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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아 Jun 29. 2021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

 "우리는 우리가 어떻게, 어디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여기 존재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있어. 하지만 '왜'라는 질문에는 언제나 답 없는 질문으로 남을 거야. 우주를 만든 위대한 건축가의 본래 목적은 그 혼자만 아는 거야. 그 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해." (브리다 중에서, 파울로 코엘료 저)  


나는 15년 전에 앤티크 샵에서 뷰로(Bureau) 하나를 구입했었다. 서랍이 두 개 달려 있었고 열쇠를 돌려 전면의 덮개를 앞으로 내리면 작은 책상이 되는 일반적인 모양의 뷰로였다. 영국에서 왔다는 이 뷰로는 어두운 색감에 화려하지 않은 장식이 소박하고 정감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 가구를 구입한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다. 수납을 위한 것도 책상의 용도로 사용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우연히 들어간 앤티크 삽 한 켠에 먼지가 쌓인 체 놓여있는 모습에 그저 마음이 끌렸을 뿐이다. 나는 뷰로와 함께 벽면에 걸어 놓으면 좋을 법한 장식용 접시 선반도 함께 구입하였다. 나의 집으로 이사 온 뷰로는 거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 후로 뷰로는 거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이동을 반복하였는데 주기적으로 가구의 위치를 바꾸는 나의 습성에 따른 결과였다. 나는 거실 창가에 테이블을 두고 나의 작업공간으로 사용하였는데 창 밖을 바라보고 앉기도 하고 창을 등에 지고 않기도 했다. 이렇게 테이블의 위치가 바뀌면 거실 가구들의 대이동이 함께 시작되었다. 테이블의 위치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소파였는데 그렇게 되면 소파 역시 창을 바라보기도 하고 등지기도 하면서 자리를 바꾸었다. 큰 등치의 가구들이 움직이면 뷰로는 그 틈에서 이리저리로 옮겨져야 했던 것이다.



 



영국에서 지내던 나는 15년 전 한국으로 들어왔고 이 집에 보내졌다. 이 집에 와서 몇 년을 지내다가 어느 날 나는 밴쿠버로 보내졌고 그곳에서 수년을 지내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다.  나를 데려온 B는 도무지 나에게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를 거실 한 켠에 방치해 두고 나와 어울리지도 않는 낯선 물건들을 잔뜩 넣어두었다. 종종 내 위에 쌓이는 먼지를 닦아낼 때를 제외하고는 나에게 다가서는 법도 없었다. 가끔 나의 서랍을 열어 잡다한 물건을 넣었다 뺐다했을 뿐이다. 밴쿠버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식당 한 켠에 나를 세워두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물건들을 나에게 가득 채워 놓았을 뿐이다. 나는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었다.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늘 나를 곁에 두고 아껴주던 옛 친구가 그리웠다.


나는 꽤 오래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나와 같은 뷰로는 주로 오크나 월넛 또는 마호가니로 만들어졌는데 전면의 경사진 커버는 평상시에 닫아 두었다가 주인이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앞으로 내려서 책상처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럴 때는 상판 바로 아래 부분에 있는 두 개의 지지대를 앞으로 잡아당겨서 책상의 상판을 떠받치면 되었다. 나의 옛 주인은 가장 고요하고 개인적인 시간에 나를 찾아왔다. 작은 촛대가 불을 밝히면 따뜻한 차 한잔이 꽃잎처럼 내 위로 내려앉았다. 그녀는 하얀 종이 한 장을 꺼내어 글을 썼다. 나는 그녀의 펜이 종이 위를 지나면서 표면을 긁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녀의 손의 움직임을 따라서 종이의 새겨지는 그녀의 마음은 이 순간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멜로디였다. 그 소리에는 설렘이 담겨 있었고 한 없이 들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때로는 고요하고 무거웠으며 찬란하고 따스했다. 그렇게 펜 끝에서부터 흘러 전해지는 그녀의 의식의 흐름을, 나는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느꼈으며 그녀의 기쁨과 그리움과 절망이 고스란히 나의 것이 되는 경험을 했다. 내가 자리 잡은 그녀의 방에는 커다란 창이 이었었는데 그 창의 배경은 오로지 글을 쓰고 있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행복하면 창 가득 꽃잎을 휘날렸고 부는 바람소리로 그리운 사랑의 노래도 들려주었다.  그녀는 편지를 쓰고 읽으며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다.


