘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뭐든 나에게 들켰다는 생각이 들 때, 그렇게 화를 냈을지 것이다. 나는 잘잘못을 따지고 흑백을 가리는 것이 아이를 잘 훈육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는 아니라고 하고 나는 아들의 거짓말을 그냥 넘기지 못해 우리는 큰 어려움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부분에서는 아이의 가면을 인정해 주었어야 했다. 모른척하고 넘어가는 게 훨씬 더 좋을 뻔한 경우들이 많았다. 왜냐면 가면을 벗겨 버리는 순간, 어딘지 모르게 관계의 한 부분이 부서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나 또한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가면을 쓰고 대하는가? 부모라는 권위로 아이에게만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 폭력적이다. 돌아보니, 모른 척하고 그 사람의 가면을 인정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아쉬운 관계들이 스쳐갔다. 어쩌면 내가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규정한 그것이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닐 수 도 있다. 그도 나도 늘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생명체, 고정되지 않은 인격체이므로, 언젠가 가면이라고 믿었던 상대방의 그 모습이 자연스러운 그의 얼굴이 되어 나를 향해 환하게 웃어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닐까. 그 날을 기대하면서 나는 조금 더 기다려 주었어야 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선물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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