그녀는 내 앞에 아름다운 의자 하나를 가져다 두었는데 천으로 의자 전체를 감싸 놓은 아주 편안한 모양의 의자(Upholstered armchair)였다. 가만히 둘러보니 의자를 감싸고 있는 천은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과 침대의 드레이퍼리(draperies) 와도 같은 종류다. 그녀는 자연의 사실적인 패턴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글을 쓸 때 그림을 그려 넣는 것을 좋아했는데 꽃잎, 잎사귀, 나뭇, 구름 같은 것들이었다. 그 그림에는 그녀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자연의 사랑스러움, 잡히지 않는 그리움, 찰나의 기쁨들, 쉽사리 저버리는 허무함 속에서도 느껴지는 용기 같은 것들이었다.


나에게 있어 그녀는 친밀하고도 긴밀한 존재였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한 번도 책상으로 사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던 뷰로가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있는 나에게 뷰로가 말을 걸어온 것일까? 나의 의식의 흐름이 흘러 다다른 것이 뷰로였을까?  내가 소망했던, 다락방처럼 작고 낮고 아담한 나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꼭 방 하나를 더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불현듯 침대 옆의 사이드 테이블을 거실로 빼고, 뷰로를 침대 옆, 침실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옮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담요 한 장을 밑에 깔고 거실에 있는 뷰로를 밀어 침대 옆 창가 구석으로 옮겼다. 전면 덮개를 내리고 아래의 지지대를 당겨 책상으로 변형시켜 보았다. 뷰로 위 작은 스탠드의 불을 켜니, 불빛이 비추는 범위만큼의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졌다. 포근하고 아늑하고 친근했다. 이른 아침 눈을 뜨면 뷰로 앞에 앉는다. 늦은 저녁 자기 전에도 뷰로 앞에 앉는다. 공간이 작고 콤팩트해서 구석에 콕 박혀서 혼자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 너무 좋다. 진작 방 안에 들여놓고 이렇게 사용했으면 정말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꽃병에 꽃을 잔뜩 꽂아 뷰로 위에 얹어 놓으니 그 작은 공간이 더 운치 있어진다. 뷰로를 가져다 놓기 전에는 왜 꽃병을 가져다 놓을 생각도 하지 않았을까?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향기는 매일 아침 나의 얼굴에 미소를 그린다. 뷰로가 있어야 할 자리에 비로소 놓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만난 지 15년 만에.  


거실에 있던 뷰로(bureau)를 침실로 옮겼어요. 이제는 저와 단짝이 되었습니다 ©boah



 


어느 날 B는 내 서랍 안에 있는 잡동사니를 모두 꺼내 정리하더니 나를 침실 안쪽으로 옮겨 놓았다.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그리고는 덮개를 열어 자신이 좋아하는 작은 수첩과 노트, 그리고 요즘 즐겨 읽는 책들을 선별해서 꽂아 두었다. 한 번 나의 덮개를 열어 나를 책상으로 사용하더니 다시 덮개를 덮는 법이 없다. 그리고 자주 내게 찾아와 나와 마주 한다. 책을 읽고 노트를 꺼내서 만년필로 뭔가를 써내려 간다. 나는 B의 펜이 종이를 지나면서 마찰을 내는 소리에 나의 모든 감각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아주 오래된 기억의 소리였다. 그 음운은 마치 B가 나의 옛 친구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의 강약과 장단은 나를 다시 고향의 그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왜 이곳에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거실 한 구석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B가 책을 폈다. 파울로 코엘료의 "브리다"였다. B가 글을 읽다가 노트에 책의 내용을 또박또박 적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지난 세월 내가 수 없이 되뇌어 온 질문이었다. 글 속의 위카는 자신의 제자 브리다에게 자신이 어떻게, 어디서, 언제 , 어떤 방법으로 여기 존재하게 되었는지 알지만 "왜" 여기 있는지에 대해서는 결코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B는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데는 이유가 있을까?


"답을 찾는 것이 아니야. 받아들이는 거지. 그러면 삶은 훨씬 강렬해지고 환희로 가득 차게 돼. 삶의 매 순간순간에. 우리가 내디디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우리 개인을 넘어서는 훨씬 커다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걸 이해하지 때문이지. 우리는 시간과 공간 어딘가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그것으로 족해.

우리는 믿음을 갖고 어두운 밤 속으로 침잠하고, 고대 연금술사들이 '자아의 신화'라 부르는 것을 완수하고, 우리가 받아들이든 말든 늘 우리를 이끌어주는 손이 있음을 믿고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거지." (브리다 중에서, 파울로 코엘료 저)


나는 계속해서 적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을까? 파울로 코엘료는 살아간다는 건 인생의 신비에 나를 내맡기는 것이라고 했다. 끊임없이 의심하면서도 자신의 길을 가보는 것, 잘 짜인 계획이나 확신이 없어도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이 있다면 그 신비에 자신을 맡겨보는 것이다. 신을 믿는다는 것은 신이 나에게 정해준 확실한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발걸음을 내디뎌 보는 것이다. 위카의 말처럼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신을 믿는다는 것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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